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여행] 황금빛 바다의 속살, 생명 품어 더 아름답구나

[여행] 황금빛 바다의 속살, 생명 품어 더 아름답구나

기사승인 2021. 08. 24. 09:51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서천갯벌
여행/ 죽산리 갯벌
죽산리 해변의 갯벌. 물이 빠지면 주민들은 경운기로 배를 끌고 갯벌을 지나 바다에 띄운다./ 김성환 기자
갯벌이 달리 보인다. ‘한국의 갯벌’ 4곳이 지난달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서천갯벌(충남 서천), 고창갯벌(전북 고창), 신안갯벌(전남 신안), 보성-순천갯벌(전남 보성·순천) 등이다. 우리나라 자연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선정된 것은 2007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에 이어 두 번째다. 이 가운데 서천갯벌은 나머지에 비해 덜 알려진 데다 수도권에서 가까워 한나절 여행지로 어울린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서천갯벌은 서면 월호리에서 장항읍 유부도 해안 일대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등급인 넓적부리도요 등 바닷새를 비롯해 갯지렁이 등 저서동물과 염생식물의 서식지로 우수한 생태환경을 갖췄다는 평가다. 한때 공단 조성을 이유로 매립될 뻔했지만 환경단체 등의 반대로 보존돼 의미도 크다.

여행/ 장항스카이워크
서해와 서천갯벌을 내려다볼 수 있는 장항스카이워크/ 김성환 기자
여행/ 장항스카이워크
장항스카이워크 앞 바다는 고대국가 신라와 당나라가 치열한 싸움을 벌인 기벌포전투의 무대다./ 김성환 기자
갯벌 구경 어디가 좋을까. 큰 힘 들이지 않고 공중에서 바다와 갯벌을 볼 수 있는 곳이 장항읍 송림리 해변의 장항스카이워크다. 서천의 최남단이자 금강하구와 닿아 있는 해변에 있다. 주변에는 소나무 숲이 있고 한갓진 해변도 있어 가족이나 연인이 많이 찾는다. 송림리에선 유부도 일대의 갯벌도 아름답지만 정기 여객선이 없어 오가기가 어렵다.

장항스카이워크는 지상에서 15m 높이에 만들어진 약 250m 길이의 전망 산책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여기 올라서면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고 물이 빠진 후 광활한 갯벌도 한눈에 들어온다. 해변에서 보는 바다와 허공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스케일부터 다르다. 눈이 시원해져야 가슴이 후련해지는 법. 꽉 막힌 일상의 답답함을 해소하는 데 탁 트인 풍경만 한 것도 없다. 장항제련소의 굴뚝이 보이고 바다 건너 군산 땅도 눈에 들어온다. 장항은 한때 대한민국 산업화의 주축이었다. 군산과 가까운 덕에 덩달아 발전했다. 장항제련소는 1936년 세워져 금, 구리, 납 등 비철금속을 제련하다가 2008년에 가동을 멈췄다. 오래된 굴뚝이 희미한 추억도 끄집어 낸다.

장항스카이워크는 치열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676년 고대국가 신라와 당나라가 치열하게 다툰 기벌포전투의 무대다. 기벌포는 금강의 하구와 닿아 있는 서해다. 신라는 당나라와 연합해 백제와 고구려를 잇따라 무너뜨린다. 기벌포 전투의 승리를 계기로 당나라를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온전한 삼국통일을 완성했다. 장항스카이워크에 ‘기벌포 해전전망대’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다.

여행/ 장항스카이워크 앞 해변
장항스카이워크에서 내려다 본 서해와 갯벌/ 김성환 기자
장항스카이워크에 가려면 ‘송림마을 솔바람 숲’을 지난다. 소나무가 우거진 솔바람 숲이 또 예쁘다. 장항송림산림욕장으로도 불리는데 수령 70여 년 된 곰솔 약 1만2000그루가 숲을 이룬다. 이곳 소나무는 대부분 해송이라고 불리는 곰솔이다. 소나무의 수피가 붉은색을 띠는 것과 다르게 곰솔의 껍질은 흑갈색을 띠고 바람이 강하게 부는 해변에서도 잘 자란단다. 해변을 따라 약 2km에 걸쳐 숲이 이어진다. 볕이 순해진 요즘 한두 시간 산책하기에도 좋다. 여전히 싱싱한 녹음에 마음이 편안해지고 알싸한 솔향도 좋다. 솔바람 숲 앞이 해변이다. 여름 끝자락 한갓진 해변의 정취도 운치가 있다.

