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④ 절반의 성공 그친 삼성전자 ‘비전 2020’… 성장 옭아맨 사법리스크

④ 절반의 성공 그친 삼성전자 ‘비전 2020’… 성장 옭아맨 사법리스크

기사승인 2020. 12. 11. 06:00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진검승부 나선 삼성전자]
2020년까지 매출액 4000억달러 달성 실패로
사법리스크로 경영 차질…4년간 80회 출석
불확실성에 현금 쌓아두지만 M&A 투자 위축
미래 경쟁력 약화, 대외 신뢰도 타격도 우려
basic_2020
clip20201210191216
‘매출액 4000억달러(당시 기준 473조원), 브랜드 가치 5위, 존경받는 기업 10위’

2009년 창립 40주년 기념식에서 삼성전자는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2020년까지 매출액 4000억달러를 달성해 IT분야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글로벌 10대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 2020’을 발표했다. 브랜드가치 5위, 존경받는 기업 10위 진입도 약속했다.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나아가는 변곡점에 선 삼성전자가 외형은 물론 질적인 부분에서 모두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야심찬 선언이었다.

2020년이 한달도 채 남지 않은 현재, 삼성전자의 ‘비전 2020’은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반도체와 스마트폰에 비견할 만한 신성장엔진 발굴이 더뎠고, 글로벌 경기의 성장 둔화와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과거와 같은 급성장이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무엇보다 이재용 부회장을 둘러싼 사법리스크가 삼성전자의 성장을 옭아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 부회장이 2014년 부친 이건희 회장의 와병으로 경영 전면에 나선 이후 4년을 법정다툼에 시달리며 자신만의 경영 색깔을 펼쳐보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내년에 새로운 재판이 본격화되는 것도 이 부회장의 고민을 가중시킨다. 지난 4년에 더해 앞으로 최장 4~5년간 경영차질이 우려되면서 삼성전자의 ‘잃어버린 10년’이 현실화됐다는 우려도 높다.

◇지키지 못한 ‘비전 2020’…삼성전자는 왜?
10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해 예상 매출액은 238조원 수준으로 당초 ‘비전 2020’의 목표로 삼은 470조원대의 매출 목표 달성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게 됐다.

‘비전 2020’을 발표할 당시 삼성전자의 연매출이 139조원인 것을 감안하면 10년 만에 3배 이상의 매출 목표가 불가능한 도전으로 보일 수 있지만, 내부 견해는 달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반도체와 휴대폰, TV 등 핵심 사업이 탄력을 받고 있어 성장에 속도를 내던 시기였다”고 말했다. 미래 먹거리 사업에 대한 기대도 작용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비전 제시 3년 만인 2012년 연매출을 201조원으로 끌어 올리며 200조원 시대를 열었다. 연평균 14%의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비전 달성에 ‘청신호’를 켜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200조~240조원대의 박스권에 갇히며 성장 정체 상태에 머물렀다.

미국 경제지 포춘이 선정하는 ‘글로벌 500대 기업’ 순위에서도 반도체 초호황기인 2018년 12위로 정점을 찍은 이후 지난해 15위, 올해 19위 등 하락세를 보이며 결국 글로벌 10위 진입을 이뤄내지 못했다.

다만 500대 기업 가운데 IT분야 1위를 차지하고, 올해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서 623억달러(약 71조)의 브랜드가치를 기록해 사상 첫 5위에 입성하면서 ‘절반의 성공’에 위안을 삼게 됐다.

‘비전 2020’의 꿈이 멀어지게 된 데는 애플이 강력한 스마트폰 경쟁자로 떠오르는 등 글로벌 시장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진 데다 세계 IT 시장의 전반적인 침체로 성장이 빠르게 둔화된 데서 찾을 수 있다.

내부적으로는 반도체·스마트폰 신화의 뒤를 이을 이건희 회장의 5대 신수종사업(태양전지·자동차용전지·LED·바이오·의료기기)이나 이재용 부회장의 4대 성장사업(AI·5G·바이오·전장부품)으로 대표되는 미래 먹거리가 본궤도에 오르지 못한 것도 이유로 꼽힌다.

재계 관계자는 “많은 기업들이 M&A를 통해 신사업에 진출하고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내 ‘퀀텀점프’(비약적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지만, 삼성전자는 하만 인수 외에는 대규모 M&A가 없었던 것이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삼성전자의 성장 정체 이면엔 지난 2016년 말부터 이어진 이 부회장의 사법리스크 영향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 기간 구속수감으로 인한 1년간의 경영 공백 외에도 법정 출석만 4년간 80회에 이르는 등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할 수 없었던 데다 불확실성으로 인해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이 위축됐다는 것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 명예교수는 “총수의 과감한 결단과 신사업 추진을 통한 성장이 필요한 시기에 사법리스크로 불확실성이 커지게 되면서 공격적인 경영보다는 방어경영에 치중할 수밖에 없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4년간 80회 법정行, 내년 또다른 재판 … 끝나지 않은 사법리스크
문제는 이 부회장을 둘러싼 사법리스크의 끝이 보이지 않고 마땅한 해결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이 이르면 내년 1월 선고를 앞둔 상황에서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재판이 내년 1월부터 본격화된다. 앞서 검찰이 구속영장까지 신청한 데 이어 수사심의위원회의 ‘불기소’ 권고를 묵살하고 기소할 정도로 끝까지 가겠다는 의지가 강해 이 부회장은 또다시 장기간 재판에 매달려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역시 재판부 판결에 따라 경영 공백 위기를 맞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긴장감은 더하다. 이 부회장은 2017년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받고 법정 구속됐다가 2018년 2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받고 경영 일선에 복귀한 바 있다.

삼성전자가 2016년 말 하만 인수 이후 굵직한 M&A 없이 현금 보유를 늘리기 시작한 것도 사법 이슈로 불확실성이 고조되기 시작한 것과 무관치 않다. 2017년 말 약 84조원이던 삼성전자의 현금 보유액은 해마다 큰 폭으로 증가해 올해 3분기에는 118조원까지 늘었다. 불과 3년도 안 돼 34조원 넘게 불어난 셈이다. 지난 10월 미국 반도체 회사인 AMD가 자일링스를 인수한 금액(39조원)과 비슷하고,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사업 인수금액(10조원)의 3배 규모에 달한다.

엔비디아·SK하이닉스·AMD 등 반도체 경쟁사들이 ‘빅딜’을 통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분야의 기술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지만, 삼성전자는 실탄을 쌓아놓고도 수조~수십조원 규모의 M&A에 나서지 않으면서 미래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오랜 재판으로 인해 이 부회장과 삼성의 대외 이미지 및 신뢰도 타격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2010년대 초반까지 미국 포춘지 선정 ‘존경받는 글로벌 기업’ 순위에서 20~30위권을 유지하던 삼성전자가 최근 2~3년간 50위에 턱걸이하거나 순위 밖에 머무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삼성 계열사의 해외 기업 M&A나 해외 대규모 수주에서 기업 평가에 부정적인 영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사법리스크는 결과적으로 기업과 총수의 대외 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지는 만큼 삼성이 글로벌 경쟁을 뚫고 성장하는 데 발목을 잡을 우려가 높다”고 말했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