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칼럼] 제20대 대선판과 ‘오징어 게임’

[칼럼] 제20대 대선판과 ‘오징어 게임’

기사승인 2021. 10. 20. 08:55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서유경 경희사이버대 후마니타스학과 교수
서유경 교수
서유경 경희사이버대학교 후마니타스학과 교수
대학의 학문 분과 중에 ‘정치철학’이란 분야가 있다. 다소 거칠게 설명하면 정치학은 주로 ‘특정 정치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어떻게 다함께 공존할 수 있을까’라는 거시적·객관적 문제를 다루며 철학은 특성상 ‘한 인간으로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미시적·주관적 문제를 천착한다. 이 둘이 합쳐진 정치철학은 ‘이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라는 상호주관적인 질문을 제기함으로써 앎과 실천의 문제에 답변할 것을 종용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공사 구분이나 사물의 질서를 혼동하지 않도록 경계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같은 일반 시민들이 이런 정치철학의 문제를 고민할 상황은 별로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단 한 명의 후보를 선택하여 장장 5년간 나라 전체의 운명을 통째로 맡겨야 하는 대통령선거라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게다가 우리가 2007년과 2012년에 잘못된 선택을 함으로써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던 경험치도 쌓여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내년 20대 대통령 후보들을 상대로 현미경을 들이대 보기도 하고 한쪽 눈을 지그시 감아보기도 하면서 꼼꼼하게 저울질을 해보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통령선거에서는 정당 선호, 후보자 매력, 미래 비전이 유권자들의 투표행태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요인으로 꼽힌다. 우선 정당 선호를 생각해 보자. 필자는 민주당 당원은 아니지만 지난 다섯 번의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했다. 이명박과 박근혜 후보를 선택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자질과 능력 면에서 상대 당 후보보다 더 높은 점수를 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정당 선호의 문제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지금 복역 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때 필자가 좋은 판단을 했었다고 자부한다. 이는 내년 대선에서 더욱 신중한 결정을 해야 할 이유가 된다.

그런데 여당의 대선후보로 확정된 이재명이나 야당의 유력 후보인 윤석열과 홍준표 그 누구도 최선의 후보가 아닌 듯하니 문제다. 비근한 예로 민주당 경선에서 최종 2위를 한 이낙연 후보는 대장동 사태가 불거지자 이재명 후보의 여러 가지 도덕적 흠결들이 본선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현재 당내 경선이 한창인 국민의힘에서는 홍준표 후보가 고발 사주 의혹을 사고 있는 윤석열 후보에게 똑같은 논리로 후보 사퇴를 종용하고 있다. 윤석열 후보도 이에 질세라 자신을 공격하는 데 화력을 집중하지 말고 정치경력 26년 차 전문가답게 홍 후보의 정책이 뭔지 보여달라고 역공을 취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세간에 내년 대선을 두고 ‘비호감 선거’니 ‘차악 선택을 강요하는 대선’이니 ‘제일 센 자가 이기는 선거’니 하는 웃픈 표현들이 나돌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시도 때도 없이 정쟁만 일삼는 민주당이나 국민의힘 모두 거기서 거기고, 이미 본선행을 따낸 이재명 후보나 본선행이 가장 유력한 윤석열과 홍준표 후보도 믿고 선택하기에는 너무나 위험부담이 커 보인다. 그래서 20대 대선판에서 정당 선호나 후보자 매력 요인이 정당에 매이지 않은 중도층이나 무당층의 이성적 선택을 위한 척도로 작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남은 선택지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들의 마음을 확 끌어당길 수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일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재명 후보의 10월 10일 서울 합동연설회 연설은 평가받을 만하다. 그는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한 백범 김구 선생의 말씀을 환기했다. 이어 그는 “문화강국이 70여 년이 지난 지금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로마, 파리, 뉴욕이 자리했던 세계의 ‘문화중심’에 서울이 나란히 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우리의 문화와 예술, 안정된 민주주의, 팬데믹에 대응하는 우수한 의료체계와 높은 시민의식, 무혈평화의 촛불혁명에 세계가 놀라워합니다... 우리의 소프트파워를 더욱 강화하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선진 문화강국을 만들겠습니다.”라고 선언했다.

한마디로 그의 연설은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거기 있던 다른 세 명 후보의 현재에 초점이 맞춰진 성토 일색의 연설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최근 미국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 수미 테리가 지적하듯이 오징어 게임의 선풍적인 인기는 한국이 소프트 파워 강국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영국 BBC방송도 ‘오징어 게임’ 열풍은 서구 사회를 이미 여러 차례 덮친 바 있는 ‘한국 문화 쓰나미의 가장 최신 물결’이라고 논평했다. 이런 전 세계적인 ‘오징어 게임’ 열풍 속에서 그가 제시한 문화강국 비전은 현재 우리 국민이 대통령 후보에게 가장 듣고 싶었을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포착한 연설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울림이 컸던 셈이다.

대선이 다가오면 우리 유권자들은 ‘이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라는 진지한 정치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정작 대통령이 되겠다는 후보들은 인신공격과 정치공학적 계산에만 몰두하는 듯해 안타깝기 그지없다. 어차피 이번 대선판에서는 정당 선호나 후보자 매력 요인이 무력화되었다. 따라서 누군가가 승리를 원한다면 우선 중도나 무당층의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는 국가의 매력적인 미래 비전과 그것의 구체적 실현 정책 패키지를 함께 제시하는 게 최선일 듯하다. 이미 ‘문화강국 대한민국’ 비전을 선포하고 본선 링에 안착한 여당 후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국민의힘 후보들처럼 각자도생·승자독식의 오징어 게임에만 열중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는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