솔바람 숲은 강한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인공으로 조성한 방풍림이다. 장항농업고등학교 학생들이 1954년 바닷가 모래날림과 바람으로부터 학교와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묘목을 심었단다. 따지고 보면 숲은 사람을 보호한다. 해변의 방풍림은 바람을 막아주고 강변의 호안림(護岸林)은 홍수를 예방한다. 사람들은 마을 들머리에 나무를 심고 숲을 조성해 액운도 쫓는다. 이러니 사람 사는 곳에는 항상 숲이 있다. 찾아가기 편한 숲은 삶의 위안이 된다. 솔바람 숲에는 여행자도 여행자지만 운동 삼아 산책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는 인근 마을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

여행/ 송림마을 솔바람 숲
곰솔이 우거진 송림마을 솔바람 숲. 보라빛 맥문동꽃이 아직 지지 않았다./ 김성환 기자
여행/ 솔바람 숲
솔바람 숲 앞이 해변이다. 여름 끝자락의 해변은 한갓지고 조용하다./ 김성환 기자
솔바람 숲에는 맥문동이 지천이다. 여름에 꽃이 피면 숲에는 보라빛 융단이 깔린다. 꽃은 아직 지지 않았다. 붉은 갯패링이꽃도 듬성듬성 피어있다. 곰솔과 대조를 이루는 풍경이 제법 볼만하다. 이거 보려고 오는 사람들도 많다. 솔바람 숲에서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이 가깝다. 바다 생물의 생태계를 한눈에 배울 수 있어 장항스카이워크와 연계해도 좋다. 우리나라 해양생물의 표본 4200여 개를 담은 원형 기둥 ‘생명의 탑’이 볼만하다.

장항읍 죽산리 매바위공원 일대의 갯벌도 아름답다. 매를 닮은 바위가 매바위다. 공원의 매바위를 시작으로 칼바위, 먹바위, 한목 등의 갯바위가 일렬로 늘어섰다. 개야도(군산), 연도 등 크고 작은 섬도 있고 새만금방조제도 보인다.

여행/ 죽산리 해변
죽산리 어민들은 물이 빠지면 경운기로 배를 끌고 갯벌을 지나 바다를 오간다./ 김성환 기자
여행/ 죽산리 갯벌
갯바위가 늘어선 죽산리 갯벌/ 김성환 기자
사람도 풍경이 된다. 죽산리 어민들은 물이 빠지면 경운기로 배를 끌고 갯벌을 지나 바다에 배를 띄운다. 반대로 배를 뭍으로 올릴 때도 경운기로 배를 끌고 갯벌을 지난다. 해질 무렵 이 풍경을 보기 위해 찾아 오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매바위공원은 크지 않다. 그러나 사방이 탁 트여 바다와 갯벌을 바라보며 쉬어가기 괜찮다. 진입로가 좁아 불편한 것이 단점인데 그래서 오히려 더 한갓지다.

비인면의 선도리마을이나 서면의 월하성마을은 갯벌체험마을이다. 특히 선도리마을에선 바닷길이 열리면 쌍도까지 걸어갈 수 있어 찾는 이들이 많다. 쌍도는 밀물 때 하나의 섬으로 보이지만 썰물 때는 두 개의 섬이 된다.

여행/ 매바위공원
매바위공원. 왼쪽의 바위가 매를 닮은 ‘매바위’다. 태풍에 머리 부분이 떨어져나갔단다./ 김성환 기자
갯벌을 가만히 바라보면 참 신비하다는 생각이 든다. 멀리서 보면 그저 거무튀튀한 진창인데 이 안에 온갖 생명이 꿈틀거린다. 갯벌에 몸 붙이고 사는 사람도 있다. 갯벌이 토해내는 산물은 삶을 지탱하는 큰 힘이 된다. 아이들도 갯벌을 좋아한다. 체험프로그램 중에서 흔한 것 중 하나가 갯벌체험이다. 그래서 갯벌은 친숙하게 다가온다. 퍽퍽한 일상을 버틴 사람들은 갯벌을 찾아 위안을 받고 힘을 얻기도 한다.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발을 잡아준다/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가는 길을 잡아준다/ 말랑말랑한 힘/ 말랑말랑한 힘”(함민복 ‘뻘’).

‘말랑말랑한 힘’이 정신을 맑게 하고 삶의 방향도 잡아준다. 서천에선 춘장대해변이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무대가 된 신성리갈대밭이 잘 알려졌다. 광활한 갯벌도 제법 괜찮은 볼거리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