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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자연 에세이] 7월 첫째 주, 무더위의 시절

[이효성의 자연 에세이] 7월 첫째 주, 무더위의 시절

기사승인 2021. 07. 05.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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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주필
이효성의 자연 에세이 최종 컷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계절이 되었다. 북반구에서 하지일(夏至日·6월 20~21일)에 태양이 가장 뜨겁게 머리 위에서 내려쬔다. 그러나 이때 가장 더운 것은 아니다. 더위는 그 시점부터 슬슬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태양은 적어도 5월부터는 상당히 뜨겁게 내려쬐지만 복사열이라고 부르는 그 열기의 상당 부분은 겨울 동안 식어버린 대지(大地)를 데우는 데 소모되어 덥게 느낄 정도의 열기는 남지 않는다.

그러나 하지 무렵에 이르면 대지가 충분히 데워져서 태양의 열기가 더 이상 대지에 흡수되지 않고 대신 대기(大氣)를 데우면서 지상에 축적되기 시작한다. 사실 하지 이후에는 태양의 열기는 점점 줄어들지만 그 모든 열기가 다 지상에 쌓여가기 때문에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더워지는 것이다. 그랬다가 8월 하순 즉 처서 무렵부터 태양의 열기가 현저히 줄어 더 이상 축적될 열기가 부족해지면서 더위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9월 초순에 늦더위가 있기는 하지만, 본격적인 더위는 7월 초부터 시작되어 8월 중순까지 약 50일간 지속된다. 이때 더위는 단순히 축적된 태양의 열기에만 의한 것이 아니라 북태평양에서 불어오는 고온다습한 남동계절풍과 6월 하순이나 7월 초에 시작되는 장마의 작용으로 많은 습기가 더해지기 때문에 무더위가 된다. 그래서 한국의 7·8월의 무더위는 피부를 끈적거리게 하고 가만히 있어도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고 등에서 땀이 줄줄 흐르게 만드는 불쾌하고 견디기 힘든 더위다.

사실 이 무더위는 육체적인 작업을 하기 어렵게 한다. 몸을 많이 쓰면 더위가 지나쳐서 숨이 막히기 때문이다. 이런 무더위 속에, 야외에서 밭 매기나 김 매기와 같은 힘든 육체노동을 할라치면 우선 얼굴이나 손에 지나친 자외선을 차단해야 하기에 옷, 수건, 헝겊, 장갑 등으로 몸 전체를 가려야 한다. 따라서 온몸에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숨이 턱턱 막히게 된다. 이런 무더위 속에서는 육체노동뿐만 아니라 정신노동도 쉽지 않다. 더위로 정신이 몽롱해지는 데다 몸이 땀에 배고 끈적거려 도무지 정신 집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때는 시원한 계곡을 찾아 그늘에서 삼림욕을 하거나 바닷가를 찾아 물놀이를 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서 옛날 우리 선조들도 유두절(流頭節·음력 6월 15일, 금년 양력 7월 24일)에 일가나 친지들이 함께 동쪽으로 흐르는 맑은 시내나 산간폭포에 가서 머리를 감고 몸을 씻은 뒤, 가지고 간 음식을 먹으면서 하루를 서늘하게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이 유두절 풍습은 오늘날 주로 7월이나 8월 초에 떠나는 여름 바캉스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은 냉방 시설이 있어 적어도 실내에서는 쾌적하게 지낼 수 있다. 그런 실내에서라면 정신노동이나 웬만한 육체노동도 별 지장이 없이 수행할 수 있다. 집 안에 냉방이 여의치 않다면 냉방시설이 잘되어 있는 공공장소나 쇼핑 몰과 같은 상업 시설에서 쇼핑을 하거나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간단한 작업을 하면서 시원하게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이제 우리 생활수준에서 여름의 무더위는 과거처럼 오롯이 참고 견뎌야만 하는 그런 것은 아니다.

무더위는 생명체에게는 매우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이 무더위 속에서 많은 생명체는 무럭무럭 자라고 2세를 키워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식물은 잎으로 강렬한 햇볕을 이용하여 열심히 광합성을 함으로써 개체를 유지하고, 열매를 키워 후세를 준비하고, 그 잎과 열매로 많은 동물들의 먹이가 되어 준다. 동물들은 한여름의 풍부한 먹이를 이용하여 성장하고, 새끼를 양육하고, 꿀벌에서 보듯, 겨울을 대비하여 먹이를 모아 저장한다.

나쁜 것에도 좋은 면이 있고, 좋은 것에도 나쁜 면이 있다. 무더위는, 인간들을 괴롭히고 심지어는 죽이기도 하지만, 많은 생명들에게 풍부한 먹이를 제공함으로써 생물계 전체에는 먹이사슬이 형성될 수 있게 한다. 무더위를 감사하게 견뎌야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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