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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책임 면죄부 히로히토, 전쟁에 적극적인 모습 밝힌 일기 공개

전쟁 책임 면죄부 히로히토, 전쟁에 적극적인 모습 밝힌 일기 공개

기사승인 2021. 12. 05.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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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 "히로히토 일왕, 전쟁 각오 드러내"
"전쟁 결과에 만족, 적극적 작전 요구도"
히로히토, 도쿄재판 불기소 전쟁 책임 면죄부
진주만
미국 하와이 진주만 기념관./사진=미 국방부 동영상 캡처
일본의 진주만 공습 직전인 1941년 10∼11월 히로히토(裕仁·1901∼1989) 당시 일왕이 전쟁 개시를 각오하는 모습을 측근에게 보였다는 기록이 공개됐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5일 보도했다.

이는 일본의 침략 전쟁이 당시 일본 지도자들의 결정에 의한 것으로 히로히토 일왕에 전쟁 책임이 없다는 면죄부 논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는 왕실 업무를 담당하는 궁내청(宮內廳) 고위직인 시종장(侍從長)을 지낸 햐쿠타케 사부로(百武三郞·1872∼1963)의 일기에 히로히토가 전쟁 시작(開戰)의 시비(是非)를 놓고 고민하고 흔들리는 나날이 기록됐다며 ‘이미 각오를 드러나는 모습’ 등이 기록돼 있다고 전했다.

아사히는 히로히토는 극동 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에서 개전에 신중하고 평화를 원했지만 ‘정부나 군부의 진언(進言)으로 마지못해 동의하게 됐다’며 불기소 처분됐다며 하지만 최근 역사연구에 따르면 그가 개전 직전에 이를 전제로 전쟁 종결 수단을 궁리하거나, 개전 후에는 전쟁 결과(戰果)에 만족해 적극적인 작전을 요구하는 등 전쟁에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는 시기도 있었다고 밝혔다.

햐쿠타케 시종장의 1941년 10월 13일 일기에는 “바짝 다가온 시기에 대해 이미 각오하신 것 같은 모습”이라는 얘기를 히로히토를 면담한 마쓰다이라 쓰네오(松平恒雄) 궁내대신으로부터 들었다고 적혀 있다.

또한 일기는 히로히토의 마음이 앞서가는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이는 기도 고이치(木戶幸一) 당시 내(內)대신이 “가끔 선행하는 것을 만류하고 있다”고 발언했다는 내용도 기록됐다. 기도 대신은 히로히토가 “개전(開戰)을 결의하는 경우, 전쟁 종결 수단을 처음부터 연구해 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 적었다.

같은 해 11월 20일 일기에는 기도 대신이 “폐하의 결의가 지나친 것처럼 보인다”, “외상(外相) 앞에서는 어디까지나 평화의 길을 다해야 한다는 인상을 주는 발언을 하도록 부탁했다”고 말한 내용이 포함됐다.

당시 외무상은 도고 시게노리(東鄕茂德·1882∼1950)로 그는 패전 후 A급 전범으로 극동 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에 회부돼 금고 2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병사했다.

아사히는 “만일 개전이 되는 경우 선전(宣戰·선전포고)의 조칙(詔勅·왕이 발표하는 공식 문서)을 발표하게 될 것”이라는 전쟁 개시에 관한 히로히토의 발언이 같은 날 기도가 쓴 일기에 기재돼 있다고 전했다.

아사히는 이 일기가 “미·일 전쟁 시작에 마지막까지 소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히로히토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며 “개전 직전에는 전쟁을 놓고 고민하고, 마음이 흔들렸음을 잘 알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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