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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그림 같은 집, 마음을 살피다

[여행] 그림 같은 집, 마음을 살피다

기사승인 2021. 10. 0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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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 기점·소악도
여행/기점소악도 기쁨의집
소기점도와 소악도를 잇는 노두 중간의 ‘기쁨의 집’. 양파모양의 황금빛 지붕이 인상적이다./ 김성환 기자
신안 글·사진 김성환 기자 = 전남 신안은 섬으로만 이뤄진 군(郡)이다. 유인도, 무인도 다 합친 수가 1000개 안팎에 달한다. ‘1004(천사)섬 신안’이라는 캐치프레이즈도 이렇게 탄생했다. 이 중에 기점·소악도는 ‘순례자의 섬’으로 통한다. 예수 12사도의 이름을 딴 12개의 ‘집’이 있어서다. 처지가 녹록하지 않은 사람들이 거기서 흐트러진 마음을 여민다. 입소문 좇아 구경 삼아 들렀던 이들도 순해져서 돌아온다.

여행/ 병풍도
기점·소악도를 거느린 병풍섬. 황무지는 맨드라미 꽃동산이 됐고 마을의 집들은 빨간 지붕을 이고 있다./ 김성환 기자
기점·소악도는 어디쯤일까. 염전이 유명한 증도 옆 병풍도에 딸려 있다. 병풍도는 ‘맨드라미 섬’으로 불린다. 신안군이 주민들과 힘을 합쳐 약 2만㎡의 황무지를 꽃밭으로 탈바꿈시켰다. 약 200만 송이의 맨드라미를 심어 꽃동산을 만들고 맨드라미 거리도 조성했다. 집집마다 지붕을 빨간색으로 칠했다. 꽃동산에서 내려다보면 마을 풍경이 만화 같다. 이런 병풍도는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등 작은 ‘새끼섬’을 거느린다. 이 다섯 개의 섬이 노두로 이어진다. 썰물 때 한 몸처럼 붙었다가 밀물 때 갈라선다. 여기 사람들은 병풍도를 뺀 나머지를 통틀어 기점·소악도라고 부른다.

하루가 멀다 하고 뭍과 섬을, 섬과 섬을 잇는 다리가 생기지만 기점·소악도는 여전히 뱃길만 유효하다. 대부분은 압해도 송공항에서 배를 타는데 여기서 대기점(도) 선착장까지 1시간 20분쯤 걸린다. 볕 좋고 하늘 푸른 날에는 뱃길로 찾아가는 섬이 참 반갑게 느껴진다.

여행/ 건강의 집
대기점 선착장의 ‘건강의 집’. 그리스 산토리니 정교회 성당을 닮았다./ 김성환 기자
기점·소악도의 12개의 집은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국내외 11명의 작가들이 참여해 만들었다. 대기점 선착장에서 시작해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에 이르는 길을 따라 약 1km마다 하나씩 등장한다. 그 유명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사람들이 조용한 섬에서 명상하며 걷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었단다. 작품을 연결하는 약 12km 구간에는 ‘12사도 순례길’이라는 이름도 붙었다. 섬을 잇는 순례길이라고 ‘섬티아고 순례길’로도 불린다. 이름도 낯선 작은 섬이 이렇게 ‘순례자의 섬’이 됐다.

여행/ 그리움의 집
동화 속 오두막을 닮은 ‘그리움의 집’/ 김성환 기자
여행/ 감사의 집
작은 호수에 떠 있는 ‘감사의 집’. 밤이 되면 은은한 조명이 켜진다./ 김성환 기자
12사도 순례길은 달뜬 마음으로 출발했다가 끝내 차분해지는 길이다. 일단 눈이 즐겁다. 집은 하나같이 예쁘다. 대기점 선착장의 ‘건강의 집(베드로)’은 파란 지붕, 하얀 외벽이 눈에 띈다. 그리스 산토리니의 정교회 성당을 닮았다. 논둑길 끝 고요한 숲 속에는 동화 속에 등장하는 오두막 같은 ‘그리움의 집(야고보)’이 있다. 소기점도와 소악도 노두 앞의 ‘행복의 집(필립)’은 프랑스 남부지방의 전형적인 건축형태를 보여준다. 적벽돌과 갯돌, 적삼목을 덧댄 유려한 지붕 곡선과 물고기 모형이 독특하다. 소기점도 작은 호수에 떠 있는 ‘감사의 집(바르톨로메오)’은 전체가 유리로 마감됐는데 밤이 되면 은은한 불빛이 흘러나온다. 소기점도와 소악도를 잇는 노두 중간에는 둥그런 황금빛 지붕이 인상적인 ‘기쁨의 집(마테오)’이 자리 잡았다. 광활한 바다와 갯벌이 멋진 배경이 된다. 진섬에 딸린 딴섬에는 ‘지혜의 집(가롯 유다)’이 있다. 프랑스 몽생미셸의 수도원처럼 생겼다. 전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증샷‘ 명소다.

