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안전하다는 병해충 소독 훈증제, 알고보니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 물질’

기사승인 2022. 05. 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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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A] A사, 기존 소독제 대체제 개발·판매
작업자에 안전한 제품이라 홍보
노동부, 중대재해법 대상 판단
"신경중독 위험 기존 제품보다 안전하다 할 수 없어"
훈증 소독하는 모습
수입 목재류를 초록색 천막으로 덮은 후 소독훈증제를 주입해 소독 처리하는 모습. /사진 = 농림축산검역본부
작업자에게 안전하다고 홍보·판매되는 A사의 병해충 소독 훈증제 ‘S가스’가 급성중독을 일으킬 수 있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 제품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A사는 자사 제품의 주성분인 EDN(Ethanedinitrile)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 물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던 만큼 해당 제품을 사용하는 사업장의 안전관리가 한층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A사는 농림축산검역본부와 함께 현재 목재류 검역 훈증제로 주로 사용되는 메틸브로마이드(MB·methyl bromide)의 대체제를 개발해 왔다. MB는 급성 신경 중독 물질로 인체 위해성이 높은 것은 물론, 오존층 파괴 물질로 지정된 물질이다. 이에 세계 각국에서는 속속 MB의 사용 제한에 나서고 있어 국내에서도 대체재 개발에 공을 들여왔다.

27일 노동부는 아시아투데이가 질의한 ‘EDN의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 물질 판단 요청’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 상 직업성 질병 물질로 판단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EDN은 시아노기가 붙어있는 유기시안화물로 중대재해처벌법 상 직업성 질병 물질인 시안화수소 또는 그 화합물”이라며 “인체 노출 시 급성 중독을 일으킬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EDN이 시안화수소 화합물이 아니기 때문에 직업성 질병 물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A사의 기존 입장과 배치되는 판단이다. 노동부는 지난해 11월 ‘중대재해처벌법 해설서’를 통해 시안화수소나 그 화합물에 노출돼 발생한 급성중독 물질에 시안화물을 포함시킨 바 있다.

EDN은 기침·현기증·구토 및 심한 경우 발작·경련·호흡곤란·심장정지 등을 일으킨다. 흡입 시 노출 집단의 50%를 죽일 수 있는 양은 136ppm이며 10분 동안 900ppm 흡입 시 사망에 이르게 하는 독성물질이다.

기본적으로 목재류 검역 훈증제에 사용되는 물질인 만큼 인체 위해성이 높아 사용 안전 기준이 철저하게 지켜져야 한다. 문제는 A사가 EDN을 중대재해처벌법 대상 물질로 판단하지 못하고 검역 훈증제를 사용하는 사업자와 근로자에게 ‘신경 중독을 일으키는 MB에 비해 중독성이 낮다’고 홍보해 왔다는 점이다.

A사는 지난 3월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참석한 ‘EDN 조기 정착을 위한 심포지엄’을 열고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A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EDN, 작업자에 안전해 MB 대체할 것’, ‘MB의 작업자 안전 허용농도는 1ppm으로 EDN(10ppm)에 비해 작업자 노출 시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A사는 과거 보도자료에서도 이 같은 표현을 반복해왔다. A사가 제시한 안전 허용농도 수치는 노동부의 ‘화학물질 및 물리적 인자 노출기준’에 따른 것이다.

전문가들은 A사가 자사 제품을 작업자에게 안전하다고 홍보한 부분이나 MB가 EDN보다 위험하다고 언급한 것은 사용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두 물질 모두 중독성이 높은 만큼 어느 물질이 더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의미다.

박동욱 방송통신대학교 보건환경학과 교수는 “미국 정부산업위생전문가협의회(ACGIH)의 2019년 최신 기준에 따르면 EDN은 위험한 급성중독 물질로써 단시간노출기준(STEL)은 최고노출기준(근로자가 1일 작업시간 동안 잠시라도 노출되어서는 안 되는 수치) 5ppm으로 명시됐다. 이와 다른 기준인 시간가중평균 노출 기준으로 제시된 MB와 유해성 크기를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오존층 파괴 대체제로 EDN을 찾았다 해도 그 위험성은 정확히 알려야 한다. EDN의 위해성이 더 낮다는 업체 선전은 속이는 것”이라며 “노동부의 노출기준도 미국 최신 기준을 적용해 업데이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DN 개발에 참여한 농림축산검역본부 관계자는 “보도자료에서 EDN이 안전하다거나 MB가 더 위험하다는 표현은 사실과 다르다. 이 표현은 업체에서 독자적으로 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A사 관계자는 “우리나라 안전 허용농도 기준상 두 물질 간 수치 차이가 있어 EDN이 조금 더 낫다는 표현을 ‘안전하다’라는 방식으로 한 것이다. EDN이 더 좋다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노동부의 이번 판단으로 향후 사업장에서 EDN을 사용하다 피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는 법적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 사업주·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규칙 제670조(농약원재료 방제작업 시 조치) 등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관리상 조치를 위반하고, 관련 직업성 질병자가 1년에 3명 이상 발생하게 되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수출입 식물 검역소독처리 규정’을 어긴 경우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받을 수 있다.

이나루 산업안전보건연구원 화학물질연구센터장은 “두 물질의 작업자 노출기준 차이가 위해성 크기 차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없다. 두 물질 모두 위해성이 있기에 건강 위해성 측면에서 EDN이 MB보다 이익이 있거나 대체했다고 볼 수 없다”며 “두 물질 모두 작업장에서 배기를 잘 시키는 등 노출 관리를 잘하고 작업 절차를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목재류 검역훈증제 MB는 항만 등에서 수입 목재와 함께 국내로 들어오는 해충을 막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선착장 야드에 야적된 목재에 천막을 덮고 그 안에 훈증제를 피우는 방식으로 소독이 이루어진다. 과거에는 수입곡물 등의 소독제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인체 위해성으로 최근에는 수입 목재 소독제로 사용되고 있다. MB로 인한 중독사고는 1998년부터 꾸준히 발생했고 2001년에는 MB로 중독된 근로자 A씨가 국내에서는 최초로 소독약 중독 직업병 환자로 인정받은 바 있다. MB에 중독될 경우 급성 뇌병증, 언어이해 장애, 의식 혼동 등 중추신경계 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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