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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검찰의 반성과 경찰의 방만…‘경찰국가’ 탄생 전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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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준 기자

승인 : 2019. 02. 27. 06:00

허경준
사회부 허경준 기자
2017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당시 검찰총장으로 지명된 문무일 부산고검장은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실(범정)을 없애라는 지시를 내렸다.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준비단은 검찰 내·외부에서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크다며 만류했지만, 문 총장의 결심은 단호했다.

검찰의 인지수사는 범정을 통해 이뤄지는데, 민원이 들어올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사심이 개입된다는 게 문 총장의 생각이었다. 범정 폐지는 국회 인사청문회 당일 예고도 없이 발표됐고 범정 소속 수사관들은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철 지난 얘기를 왜 끄집어냈을까? 1년 반이나 지난 뒷이야기를 꺼낸 것은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경찰의 무분별한 정보수집과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3000~4000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정보관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을 ‘정보경찰’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영역 구분 없이 광범위한 정보 수집활동을 벌인다. 수사기관인 경찰이 범죄정보를 수집하는데 문제 될 게 뭐가 있느냐고 따질 수 있다. 문제될 게 없다. 오히려 강화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범죄정보만 수집한다는 전제가 깔렸을 때 얘기다. 과연 경찰은 수사에 필요한 범죄정보만 수집할까? 이에 대한 대답은 단언컨대 ‘NO’다.
정보경찰이 어떤 기준을 세우고 정보를 모으고 있는지, 어떤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또다시 여기에 ‘대외비’를 어떻게 공개하느냐고 딴지를 걸 수 있다.

대외비로 분류된 정보 수집활동이 어떤 일이었는지는 클릭 몇 번이면 쉽게 알 수 있다. 정보경찰은 여야 의원들의 관리카드를 만들어 관리하고 지자체장 예비 후보의 동향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노조와 사측의 갈등을 조정한다는 명목으로 단체교섭 등에도 개입했다.

이 같은 활동이 범죄정보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의원들이 지역구에서 누구를 만났는지, 선거에 출마할 예비후보가 무슨 일을 하는지 파악하면 추후 발생할지도 모르는 범죄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인지 반문하고 싶다. 이는 범죄 정보수집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워 사실상 사찰을 한 것에 다름없다.

정보수집은 태생적으로 범죄와 관련된 정보만 수집하기 어려운 구조다. 수사와 치안을 위한 정보활동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수사와 정보를 분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우리는 이미 정보라는 이름의 사찰이 수사로 이어지는 ‘남영동 시대’를 경험했다. 그곳에서 수많은 박종철 열사를 떠나보내는 삭풍을 견디고 나서야 봄을 맞을 수 있었다.

검찰을 옹호하고 싶진 않지만, 검찰은 무분별한 정보를 수집했던 과오를 인정하고 정보수집 조직을 없애는 최소한의 반성은 했다. 하지만 경찰은 몸집을 줄인다면서 수사와 행정을 분리시키는 자치경찰제에는 수긍했으나, 정보기능에는 칼을 대지 않았다. 오히려 경찰서 정보과부터 경찰청 정보국까지 거대한 정보기능을 거느린 유일한 권력기관이 돼버렸다.

정보기능을 없애라는 것이 아니다. 수사를 위해선 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경찰의 독주를 견제할 법령 등 수단과 기관이 없다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경찰의 정보 수집활동을 통제할 경찰 내·외부기관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청와대 주인은 바뀌어도 남영동은 그대로”라는 영화 1987에 나오는 대사처럼 거대한 ‘경찰국가’의 탄생을 곧 목도하게 될 것이다.
허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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