섬사람들의 일상이 담긴 집도 있다. 이런 식이다. 대기점도 북촌마을 입구의 ‘생각하는 집(안드레아)’은 연자방아 받침돌 등을 소재로 썼다. 마을을 활보하는 고양이 동상도 서있는데 대기점도가 ‘고양이 천국’이어서다. 30여 년 전 들쥐 때문에 농사 피해가 컸는데 이를 막으려고 고양이를 섬으로 데려와 키웠단다. 지금은 사람보다 고양이가 더 많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보기 좋고 깃든 사연이 흥미로운 길은 ‘다음에는 뭐가 나올까’ 하는 호기심을 자아낸다.

여행/ 행복의 집
‘행복의 집’ 내부. 12개의 집들은 종교와 무관하게 삶을 돌아보고 마음을 살피는 오롯한 혼자만의 공간이 된다./ 김성환 기자
나중에는 마음을 살피게 된다. 집이 작아서다. 두세 명이 들어서면 꽉 차니 ‘1인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눈 둘 데가 없으니 마음으로 눈이 간다는 얘기다. 오롯한 혼자의 공간에선 모든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법이다. 작은 창으로 보이는 풍경도, 거길 비집고 들어오는 볕발도 새롭다. 사위가 막힌 적요한 공간에선 새어 나오는 얕은 숨소리에도 정신이 번쩍 들기 마련이다. 이러니 한 집, 한 집 지날수록 안에 머무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진다.

여행/ 지혜의 집
프랑스 몽생미셸 수도원을 떠올리게 만드는 ‘지혜의 집’/ 김성환 기자
작고 예쁜 집만 생각하고 기점·소악도에 온 사람들은 병풍도와 대기점도를 잇는 노두를 보고 놀란다. 길어서다. 1km 남짓이나 된다. 병풍도,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를 잇는 3개의 노두를 다 합치면 길이가 1.7km가 넘는단다. 지금은 말끔한 새 노두가 놓였지만 20~30년 전에는 “망태, 바지게 지고 돌을 날라 만든” 투박한 노두가 있었단다. 썰물 때 갯벌이 드러나면 새 노두 옆으로 옛 노두의 흔적이 드러난다.

섬과 섬을 잇는 노두가 물에 잠기면 발이 묶인다. 이러면 다시 썰물 때를 기다려야 한다. 따지고 보면 섬이란 게 원래 물때가 허락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물때를 기다리며 걸음을 멈추면 안 보이던 것이 보이고 귀도 열린다. 이러면 싱싱한 갯벌도 눈에 들어온다. 신안갯벌은 지난 7월 서천갯벌(충남 서천), 고창갯벌(전북 고창), 보성-순천갯벌(전남 보성·순천)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신안갯벌이 압도적으로 넓다.

여행/ 기점소악도 노두
병풍도와 대기점도를 잇는 노두는 길이가 1km에 달한다./ 김성환 기자
여행/ 기점소악도
시간과 물때에 따라 변하는 풍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김성환 기자
순례에 나서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그런데 결과는 대체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순례의 끝에서 삶을 반전할 계기를 보게 된다는 것. 이 길에서도 그렇다. 광활한 바다와 갯벌을 벗 삼아 노두를 지나고 숲길을 헤쳐 마지막 12번째 집에 도착하면 후회스러웠던 지난날이 잊히고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종교와 무관하게 삶을 반추하는 길이 여기다. 반나절도 채 안 걸려 완주할 수 있는 코스지만 목적지에 도달하지 않아도 그만이다. 길바닥에 ‘털석’ 엉덩이 붙이고 앉아 시간과 물때에 따라 변화하는 풍경을 보면 꽉막힌 일상이 잊히고 숨통이 트인다. 이게 ‘힐링’이다. 마침 걷기 좋은 계절이다.

대기점 선착장 인근에서 자전거도 빌릴 수 있다. 아침 일찍 섬에 들었다가 오후에 나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하루 묵어 가는 것도 좋다. 소기점도에 마을 게스트하우스가 있는데 보수 중이라 운영을 중단한 상태다. 북촌마을에 민박집이 많다. 변변한 마트는 병풍도에 있는데 노두가 잠기면 못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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