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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 쉽게 씁시다] ②해외는 어떻게…“체크리스트 활용·한 문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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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연 기자 | 김임수 기자

승인 : 2024. 04. 29. 12:00

영국·미국 구술심리 충실…판결문엔 결론만
프랑스 단 한 문장으로 요약…증거기재 생략
법조계 "국민 공감대·장기적 플랜 마련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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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관련없는 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판결문 쉽게 쓰기는 법조일원화 시대 '좋은 판사 구하기'와도 긴밀하게 얽혀 있다. 법원 바깥에서 일정 경력이 쌓인 법조인을 판사로 뽑는 '법조일원화'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판결을 위한 의미있는 시도였지만 전체 법관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는 결과를 낳았다. 판결문 작성에 따른 심리적 부담과 체력적 한계 등은 외부 능력있는 법조인이 법원을 기피하는 원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대륙법계를 따르면서도 법조일원화를 도입한 매우 드문 나라다. 우리나라와 달리 영미법계를 채택하면서 법조일원화한 국가들은 판사들의 판결문 작성 업무 부담이 크지 않다. 프랑스의 경우 같은 대륙법 국가임에도 판결문 쉽게 쓰기에 대한 고민을 지속하고 있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 영국은 구술 심리에 집중…"녹취록이 판결문"
영미법 체계를 만든 영국은 구술심리를 통한 재판 진행에 집중해 그 만큼 판결문의 의미와 중요도가 낮다. 실제 영국의 형사 1심 판결은 우리나라의 판결문 형태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치안법원이 관할하는 경미한 사건의 경우엔 대부분 구술 선고로 이뤄진다.

중범죄를 관할하는 형사법원에선 피고가 자백할 경우 양형에 대해서만 구술로 판단되고, 무죄를 다툴 경우 배심재판이 진행돼 유·무죄에 대한 평결을 구술로 제시한다. 형사법원에선 유·무죄 판결, 양형 판단 등이 의무적 녹음 대상이기 때문에 작성되는 녹취록이 실질적으로 판결문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민사 판결문의 경우에도 법관 본인이 작성하는 경우보다 당사자나 소송대리인에게 초고를 작성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아 법관의 업무 부담이 현저하게 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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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리스트 서식의 미국의 연방 1심법원 민사 판결서/사법정책연구원

◇ '체크리스트' 활용하는 미국

영국과 함께 대표적 영미법 국가인 미국은 판결문를 작성하도록 하고 있지만 판사가 판결의 결론 부분만 기재하도록 해 구조가 간단하다. 특히 연방 1심 법원에서 사용되는 형사 유죄 판결문은 항목별 체크표시를 하거나 필요 내용을 간단히 기록하는 양식을 사용한다. 판사가 최종적으로 숫자(형량)만 기재하는 경우도 있다.

피고인이 무죄를 주장해 배심재판이 진행되는 경우에도 배심 평결로 유·무죄가 결정돼 판결문에 판단 이유를 따로 작성하지 않는다. 유죄 판결의 경우에는 정형화된 양식을 미리 마련해 놓고 모든 경우의 수를 예정해 결론과 핵심 이유만 기재하는 '체크리스트' 형태를 띈다.

민사의 경우에도 1심 절차에서 판결문에 이유를 작성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유 기재가 필요한 복잡한 사건인 경우라면 대부분 로클럭(law clerk·재판연구원)이 초안을 작성해 판사의 업무를 덜어준다. 또한 1심 판사의 판결서 작성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구술로 결론을 설명할 수 있다'고도 규정하고 있다.

◇ 한 문장으로 쓰는 프랑스, 법관 많은 독일

우리와 같은 대륙법계를 따르는 프랑스는 '단 하나의 문장(arret a phrase unique)'으로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이 전통이다. 콜론(:)과 세미콜론(;)으로 끊임없이 이어가는 형태로 구성하고 판결문에 마침표(.)는 단 한 번만 사용된다. 프랑스도 우리나라처럼 판결 이유-주문 순서로 기재하는 미괄식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이유를 기재할 때 법규정의 해석 및 포괄되는 사실을 간략하게 기재하고 증거의 경우 감정보고서를 제외하고는 거의 기재하지 않는다.

독일은 우리나라처럼 길고 자세하게 판결문을 쓰지만 법관 1명이 1년간 맡은 재판 수가 현저히 적다. 또한 형사 재판 당사자가 상소를 포기한 경우 판결의 이유 기재를 일부 생략할 수 있고, 민사에서는 당사사가 제출한 서면을 곧바로 인용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 "단기간 못 바꿔…장기적 대책 고민해야"
법조인들 역시 판결문을 쉽고 간단하면서 국민들이 이해하기 편하게 써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다만 국내 사법 제도 및 재판 문화의 차이가 커 해외 판결문 작성 방식을 '그대로' 들여오는 것이 쉽지 않다. 이에 법조계에서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 및 장기적 플랜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영미법계에서 판사는 소송을 단순히 진행하는 역할을 하기에 판결문도 결과만 간단하게 담을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면 큰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라며 "재판 당사자 입장에서는 담당 판사가 판결문을 간단하게 적어서 내면 재판을 대충했다고 오해하기가 쉽다. 판결문 쉽게 쓰기는 국민적 인식이 바뀌어야 하는 문제가 있다"고 전했다.

헌재 연구관 출신인 노희범 변호사는 "판결서를 가독성 있게 쓰는 것에 대해 굳이 반대할 사람이 있겠나. 다만 오랫동안 유지돼 온 일정한 형식이 한번에 사라지게 되면 혼란스러운 측면이 생길 수 있다"며 "태스크포스(TF) 등을 만들어 장기적인 플랜을 세우고, 구체적인 준비 단계를 만들어 시범적으로 실시해 나가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장희진 가로재법률사무소 변호사 또한 "법률도 서비스기에 판사가 국민을 위해 판결문을쉽게 쓰는 것은 대국민 법률서비스란 측면에서 당연하다"면서도 "근본적으로 판사가 늘어나야 궁극적인 법률서비스의 질이 개선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채연 기자
김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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