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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주자의 풍수와 효의 실천

[기고]주자의 풍수와 효의 실천

기사승인 2021. 04. 21.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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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해 한양대 동양문화학과 교수
박정해 한양대 동양문화학과 교수
조선은 유교를 국시로 삼은 나라다. 조상 숭배와 효를 제일의 덕목으로 여겨 이를 적극 장려했으며, 음택풍수를 통해 효를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음택풍수를 통한 효의 실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이 바로 중국 송대의 유학자 주자(1130~1200)이다.

주자는 성리학을 집대성해 훗날 중국뿐만 아니라 조선의 유학과 정치·경제·문화 등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풍수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여러 곳에서 자신의 풍수적 견해를 피력했다.

그중 ‘산릉의장’은 송의 효종이 죽자 능지 선정과 관련해 황제에게 올린 장계로써, 주자의 풍수관을 대변하고 있다. 그는 수준 높은 풍수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평소 손님들과 즐겨하는 담론의 소재가 주로 풍수였다고 한다. 또한 자신이 직접 조성한 부친과 모친의 산소를 두 번이나 이장하는데, 장남과 여식이 요절하고 부인과 사별하는 등 개인적인 슬픔과 불행한 가정사를 부모의 묘소 이장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다.

주자의 탄생과 관련한 풍수 설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공자와 같이 훌륭한 인물(주자)이 나오게 된 것은 바로 무원현 관갱령에 위치한 고조모 정씨의 묘소가 명당인 덕분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송대 국사이자 집안 대대로 뛰어난 풍수가였던 오경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관갱의 산세가 기이하고, 무덤이 쓰인 혈장의 위치는 높은 산에 자리하고 있다. 뭇 산들이 남북으로 모여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멀리 뾰족한 문필봉이 솟아 있다. 이러한 명당에서 큰 부자나 큰 벼슬을 할 인물은 나오지 않지만, 공자만큼이나 총명한 현인이 배출될 것이다.”


박정해 칼럼 그림1
주자고조모묘(朱子高祖母墓)./출처 =인자수지
이 말은 음택풍수에 관점을 둔 해석이지만 조선 유학자들에게 미친 영향은 실로 지대했다. 효 사상을 자극했고, 음택풍수가 인재 탄생과 직접적으로 연결됐다는 사고를 갖는 계기가 되었다. 비단 부모님이 살아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신 후에도 아름다운 그 덕업을 계승하는 것이라 여겼는데, 이것이 바로 음택풍수로 표출된 것이다.

즉 효는 부모님께 드리는 정성으로 일컬어지면서도, 자기완성과 천리에 대한 순응이라 여겼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이 효에 부여한 가치는 가히 절대적이었으며, 일종의 종교적 존엄성으로까지 승화시켰던 것이다.

/박정해 한양대학교 동양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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