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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저기 가는 저사람 조심하세요

[칼럼]저기 가는 저사람 조심하세요

기사승인 2021. 04. 21.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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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문화평론가
꽤 오래전, 인문학을 토대로 한 스토리텔링 과목을 개설한 적이 있다. 인문학에 일천한 필자가 운영하기엔 깜냥이 부족했지만, 학생들과 같이 고민하며 토론을 이끌어 보려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흔히들 인문학을 ‘낯설게 보기’라고들 한다. 인문학자들은 프레임 안에서 사고하기보다 틀 바깥에서 사유하길 권한다. 말하자면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보는 ‘삐딱선’을 타보자는 모토 하나만으로 시작한 토론 수업이었다.

다양한 콘텐츠를 다루면서 토론을 이어가는 방식이었는데, 그럭저럭 수확이 있었던 학기로 기억된다. 당시에 우연히도 우리는 ‘아홉 살 인생’이라는 영화를 접하게 됐고, 어쩌면 우리의 생각은 유년의 기억, 특히 초등학교 시절을 관통한 경험의 지배를 받고 있겠느냐는 생각에 도달했다.

수업 중 생각나는 게 있어, 필자는 인터넷을 검색해 몇 편의 동요를 들려줬다.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익숙한 곡이다. 김메리 작사·작곡의 1948년 작품이다. 그 시점이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29년 만에, 한반도에 마침내 정부가 설립된 1948년과 겹친다는 점은 흥미롭다. 해방 이후 새롭게 재편된 나라에서 교육이 새로운 사회질서의 토대가 되는 길이라는 바람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또 한편 미국으로부터 유입된 서구적 사고방식을 빨리 사회 제반에 자리 잡게 하고자 하는, 미군정과 당시 정부 정책 방향이 맞닿은 지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연이은 한국 동란은 이러한 방향을 가속시켰다. 전란 중에도 뜻있는 이들이 천막을 세우고 종을 치면 아이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전후(戰後)에도 배움이 적은 부모 세대는 더욱 아이들의 교육에 목을 매고 모든 자원을 동원해 자식 농사에 ‘올인’ 했다. 배팅에 성공한 이들도 있겠으나 본전도 못 찾는 일이 허다했다. 그러나 전반적인 대한민국의 교육열은 우리 사회 전반을 추동하는 견인차 구실을 한 것이 사실이다.

한편 개발도상국가 시스템을 관통하면서, 우리 사회에 교육은 그 자체로 이데올로기가 됐다.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을 관통한 1970년대는 교실에서 국민교육헌장을 다 같이 암송하던 전체주의적인 분위기가 농후한 시기였다. 학교에서 종을 치면 득달같이 내달려야 했고, 70여 명의 학생들이 콩나물교실에서 북적이며 경쟁했다. 어떤 부모는 자기 자식을 잘 봐달라며 선생님에게 촌지를 받치는 일을 서슴지 않았고, 다는 아니었지만 상당수의 교사가 그와 같은 일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수요는 많고 공급이 적은, 당대의 왜곡된 교육 현장에서 발생한 부조리의 한 단면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나선 ‘여러분들 이후 세대는 공급이 수요를 초과해, 자본주의 논리로 따지면 교육기관은 이제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해 학생들을 유치하게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학생들이 끄덕였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자신들 이야기이기 때문일 거다.

내친김에 동요 한 곡을 더 들려주었다. 1933년 김대현이 작곡한 습작에 가사를 붙인, ‘자전거’였다.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따르르르릉 저기 가는 저사람 조심하세요 어물 어물하다가는 큰일납니다.’ 작사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이 곡은 개발주의 이데올로그에 복무했다고 볼 수 있다. 사람보다 자전거가 먼저인 이 동요의 이미지는 1980년대 호황기를 거쳐 마이카시대, 보행자보다 차량이 우선시되는 문화로 이어졌다는 분석을 더 했다. 학생들의 반응은 고개를 끄덕이던 이들과 갸우뚱한 표정을 지은 이들로 반반이었다.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었다.

‘안전속도 5030’이 시행됐다. 남 일이 아니고 내 일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겠다. 우리는 늘 운전만 하진 않는다. 때론 보행자가 된다. 안전속도는 내가 보행자일 때 안전을 보장받는 일이다. 성숙한 시민으로서 우리는 이제, ‘저기 가는 저 보행자를 조심해야 하는 주체가 운전자’임을 각성해야 할 때다. 제도가 잘 안착하기를 기원한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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