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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유가족 돌보는 차바우나 신부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하자”

자살 유가족 돌보는 차바우나 신부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하자”

기사승인 2023. 03. 2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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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자살예방센터장
"자살은 폭력의 발현...쉼 모르는 우리 사회 문제"
정신적 고통도 육체적 고통처럼 드러내고 치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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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자살예방센터장 차바우나 신부. 차 신부는 자살 유가족은 자살 고위험군으로 사회적 돌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살 유가족 상담을 할때면 먼저 그들이 겪는 슬픔을 드러낼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든다고 설명했다./제공=한마음한몸운동본부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한마음한몸운동본부가 운영하는 자살예방센터는 천주교가 유일하게 인증한 공식 자살예방기관이다. 과거 천주교는 자살을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살해하는 행위로 봤다. 자살자 또한 부정적으로 여겼다. 이제는 인식이 변했다. 자살예방센터는 미사, 모임, 피정, 도보성지순례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자살 유가족을 돌보는데 힘을 쏟고 있다. 자살 유가족 역시 가족 구성원이 불러온 상처로 인해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자살예방센터장 차바우나 신부는 의사 못지 않게 생명을 다루는 최전선에 서 있다. 그는 2009년 사제서품을 받고 서울 가락동·상봉동·우장산·삼성동 성당에서 보좌신부, 대림동 성당에서 부주임 신부로 있다가 2020년 2월부터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최근 서울 중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사무실에서 만난 차 신부는 한국 사회가 고장 난 증거를 높은 자살율에서 찾았다. 자살 충동이나 정신적 고통을 육체적 고통처럼 드러내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자살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살예방센터장으로 활동하면서 마주한 자살은 어떤 것인가.

"자살은 나를 향한 폭력이다. 폭력은 약자에게 가해진다. 자살자에게 가장 약자는 자신이다. 남을 죽이지 못하니 자기를 죽인다. 한국사회는 폭력이 만연해 있다. 자살은 사회와 가정이 고장 난 증거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지만 혼자 죽을 수는 있다. 죽기 직전 사람은 인간관계가 다 끊긴다. 자살예방을 위해서는 인간관계가 단절되지 않게 도와야 한다."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국가 중 20년 가까이 자살률 1위다. 선진국 수준의 나라에서 자살률이 왜 이렇게 높은 것인가.

"안타까운 일이다. 경쟁해야 하는 부분이 있고 경쟁하지 말아야 하는 부분이 있다. 우리는 구분이 없다.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우리 사회에서는 인간다운 대접을 받는다고 느낄 만한 곳이 없는 것 같다. 왜 여유가 없을까. 쉴 줄 모른다. 휴가 때조차 어디를 가고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 않나. 진정한 쉼은 마음으로 내려놓는 데서 시작한다. 제대로 쉬지 못하니까 여유가 없고 여유가 없으니까 고립되고 나와 남에게 폭력적이 된다."

-특히 빈곤노인 자살 문제는 심각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가난한 노인을 인간답게 취급하는 곳이 사실상 없지 않나. 당연한 결과다. 또 이분들이 전쟁을 통해 겪은 집단 트라우마도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비인간적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경험 때문에 생긴 트라우마를 제때 치료받지 못한 채 시간을 보냈다. 육체적 상처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시간이 흐르면 나중에 탈이 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일본도 전쟁을 겪은 세대의 노인 자살률이 높았다. 세대가 바뀌면서 낮아졌다. 전쟁세대의 심리 치유는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자살예방을 위해서는 전쟁세대처럼 트라우마가 있는 집단에 대한 유의미한 분석과 돌봄이 필요하다."

-천주교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자살 방지 대책은 어떤 게 있나.

"우리는 정신적인 문제에 있어서 약국과 같은 곳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신과 병원을 찾아가 치료를 받는 것은 질병 초기에 곧바로 수술하는 것과 같다. 병원에 가기 전 간단한 증상이 발생하면 약국에서 약을 처방받지 않나. 초기 단계에서 환자를 돌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자살 유가족이 겪는 고통이 매우 클 것 같다.

"자살 유가족은 자살 고위험군이다.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 자살률이 확연히 올라간다. 유가족은 복합적인 비애를 겪는다. 가까운 사람이 자연사하면 처음에는 죽음을 외면하지만 결국에는 받아들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자살 유가족은 심리적 이별이 되지 않는다. 또 죄책감·분노 등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결국 죽음을 받아들이는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다시 외면과 분노, 죄책감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가 자살 충동을 느끼게 된다. 자살 유가족은 분노·죄책감·슬픔 등 이런 감정을 가족들에게 드러내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상담하러 오면 무조건 울게 한다."

-과거 천주교는 자살자를 상대로 장례 미사를 허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1983년 교회법이 변경되면서 천주교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자살자와 자살 유가족을 죄인이라고 단죄해서는 안 된다. 판단은 자비로운 하느님께 맡기고 기도와 위로로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정부나 교회가 나서주길 바라는 부분이 있다면.

"정신적 고통을 육체적인 상처와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사회적 인식 개선에 나서줬으면 한다. 우리는 몸이 아프고 상처가 나면 치료받으러 가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나. 정신적 고통을 드러내고 치료로 이어질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행복에는 자격이 필요 없고, 사랑받기 위해서는 노력이나 재능이 있을 필요가 없다. 많은 경우 노력하고 뭔가를 이뤄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내가 내일 당장 죽는다면 오늘이 어제와 같지 않을 거다. 힘들 때는 힘들다고 말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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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고통과 상처도 육체적 상처와 같이 취급받고 치유받는 사회적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차 신부. 그는 천주교 교회가 '정신적인 약국'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제공=천주교 한마음한몸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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