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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연금·노동·교육개혁, ‘곡물법 폐지’처럼 해내기를

[칼럼] 연금·노동·교육개혁, ‘곡물법 폐지’처럼 해내기를

기사승인 2022. 05. 1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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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논설심의실장)
논설심의실장
많은 국가에서 정치 과잉이 경제를 망치는 경우를 보게 되고 또 어느 사회에서든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가 없지 않다. 그러나 관습을 제외한 공식적 제도의 변화는 대개 정치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제도 개혁의 문제가 나오면 그런 냉소 속에서도 결국 정치에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정치인들이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위해 심지어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린 사례들도 있다.

그런 대표적 사례로 지주계급이었던 귀족 출신의 영국 의원들이 곡물법 폐지에 찬성한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1815년에 영국에서 도입된 곡물법은 수입곡물에 높은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곡물가격을 일정 이상으로 유지되도록 보장해주었다. 따라서 곡물법은 지주들로서는 자신의 토지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가격을 보장해주는 ‘기특한’ 법이 아닐 수 없었다.

곡물 소비자들의 희생으로 지주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이런 곡물법을 폐지하려는 ‘반(反)곡물법’(Anti-Corn Law) 운동이 리처드 코브던 주도로 일어났는데 로버트 필 당시 영국 수상은 자유무역에 대한 일반적인 원칙은 받아들였지만 곡물법의 폐지에는 반대했다. 임금이 생존수준으로 돌아간다는 임금철칙(iron law of wage)설을 믿었던 필은 곡물법 폐지가 곡물가격의 하락을 가져오는데 곡물가격이 하락하면 임금도 따라서 하락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코브던과 필 수상은 치열한 논쟁을 벌였는데 코브던은 도시의 노동자들도 높은 곡물가격으로 살기 힘들고 곡물법이 폐지되면 임금도 올라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곡물가격의 인하가 도시 노동자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 필 수상은 자신의 입장을 바꾸었다. 그 결과 토리당은 분열되었지만 필을 따르던 귀족과 지주들이 곡물법 폐지에 찬성투표를 했다.

지주로서 자신들의 개인적 이득에 반하는 투표를 한 것은 이들이 애덤 스미스의 자유무역에 대한 이론과 코브던의 주장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반곡물법 운동의 주도자였던 코브던도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섬유업에 종사했는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곡물법의 폐지보다는 섬유업과 관련된 품목들의 관세를 인하하는 데 집중했겠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영국인들 모두가 승리자였다. 곡물법 폐지 이후 프랑스 등 유럽각국과 상업협정을 맺어 관세를 낮춘 결과 10년 새 교역량이 5배 늘어났고 모든 영국인들은 그만큼 더 잘살게 되었고 그들의 식탁도 훨씬 풍성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장황하게 영국의 사례를 설명한 것은 우리 국회에서도 영국에서의 곡물법 폐지와 같은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연금, 노동, 교육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호소했다.

사실 연금개혁은 이미 대선토론 때 합의를 이끌어낸 적도 있지만 이 개혁들은 곡물법처럼 여야 의원들의 이해관계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처럼 이런 개혁을 먼저 꺼내면 선거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는 정도의 영향만이 있을 뿐이다.

노동개혁의 경우에는 이전의 문재인 정부에서 만들었던 규제들을 다시 국제적인 기준에 부합하게 재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거대야당으로서는 이전에 주도한 노동관계법들을 다시 고치는 것이 매우 불편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인들도 코브던과 필 수상이 했던 치열한 논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영국 정치인들이 무엇이 영국인들에게 좋은 것인지 치열한 논쟁을 통해 찾아갔듯이 우리 정치인들도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할 이유는 없다. 교육개혁은 노동개혁보다는 그런 장애물들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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