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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늑대와 양치기 소년

[칼럼]늑대와 양치기 소년

기사승인 2021. 05. 30.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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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문화평론가
“우리에게 이솝은 하나의 굴레다.” 몇 해 전, 필자가 운영한 수업에서 곧잘 했던 말이다. 수강생들이 직접 시나리오를 기획하고 짧게나마 영상을 만들어보던 스토리텔링 수업이었는데, 그 학기에 유독 많은 학생에게서 교훈에 강박 같은 것이 자리 잡고 있구나 하는 인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조별 면담마다 반복된 필자의 멘트 중 하나가 위에 언급된 이솝에 대한 비유였다.

풍자의 대가(大家)를 소환해, 비유하고 있자니 머쓱했다. 서둘러 봉합했다. 필자에게 유년 시절 이솝우화는 성경보다 더 강력한 바이블이었다고 소개했다. 이솝우화를 읽으며 교훈을 얻고 처세술을 배웠다. 예를 들어 ‘늑대와 양치기 소년’을 읽으며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리고 부모나 선생님께 신뢰를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처신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돌아보니, 당시 어떤 강력한 프레임이 작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학생들에게 설명했다기보다는 기성세대의 변명에 가까웠다. 이솝이 굴레인 것은 교훈에 대한 강박이 있기 때문이다. 교훈적인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생활 세계 전반에 걸쳐 강요된다면 우리 사회는 특유의 교조적인 흐름으로 인해 경직될 수 있다.

사실 이솝은 억울하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이솝우화는 일본식 번역본과 해설서로 인해 그 진의가 왜곡돼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원전 6세기 인물로 알려진 이솝은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가 노예였단 사실도, 그의 죽음도 각색된 이야기일 확률이 높다. 또한 이솝우화 역시, 고증적인 연구자들 입장에선 세간에 구전된 민담들을 모아 놓은 이야기집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세상의 이야기들을 모아 엮은 책이라면 체제 저항적인 경향을 띨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솝의 죽음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록에 의하면 이솝은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사제들의 탐욕을 고발했다는 이유로 살해됐다고 전해진다. 그 스토리가 역사적 기록이건 각색된 이야기이건, 분명한 것은 체제에 저항하다가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이솝우화가 겨냥한 대상이 피지배층에게 교훈을 전하기보다는 기득권으로서 지배층을 향해 있다는 사실이다.

우화 ‘늑대와 양치기 소년’엔 다른 여러 캐릭터가 등장한다. 마을 사람들 그리고 양 떼들이 바로 그들이다. 양 떼의 은유는 민중의 삶을, 마을 사람들의 상징은 권력을 부여한 주체로서 민중으로 해석해 봄 직하다. 늑대는 외부의 위협으로 대위함에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이제 문제는 양치기 소년인데, 현대적 의미에서 그 대상 세계는 양가적인 해석이 가능해 보인다. 권력을 위탁받은 위정자로서 양치기 소년을 대위해도 좋고 혹은 파수꾼으로서 언론을 상징할 수도 있겠다.

어찌 되었건, 대상으로 지목된 양치기 소년이 누구이든지 간에 백신을 소재로 한 진위를 파악하기 어려운 내용이 매체를 가득 채우고 있다. 많은 국민이 어느 말을 믿어야 할지 혼란을 겪고 있는 매우 혼탁한 시점이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는 것인데…. ‘늑대와 양치기 소년’에서 경고는 세 번에 걸쳐 이루어진다. ‘하지 마라! 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 마!’ 첫 번째는 청유형으로, 두 번째는 경고쯤으로, 마지막은 명령형으로써…. 그리고 양치기 소년은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영구퇴출을 당했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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