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서울미래유산기록 세 번째 ‘서울의 이용원’ 발간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share.asiatoday.co.kr/kn/view.php?key=20230116010007763

글자크기

닫기

지환혁 기자

승인 : 2023. 01. 16. 11:15

clip20230116020237
서울역사박물관이 발간한 서울미래유산기록 세 번째 '서울의 이용원' /제공=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은 서울미래유산기록 세 번째 '서울의 이용원'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16일 밝혔다.

서울미래유산기록 사업은 2020년 서울 식문화의 상징적 장소인 '낙원떡집'을 시작으로, 도시 제조업으로서의 특징을 보여주는 '서울의 대장간'을 조사했다.

세 번째 기록 '서울의 이용원'은 한국 최초의 이용원인 개화당 제조소부터 현재의 바버숍까지 이용원 변천사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종로구 혜화동의 '문화이용원'과 마포구 공덕동의 '성우이용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
한국 최초의 이용원은 1895년 단발령을 계기로 지금의 이용원을 뜻하는 '개화당開化黨 제조소'가 탄생했다. 한국인 최초의 이용원인 '동흥이발소'는 1901년 유양호가 인사동 조선극장 터에 개업했다. 황제 전속 이용사였던 안종호는 광화문 근처에 '태성이발소'를 열었다.

clip20230116020515
1962년 서울 중구의 맘보이발관 /제공=서울역사박물관
서울(경성)에는 일본인 이용원이 가장 먼저 생겼다. 1915년 서울의 이용원은 226개였는데, 조선인 이용원이 140곳(62%)으로 가장 많았고, 일본인 이용원이 70곳(31%), 중국인 이용원이 15~16곳(7%)으로 가장 적었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문화이용원'과 '성우이용원'은 100여 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켰다. 이 곳은 시민 가까이에서 소통하며 전통 방식의 이용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문화이용원은 1940년대 처음 문을 열었다. 6.25전쟁 중 창업자가 실종돼 전후 이상기 이용사가 들어와 1954년 현 위치(종로구 혜화로 7)에 이전했다. 손님이었던 지덕용 이용사는 17세에 보조원으로 문화이용원과 인연을 맺었다. 1969년 이용원을 인수한 그는 2022년까지 문화이용원에서 67년의 세월을 보냈다.

clip20230116020643
문화이용원 내부 /제공=서울역사박물관
성우이용원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이용원이다. 1928년 현 위치(마포구 효창원로97길 4-1)에 우리나라 이용 면허 제2호 서재덕이 개업했다. 1935년 사위 이성순이 대를 이었고, 1971년부터 아들 이남열이 3대째 운영 중이다.

성우이용원에서 사용하는 도구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50년 된 독일제 면도칼이다. 이남열 이용사가 가장 아끼는 가위는 1968년 이발을 시작하며 당시 일주일 치 임금이던 700원에 구입한 것이다.

서울미래유산기록 세 번째 '서울의 이용원' 보고서는 서울역사박물관 누리집에서 열람할 수 있다. 구입은 서울책방 또는 서울역사박물관 뮤지엄 샵에서 가능하다.
지환혁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댓글 작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