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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실패해도 괜찮아요. 그게 전부가 아니니까.”

[인터뷰] “실패해도 괜찮아요. 그게 전부가 아니니까.”

기사승인 2021. 11. 23.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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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수 신부 / 청년문간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문수 신부님
이문수 신부는 고단한 청년들에게 “실패해도 괜찮다. 그래도 인생을 재미있게 살 수 있다”고 응원한다./ 김성환 기자
이문수 신부는 식당 ‘청년밥상 문간’을 운영한다. 청년밥상 문간은 청년들이 부담 없이 한 끼를 해결하도록 3000원의 가격으로 김치찌개를 내놓는다. 밥은 무한리필이다. 이게 화제가 돼 TV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도 출연했다. 최근에는 식당에서 만난 청년들의 사연을 책으로 엮었다. 책에는 ‘누구도 벼랑 끝에 서지 않도록’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얼마 전 서울 성북구 정릉시장의 청년밥상 문간(1호점)에서 만난 그는 “벼랑 끝까지 몰린 이에게 건네는 위로를 담았다”며 “거기 서있지 말고 이리와, 이리와”하는 얘기라고 했다.

“이게 전부라고 생각해서 기를 쓰고 했는데 잘 안 될 때 벼랑 끝으로 몰리는 것 같아요. 실패해도 괜찮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다른 것을 해도 된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설계한 대로 그림이 안 그려져도 인생을 재미있게 살 수 있다고 말이죠.”

이 신부도 실패해봤다. 대학은 3수 끝에 들어갔다. 석사 학위를 받기 위해 스페인 유학에 나섰지만 적응하지 못해 학업을 중도 포기했다. 만신창이가 돼서 귀국했지만 얻은 게 하나 있다.

“어학원 가기가 너무 싫었어요. 한번은 수업시간에 억지로 앉아 있는데 ‘핑~’하고 정신이 나가는 것 같았어요. 이 끈을 놓치면 죽겠다 싶었어요. 정말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거나 정말 싫은 것을 계속 하면 사람이 다친다는 걸 알았어요. 숨이 끊어지는 게 아니라 마음속 불꽃이 꺼지는 거예요. 심지가 사그라지는 거예요.”

여행/ 청년밥상 문간 1호점
서울 성북구 정릉시장에 위치한 ‘청년밥상 문간’ 1호점/ 김성환 기자
이 신부의 눈에 요즘 청년들은 참 고단하다. 주거비는 오르고 취업도 어렵다. 현실은 막막하고 미래는 불투명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아름다운 ‘청춘’이지만 동시에 안쓰럽다.

“다시 대학생이 된다면 못 버틸 거예요. 경쟁이 치열해요. 얼마 전 한 대학생을 만났는데 자신은 지금까지 너무 열심히 살아왔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마치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이 노인이 돼서 마지막에 하는 대사처럼 들렸어요. 번 아웃을 경험하는 청년이 많다는데 생각해보니 초등학생 때부터 치열하게 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음의 불씨를 살리고 지켜주는 응원과 격려가 필요해요. 부모든, 사회든 넘어진 청년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해야죠.”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그렇게 한다고 성공이 보장되지도 않는다. 불합리한 사회와 질서도 장애다. 그렇다고 좌절하거나 세상을 등지지는 말아달라고 이 신부는 부탁한다. “의욕을 잃은 채 거기 매몰돼 있으면 모든 게 끝이에요. 억울해도 인정할 건 인정하고 나아가야 해요.”

이 신부는 2017년 12월 청년밥상 문간 1호점을 오픈했다. 2015년 여름 어느 고시원에서 한 청년이 굶주림으로 죽음을 맞았다는 뉴스가 계기가 됐다. 고단한 청년들을 위해 3000원의 저렴한 가격으로 김치찌개를 판매하는 것이 화제가 돼 지난 4월 TV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도 출연했다. 이후 달라진 것이 많다.

“전에는 김치찌개 파는 식당 운영한다고 말하면 신부님이 왜 식당을 하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았어요. 지금은 ‘아! 그 신부님, 그 식당’이라며 알아봐요. 큰 힘이 돼요. 후원도 늘었어요. 정기 후원자가 80명 정도였는데 방송이 나간 후 1300명이 됐어요. 지금도 매달 10명, 20명씩 늘어나고 있어요.”

이문수 신부님
이문수 신부는 최근 ‘청년밥상 문간’에서 만난 청년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김성환 기자
관심이 커진 만큼 청년들을 응원하기 위한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얼마 전에는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인근에 청년밥상문간 2호점을 열었다. 내년 상반기에는 종로구 대학로에 3호점을 열 계획이다. 멀리 신림동에서 밥 먹으러 정릉시장이나 이화여자대학교까지 오기 불편하니 크고 거창하지 않아도 여러 지역에 식당을 내고 싶단다. 이유는 또 있다. 양질의 아르바이트 자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의 발로다.

“메뉴가 김치찌개 하나여서 레시피를 매뉴얼화할 수 있어요. 패스트푸드점에서도 전문 요리사가 아닌 청년들이 아르바이트를 하잖아요. 요리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김치찌개만 파는 식당이 좋은 직장은 못 되겠지만 4대 보험이나 만기수당 같은 것이 제대로 보장되는 양질의 아르바이트 자리를 제공하는 곳은 될 수 있어요. 또 장기적으로 여러 곳에 식당이 생기면 직영점처럼 운영하게 되면 본사 직원으로 청년들을 고용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식당 운영만 따지면 지금도 여전히 적자다. 운영비 대부분이 인건비다. 식당이 하나씩 늘어나는 만큼 청년들을 위한 응원의 힘도 커질 테니 포기할 수 없다. 그러니 청년들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달라고 이 신부는 당부한다.

“옆에서 손을 내밀어도 청년들이 내민 손을 잡지 않으면 도울 수가 없는 거잖아요. 꿈과 계획보다 자신이 소중해요. 실패해도 소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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