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준 “안되면 되게하라... 악바리 부산야구 되살려야”

기사승인 2023. 03. 2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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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80~90년대 스타 한영준의 '쓴소리'
92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끌어
롯데 지휘봉 잡고 마지막 열정 토해내고 싶어
한영준선수
현역시절 171㎝의 작은 체구에서 지치지 않는 열정과 근성으로 활화산같은 에너지를 뿜어냈던 한영준 선수. 부산 롯데 팬들은 그를 80년대 후반 사직벌을 들썩이게 했던 최고의 테이블세터로 기억하고 있다./제공= KBO
한국프로야구가 불혹을 넘겼다. 그동안 구도(球都, 야구도시) 부산은 故최동원부터 이대호에 이르기까지 국보급 '레전드'를 제법 배출해냈다. 프로통산 24년(선수 12년, 지도자 12년) 간 그라운드 안팍을 화려하게 누볐던 '악바리' 한영준도 단연 그 중 하나다. 그는 "故최동원, 김용희, 김용철 선배와 함께 뛰었던 그 시절이 생애 가장 행복했다"며 회고한다.

부산고 2학년 때 청소년 국가대표에 발탁되면서 선동열, 이순철 등과 함께 당시 언론으로부터 '될성부른 떡잎'으로 조명받기 시작했다. 고려대 재학 중엔 대학야구 우승 및 (84)LA올림픽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한국 야구를 이끌 유망주 반열에 올랐다. 85년 롯데자이언츠에 입단한 그는 12년 간 현역으로 뛰며 1000게임 출장 기록을 세웠다. 역대 프로야구 선수 중 13번째다.

한국시리즈 우승(92) 및 준우승(95)의 주역으로, '별들의 축제'로 불리던 KBO올스타전 3회(88,89,90) 연속으로 출전한 경력도 갖고 있다. 특히 두산 코치와 고려대 감독 등 지도자시절에는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경험이 많다. 사실 부산 야구팬들은 지난 시즌까지 성적부진에 허우적대던 롯데를 보며 현역과 지도자를 거치며 소위 '성공가도'를 달려본 한영준을 소환해 내기도 했다. 171㎝ 작은 체구에서 활화산같은 에너지를 뿜어냈던 '작은 거인'. 그를 만나 그간 근황과 최근 롯데 야구에 대한 소회를 들어 보았다.

- 그간 어떻게 지냈나
"1985년 롯데자이언츠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해 1996년 은퇴했다. 이후 미국에서 2년간 코치연수를 받고 99년에 친정 롯데에 1군 수비코치로 복귀했다. 그 해는 현역 시절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했던 영광의 해였다. 당시 국내 프로야구계의 신구(新舊) 교체시기를 맞아 무난히 세대교체를 이뤄냈다는 호평도 받았다. 두산 코치와 고려대 감독 시절에는 한국시리즈 진출 및 고연전 우승 등으로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작년 한 해 (사)최동원기념사업회가 운영하는 유소년 야구단을 맡아 재능기부 활동을 펼쳤고, 지금은 로빙 인스트럭터(전국유소년야구 순회코치)로서 유소년 지도자를 상대로 코칭 중이다. 전국 유소년 및 아마추어 선수를 발굴·육성하는데 작으나마 힘을 보태고 있다."

- 현역시절을 잠시 소개한다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롯데에서 12년 간 선후배들과 한솥밥 먹으며 소위 '죽기살기로' 뛰었다. 경기결과에 따른 희비교차가 다반사였지만, 경기내용 복기를 통한 마인드 컨트롤에 집중하면서 '진정' 프로답게 익어 가던 때였다. 하루하루 묵묵히 뛰다 보니 1000게임 출장기록도 달성했다. 현재는 한 시즌 150여 경기를 하지만, 그 당시에는 80-90게임 정도였다. 현역 12년 내내 한 경기도 빠지지 않고 타석에 들어선 셈이다. 역대 프로야구 선수 중 13번째였고, '악바리' 별명도 그 때 얻었던 것 같다. 주장으로서 한국시리즈 우승(92)을 이끌었고, 후배들과 준우승(95)의 감격을 나눴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무엇보다 팬들의 과분한 사랑으로 KBO올스타전에 3회(88년, 89년, 90년) 연속 선정된 영광을 안기도 했다."

- 최근 롯데 야구를 어떻게 보고 있나

"구단은 근래 해마다 500억 이상의 예산을 들이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내지 못했다. 오히려 구단 측과 현장 코칭스텝 간 불화로 선수단이 흔들렸다. 구단의 리더급 스텝들은 타순조정 등 현장스텝 재량에 너무 깊이 관여했고, 시즌 도중 감독사퇴와 코치들의 잦은 보직이동은 성적부진으로 연결됐다. 특히 롯데 선수단만의 전통적 일치단결 문화가 무너진 것 같아 선배로서 매우 안타깝다. 외국인 스텝들도 문제다. 그간 국내 활동기간에 비해 롯데 특유의 정신을 모르고 있는데다 선수 개개인의 포텐셜 에너지를 끌어내는데 실패했다. 게다가 2군 선수 육성플랜에 관해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근래 퓨처스리그 출신으로 1군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선수가 있었던가? 한 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다. 처절하고 뼈아픈 구단의 반성이 필요하다. 팬들이 실망하고 등을 돌리는 순간 '프로'는 더 이상 존재이유가 없어지는 법이다."

