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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Mr. ‘소신 검사’가 떠난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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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준 기자

승인 : 2020. 08. 12. 16:52

허경준
사회부 허경준 기자
검경 수사권 조정 업무를 담당했던 문찬석 전 검사장을 다시 만난 건 폭설이 남부지방을 강타한 지난 2월 광주에서였다.

그가 전국 지검장 회의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비리 등 의혹과 관련해 최강욱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기소하라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시를 거부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면전에서 비판한 직후였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검찰의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것에 대한 검사장들의 의견을 묻기로 한 자리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평소에도 소신 있는 발언을 해 오던 그였지만, 설마 법무장관이 마련한 자리에서까지 송곳 같은 직설을 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으나 검사장 간담회에서 어떤 말을 할 것인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문 전 검사장은 “잔칫집에 맛있는 음식이 널려있는데, 먹지도 않고 돌아오는 것은 오히려 실례”라며 “조목조목 따져서 다 말하고 올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집무실 한쪽에 마련된 조그만 간이 책상을 가리켰다. 작은 책상 위엔 두꺼운 형법과 형사소송법 책이 올려져 있었다. 집무실 넓은 책상도 아닌 협소한 간이 책상에 법서가 놓여있는 모습이 다소 의아했다. 문 전 검사장은 그날을 대비해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공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모르긴 몰라도 코로나19로 전국 검사장 간담회가 무기한 연기되지 않았다면, 문 전 검사장은 추 장관에게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날 선 발언을 쏟아냈을 것이다.

문 전 검사장은 대검 기획조정부장 시절 직속 상관인 검찰총장에게 돌직구를 날리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수사권 조정 등 문제로 검찰이 뭇매를 맞고 있을 때 마트에서 모자를 눌러 쓴 채 고개를 숙이고 장을 보고 있던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을 우연히 마주치자 “눈치보면서 장도 제대로 못보는 총장 뭐하러 하느냐, 그만 두시라”고 충정어린 직언을 하기도 했다.

어떤 자리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문 전 검사장은 이제 검찰에 없다. 온갖 요설로 치장하며 기어이 정권의 사냥개 역할을 하겠다는 정치검사들만이 남았다. 유일한 희망은 문 전 검사장의 사직 인사에 달린 400여개의 댓글에서 찾아야하는 것일까.
허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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