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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만능키’가 된 직권남용죄에 대한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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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중 기자

승인 : 2019. 06. 03. 06:00

조문이 갖는 단점 입법 통해 개선하는 것도 방법
황의중 기자의 눈
최근 들어 사기죄나 뇌물죄만큼 국민들에게 익숙해진 죄명이 있다. 바로 형법 123조 직권남용죄, 정식명칭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다. 법조인들조차 눈여겨보지 않던 이 죄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국정농단과 사법농단 사건 때문이다.

검찰이 공권력을 남용한 막강한 고위공직자를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기소하는 것을 보고 많은 국민들은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최근 법조계에선 직권남용죄가 갖는 문제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직권남용을 가장 잘 활용해온 검찰조차 지난해 4월 직권남용죄의 무분별한 적용을 경계하는 취지의 관련 해설서를 만들어 전국 검찰청에 배포했을 정도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할 때 성립한다. ‘국가기능의 공정한 행사’를 보호법익으로 하는 이 죄가 성립하려면 공무원이 직무의 범위 내에서 의무 없는 일을 시켜야 한다. 직무 범위 밖의 일을 시키는 것은 비난 가능성이 큼에도 이 죄로 처벌할 수 없다. 형법상으로 직무 밖의 일을 시킨 것을 처벌하려면 폭행이나 협박이 있어야만 강요죄로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위 공직자들이 부당한 일을 시킬 때는 권위로 누르지 폭행·협박을 쓰는 경우는 드물다. 결국 직무 범위의 해석에 따라 공직자에 대한 처벌 여부가 갈리는 것이다.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이 “법관의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애초에 주어지지 않았다”며 죄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형벌 규정이 모호한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특히 직권남용은 공무원의 복지부동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 요즘 관가에서는 웃지 못 할 풍경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고위 공무원들은 지시했다는 것을 문서상 안 남기려고 하는 반면, 하위직들은 어떻게든 윗선의 지시였다는 것을 문서에 남기려고 해 눈치싸움이 치열하다는 것이다.

직권남용 관련 사건들이 하나둘 대법원으로 올라가면서 판례도 정립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판례가 쌓이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형법 조문을 개정하는 게 더 나은 방법이다. 모호한 규정은 모셔두기보다 사회적 합의를 담아 바꿀 때 사회도 한 단계 더 성숙해질 수 있다.

황의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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