- 타개책은 있나

"현재 롯데는 삼성에서 퇴출된 코치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우선 롯데를 제대로 이끌 수 있는 스텝자산을 보강해야 한다. 기왕이면 롯데출신의 중량감있는 선배들을 현장스텝으로 투입해 '안되면 되게 하라'는 롯데만의 특유한 마인드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다. 또 롯데는 현재보다 훨씬 더 많은 스카우터를 고용해 전국의 숨은 인재를 찾아내야 한다. 이는 한국 야구 전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2군 스텝들은 많은 경험과 함께 '집요'하게 훈련시킬 수 있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 동시에 프랜차이즈 선수들의 공급부족 문제도 해결돼야 한다. 현장을 지원하는 구단 스텝들은 단기 성적에만 연연하지 말고 중장기적 안목으로 '두산'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반드시 변화가 있어야 한다."

- 허구연 KBO총재와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던데

"허구연 총재는 국가대표 내야수 출신으로 부산 야구인들의 대선배다. 1987년 어우흥 감독님과 함께 허 선배가 수석코치로 부임해 오셔서 저의 멘토 역할을 자임해 주셨다. 덕분에 선수로서 최고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은퇴 후, 미국 토론토 블루제이스팀의 코치 연수에 나선 것도 허 선배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후 제가 고려대 감독으로 재임 중일 때도 많은 조언을 주셨다. 현재 KBO총재로서 전국의 각 지방자치단체장들과 소통하며 돔구장 등 야구장 인프라 구축에 상당한 열정을 보이고 계신다."

- 한국프로야구의 대중·문화적 가치를 어떻게 보나

"한국 프로야구는 1982년 당시 군부정권이 국민들의 정치참여를 막기 위한 3S정책의 일환으로 출범됐다. 지역연고제로 인한 지역갈등과 승부에 대한 과열양상 등 과거 프로야구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는 명암이 혼재한다. 현재는 정치적 배경으로부터 완전 자유로워졌다. 그만큼 팬들만 보고 가면 된다. 단연코 한국인들의 야구사랑은 야구의 본 고장인 미국을 능가한다. 원년 140만 관중으로 시작해 2018년 베이징올림픽 우승과 맞물려 840만 정점을 찍을 때까지 관중 수는 한 번도 줄지 않고 늘어났다. 모든 스포츠의 존립 근간은 팬들의 관심과 사랑이다. 프로야구도 마찬가지다. 팬심을 바탕으로 대중성을 확보하고 유지·확대하려는 대중문화의 한 장르다.

또 '각본 없는 드라마' 답게 어떠한 경우에도 '결과(승부)의 우연성'만큼은 기본가치로서 보호돼야만 한다. 몇 년 전 승부조작 사건으로 팬들로부터 냉대를 당했던 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최근 국제대회 성적부진, 병역비리, 승부조작 등 선수일탈과 함께 코로나19 악재까지 겹쳐 잠시 국민들의 외면을 받았다. 그럼에도 한국 야구의 인기는 쉽게 식지 않았고, 오히려 소위 '천만관중'시대가 곧 도래할 거라 본다. 프로 스포츠인 만큼 선수들의 뛰어난 기량과 수준 높은 경기력으로 팬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할 수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프로야구를 통한 감동과 추억거리는 세대 간 연결고리 역할을 충분히 해오고 있었다."

한영준선수1000게임
한영준 선수는 현역 12년 내내 한 경기도 빠지지 않고 타석에 들어섰다. 그 결과 1000게임 출장 기록을 세웠고, 이는 역대 프로야구 선수 중 13번째였다. 이때 원조 '악바리' 별명도 얻었다. 한편 2023년 프로야구 정규시즌은 10개 구단 각 팀당 144경기(총 720경기)가 예정돼 있다./제공= KBO
- 부산 팬들에게 한 마디

"아직 저를 기억해 주시는 팬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성적을 떠나 후배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주시는 부산 팬들의 '롯데사랑'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저 역시 고향 부산에서 선수시절 받았던 사랑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 롯데는 저를 성장시켜준 영원한 친정이자 안식처다. 프로야구 원년부터 40년 동안 국내 최다 관중들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온 롯데가 이제부터는 멋진 기량과 좋은 성적으로 팬들의 사랑에 응답할 차례다. 최근 몇 년간 롯데는 무기력한 경기와 부진한 성적으로 팬들께 많은 실망을 안겼다. 개인적으로는 제 야구인생을 마무리하기 전에 롯데에서 후배와 팬들을 위해 마지막 열정을 토해 내고 싶다. 지금은 롯데야구의 재건을 이루기 위한 초석을 촘촘히 다져야 할 때라고 본다."

2023프로야구 정규시즌 개막(4월 1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목하 지구촌 최대 야외노래방(사직야구장)에서는 '부산갈매기'들의 올 시즌 '거인'의 힘찬 '진격'을 바라는 '파도타기'가 시작됐다. 이어 롯데자이언츠의 영원한 '1번 타자' 한영준이 타석에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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