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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나눔은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는 것”

[인터뷰] “나눔은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는 것”

기사승인 2021. 10. 1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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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바보의나눔 우창원 신부
우창원 신부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사랑과 나눔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재)바보의재단 우창원 신부/ 김성환 기자
일상이 참 많이 꼬였다. 사는 일이 녹록지 않다. 우창원 신부는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자"고 했다. 살다 보면 힘겨운 상황이 닥치지만 그럴 때마다 도움을 주려는 움직임도 끊임없이 일어난단다. "이걸 느끼면서 힘을 내야죠. 함께라고 생각하면 어려움을 덜 수 있고 이겨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최근 서울 중구 (재)바보의나눔 사무실에서 우 신부를 만났다. 올해 5년째 이곳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바보의나눔은 고(古) 김수환 추기경(1922~2009)의 사랑과 나눔 정신을 이어가는 순수 민간 모금 및 배분 단체다. 비영리재단이자 공익법인이다. 2010년 2월 설립돼 인종, 국가, 종교, 이념을 초월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곁에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바보의나눔 사무실에 걸린 김수환 추기경 사진
우창원 신부 집무실에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을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김성환 기자
▲ 사람과 함께한 '바보 김수환'

김수환 추기경은 생전 자신의 자화상에 '바보야'(2007)라는 제목을 붙였다. 스스로 '바보'라고 불렀다. 단순한 겸손이나 겸양이 아니었다. 하느님의 사랑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는 고백의 발로였다. 허물 많은 '죄인'에게 가한 스스로의 채찍질이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소외된 이들에게 벽 없이 다가가 모든 것을 온전히 나누려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이주노동자를 만나 남은 통장 잔액 340만원을 모두 나눠주고 사후 각막 기증으로 누군가의 눈(目)을 밝힌 '바보'다. 어느 저녁 서울 용산 사창가 사람들이 재활하며 사는 곳에 찾아가 이들을 위로하고 밥을 놓고 먹을 식탁까지 손수 사다줬다. 소외된 이들과 함께한 숱한 일화는 그가 선종(善終)한 후에도 여전히 회자된다.

"그런 분이셨습니다. 늘 사람을 사람답게 생각하고 사람과 함께하려고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차이가 없고 그래서 당신에게 나눔은 평등해야 하고 선택적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종교를 뛰어넘어 사회 안에서 '바보'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바보의나눔이 설립됐다. 올해 11년째다. 처음에는 종교재단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성당 신자들의 참여가 대부분이었다. 이제 많이 달라졌다. 비신자나 기업의 참여가 늘었다. 어려운 이들과 함께 사용하고 싶다며 현물을 전하는 기업도 생겼다. 주택을 기부 받은 적도 있다. 비영리단체가 청년들을 위한 무상 스타트업 공간으로 활용 중이란다. 규모가 큰 모금단체에 비하면 내세울 만한 정도는 아니지만 모금액도 꾸준한 증가세다. 비종교적 부분의 지원 비율이 60%에 달한단다. 생활이 어려운 가정의 아이와 부모, 희귀난치성 질환 환자, 독거노인, 미혼모나 가정폭력피해 여성, 장애인 자립 활동 등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다양한 분야로 지원대상도 확장되고 있다.

여성 가장들의 긴급 생계비를 지원하는 사업은 개인을 지원하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여성 가장이 가계를 일으키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긴급 생계비를 지원한다.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시작했는데 해당 개인의 사례관리를 해줄 수 있는 주민자치센터나 협회, 단체에서 신청을 하면 매달 심사를 통해 대상자를 선정하고 1인당 최대 400만원까지 지원한단다.

바보의 나눔터
바보의나눔에 후원하는 소상공인 가게에 붙여지는 '바보나눔터' 부착물/ 김성환 기자
▲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는 것"

먹고사는 것이 넉넉하면 마음이 열린다. 문제는 처지가 어려울 때다. 요즘이 그렇다. 바이러스가 느닷없이 일상으로 침투한 후 가게를 운영하는 소상공인들의 삶이 퍽퍽해졌다. 손님은 줄고 매출은 떨어지고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 됐다. 바보의나눔 후원자 중에는 소상공인들도 많다. 이들은 매월 3만원 이상 기부금을 내고 있다. 이런 가게에는 '바보나눔터'라는 노란 간판이 붙어있다.

"처지가 어려우니 피할 줄 알았는데, 어려우니 오히려 나누려는 마음이 더 커지나 봅니다. 다들 정말 어렵다, 어렵다 해요. 3만원도 부담일 텐데 이건 끊지 않을 테니까 걱정 말라고 합니다. 이러니 아직은 '살만한 사회'입니다."

우 신부는 "나눔은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올리면 된다며 같이 밥 먹자"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가진 것이 많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마음과 정성이 관건이다. 넉넉하지 않아도 어떤 마음의 지향을 갖고 가진 것을 어떻게 나누느냐가 중요하다. 결국 생각과 인식의 문제다.

"기부나 나눔을 선택적인 문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많습니다. 많이 가져야 나눌 수 있다는 거죠. 나눔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에 대한 약간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부유와 빈곤의 문제가 아닌 겁니다. 가진 행복을 함께 나누면 그 행복이 더 커진다고 아이에게 얘기하는 엄마를 봤습니다. 공존을 위해 타인과 함께 무엇인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그러면 우리의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의 발로가 나눔입니다."

바보의나눔
바보의나눔은 사람들이 나눔과 기부를 편하고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이동식 키오스크도 기부함도 제작했다./ 김성환 기자
▲ 생명·노동·인권 분야 지원에도 더 큰 관심

(재)바보의나눔은 새로운 10년을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 시국'이라 큰 변화는 어렵겠지만 오히려 내실을 다질 기회라고 우 신부는 얘기했다. 자존감을 갖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듣고 찾아갈 계획이다. 생명, 노동, 인권 등의 분야도 포함된다.

"다른 외부 배분기관들이 안 하는 부분을 찾을 겁니다. 생명의 소중함을 곱씹어보자는 취지에서 자살시도 환자를 대상으로 사회 적응을 돕는 지원사업을 시범 운영 중입니다. 내년이면 5년째인데 필요한 지원이 무엇인지 고민할 겁니다. 또 노동이나 인권 분야에도 관심을 쏟을 생각입니다. 치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잘 준비해서 꼭 필요한 곳에 온정이 전해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재)바보의나눔의 문은 높지 않으니 나누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면 언제든 찾아와서 함께 고민하자고 우 신부는 말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마지막에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고 했습니다. 그 말처럼 지금까지 찾아온, 또 앞으로 찾아올 사람들에게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또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사랑을 나눠 줄 수 있는 곳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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