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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후계자와 우상화

[칼럼] 후계자와 우상화

기사승인 2023. 02. 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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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석 글로벌국방연구포럼 사무총장·국민대 겸임교수
이흥석 글로벌국방연구포럼 사무총장
이흥석 글로벌국방연구포럼 사무총장·국민대 겸임교수
지난 8일 야간에 진행된 북한 창군 행사의 주역은 ICBM과 김주애이다. 화성-17형 ICBM과 김주애는 지난해 11월 18일 동반 등장했다. 당시 북한매체는 김정은과 김주애가 손을 잡고 화성-17형 ICBM을 배경으로 걸어 오거나, 둘이서 발사된 미사일을 바라보는 장면을 공개하며 김주애를 '사랑하는 자제분'으로 보도했다. 김주애와 화성-17형 ICBM은 이어 '핵무력 완성' 선언 5주년 행사와 창군 열병식, 북한 조선우표사에서 공개한 기념우표에 함께 등장했다. 특히 김주애는 호칭도 '존귀스러은 자제분'으로 격상되면서, 창군 행사에서 김정은과 나란히 주석단에 올라 백두혈통을 상징하는 백마와 인민군을 사열했으며, 장군을 병풍 삼아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등 후계자를 시사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북한은 김정은 후계자로 김주애를 내정하고 우상화를 시작하고 있는 것일까? 관심이 가는 대목은 김정은이 비교적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김주애를 조기에 등장시킨 배경과 왜 김여정이 아니고 김주애라는 점이다. 김정일과 김정은의 후계과정과 비교하면 김주애의 조기 등판은 이례적이다. 김정일은 10여 년 이상 후계수업을 거쳐 1980년 제6차 당대회에서 공식적으로 후계자가 됐다. 김정은은 김정일이 뇌경색으로 쓰러지면서 2008년부터 후계자로 내정되고 2012년 3대 수령이 됐다. 아마도 김주애의 조기 등판은 김정은의 건강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20년 김정은이 상당 기간 공개 활동이 없을 때 국정원은 김여정의 위임통치를 인정한 바 있다. 김정은이 공개활동을 재개하고 나서 열린 2021년 1월 제8차 당대회에서 당 제1비서를 만들어 당 총비서(김정은)의 대리인으로 명시하면서 누구인지 공개하지 않았다. 김일성과 김정일체제에서 수령의 유고에 대비하는 제도를 만들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면 의외의 결정이다. 북한이 의도적으로 입법적 불비를 만든 것은 수령의 절대권력을 보장해 세습체제를 유지하려는 전략이었다. 반면에 당 제1비서를 당 규약에 명시한 점은 경로의존적 의사결정에서 벗어난 결과인데 아마도 김정은의 공백을 학습한 후 후계체제를 대비하는 제도화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김주애의 등장은 2021년부터 준비된 것이므로 당 제1비서는 김주애일 가능성이 있다.

북한체제는 수령 3대 세습체제다. 수령 후계자로 내정되면 우상화 과정을 거친다. 우상화는 상징조작으로 나타난다. 상징조작은 의식·노래·표어·모형 등의 상징물을 이용해 대중의 심리를 조작함으로써 지배의 정당성을 수용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수령 후계자를 위한 상징조작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먼저 수령 후계자의 정통성을 마련하기 위한 담론을 생산한다. 수령 후계자의 자격을 수령을 가까이서 보좌한 인물 즉 백두혈통으로 한정한다. 김정은 후계과정에 만경대 가문과 백두혈통을 계승하는 기사가 노동신문에 실렸다. 김주애의 백마를 창군 열병식에 등장시킨 것은 백두혈통의 적자임을 시사한다.

수령 후계자는 항일무장투쟁의 적통을 이어받은 군사적 자질도 겸비해야 한다. 북한에서 핵미사일은 김일성과 김정일을 거쳐 김정은에게 이어진 선대의 유산이며 이를 계승 발전시키는 것은 수령 후계자의 책무다. 따라서 수령 세습과 핵미사일 능력의 고도화는 밀접하게 연계돼 왔다. 북한매체는 김주애가 등장한 후 핵무력이 '만년대계의 안전담보'라는 담론을 내세우며 미래 세대를 보호하는 기제로 만들고 있다. 2009년 김정은이 후계자가 되고 나서 대포동 2호 발사를 김정은의 업적으로 선전한 사례와 2017년 화성-15형 발사 이후 공들여 만든 화성-17형 발사 현장에 김주애를 동반한 것, 우표를 발행한 것은 화성-17형이 김주애의 업적임을 선전하는 대목이다.

우상화는 수령 후계자에 맞는 새로운 호칭도 사용한다. 호칭은 대표적인 상징조작으로 단순한 미사여구가 아니라 우상화와 세습의 안정성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지표로 볼 수 있다. 김정일은 당중앙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로, 김정은은 김대장과 샛별장군으로 불렸다. 김주애를 '존귀스러운 자제분'으로 호칭하는 것도 맥락을 같이 한다. 또 수령 후계를 위한 맞춤식 직책도 제도화한다. 김정일은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김정은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출발했다. 아마도 당 제1비서는 김주애를 위한 맞춤식 직책으로 보인다. 군사칭호 즉 계급도 부여한다. 김정은도 2010년 인민군 대장으로 임명된 바 있다. 김주애와 관련한 군사칭호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없지만 지난해 12월 제8기 제6차 전원회의에서 비공식적으로 부여했을 가능성도 살펴보아야 한다.

수령 후계자를 내정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후견그룹도 만들어 안정적인 세습을 지원한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내정된 후 장성택, 이영호, 최영림, 김경희 등 친인척과 당정군 고위엘리트를 전면에 내세운 바 있다. 지난해 12월 제8기 6차 전원회의에서 당 사상과 조직부문 그리고 군부인사를 중폭으로 교체했다. 특히 군 엘리트중 최고직위였던 박정천을 숙청한 후 이영길로 교체하고, 총참모장은 박수일, 국방상에는 강순남을 임명한 점, 그리고 당적 담론과 조직을 관리하는 엘리트의 교체는 이를 뒷받침한다.

그럼 김여정의 역할은 무엇일까? 최근 공식행사에 김주애가 등장한 후 김정은과 거리를 두고 있으나 대남 강경 메세지를 주도하는 것을 보면 김일성체제의 김영주나 김정일시대 김경희처럼 4대 세습을 지원하는 친인척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주애의 등장은 4대 세습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으로 호기심으로 보았던 김주애의 등장이 과연 당정군엘리트나 주민에게 어떻게 수용될 것인지 살펴보면서 김정은체제의 내구성에 대한 정밀 진단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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