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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 칼럼]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강대강’ 대응 아닌 ‘법의 지배’ 부합

[김이석 칼럼]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강대강’ 대응 아닌 ‘법의 지배’ 부합

기사승인 2023. 05. 1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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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 논설심의실장
여당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거대야당이 지난 3월 〈양곡관리법〉을 통과시키자, 지난달 4일 윤석열 대통령은 〈양곡관리법〉에 대해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은 국회가 이를 다시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재적의원 과반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가 찬성해야 한다. 지난달 13일 〈양곡관리법〉은 국회 재표결 끝에 결국 부결됐다.

이번에는 〈간호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린다. 〈간호법〉은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두고 의사와 간호조무사들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파업을 하겠다고 하고 있고, 간호사들은 거부권을 행사하면 파업을 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는 상태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이런 극단적인 상황으로 사태가 전개되지 않도록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단체들을 만났지만 중재안 도출에는 실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간호법〉은 〈양곡관리법〉과 마찬가지로 여당의 반대에도 거대야당이 지난달 27일 강행처리 한 법안이다. 그 내용은 현행 의료법에서 간호사 업무를 별도로 분리하여, 지역사회 간호와 간호사 처우개선 등을 담고 있다. 이 법에 대해 의사·간호조무사 등은 간호사의 단독 개원과 의사 진료 범위 침범 가능성 등을 제기하며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더불어민주당이 의사·간호조무사를 한편으로 또 간호사를 다른 편으로 갈라치기하는 정치적 입법을 하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오는 16일 국무회의에서 이 법안에 대한 재의요구를 심의·의결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거대야당이 집권여당의 반대를 무시하고 강행처리한 법안들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연이어 좌절당하게 된다.

이런 거대야당의 갈라치기 입법 강행에 이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강대강' 대치로만 봐야할까. 거대야당이 숫자의 우위를 믿고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사회적 갈등을 부르는 법안에 대해 충분한 논의와 합의의 절차를 배제한 채 입법을 시도하는 게 아니라 숫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그런 입법을 삼가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법의 지배'(rule of law) 원칙이나 '바람직한 민주정'에 비춰보면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우선 이런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법의 지배' 원칙에 잘 부합한다. 어떤 법이 모든 이들에게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적용될 수 있을 때 그 법은 '보편성'을 띤다. 그런데 소위 '갈라치기' 입법은 갈등을 조장할 수밖에 없고 일부에게만 '특혜적'일 때가 많기 때문에 '보편성'을 지니지 못한다.

프랑스의 끌로드-프레데릭 바스티아(1801-1850)는 일찍이 외국의 수출업자에 비해 너무나 높은 비용으로 생산하면서 보호관세를 요구하는 국내 생산자들을 두고 너무나 강력한 경쟁자인 '태양' 때문에 낮에는 도무지 경쟁할 수 없으므로 수입관세로 이들의 경쟁력을 낮춰달라는 양초업자를 풍자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스티아가 볼 때 이는 양초업자들이 프랑스의 소비자들의 희생 아래 소비자들의 소득을 입법을 통해 '탈취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런 입법을 법적 약탈(legal plunder)이라고 불렀다.

모든 이들, 예를 들어 쌀 재배농가, 간호사, (가격을 일정 이상 받지 못하게 하는) 소비자 등이 자신에게 유리한 입법을 해서 이를 다른 이들에게 강제하려고 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바스티아는 그렇게 되면 국가는 "만인이 만인을 등쳐먹는 거대한 허구"가 되고 만다고 경고했다. 

제임스 뷰캐넌(1919-2013)처럼 경제학적으로 민주정의 정치과정을 연구하는 공공선택학파들도 대통령의 이런 거부권 행사를 지지하고 있다. 만장일치가 외부비용을 발생시키지 않기 때문에 공공선택학파에게는 만장일치가 최선이다. 그러나 만장일치에 이르기 위해서는 엄청난 의사결정비용이 든다. 그래서 과반의 의결보다는 만장일치는 아니지만 이에 더 가까운 가중 다수결 혹은 보강된 다수결이 과반 의결보다 바람직하다. 소수파가 극력 반대하는 법안이라는 것은 그만큼 법이 통과되면 싫더라도 강제실행 된다는 점에서 엄청난 외부비용을 발생시킨다. 그래서 그런 법안은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더 자주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공공선택학 전문가인 황수연 전 경성대 교수에 따르면, "공공선택론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고든 털럭(Gordon Tullock)은 미국 대통령이 모든 법안에 항상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곤 했다"고 한다. "모든 법안에 대해 의회의 양원에서 ⅔의 찬성 투표를 거치도록 강요하기 위해서다." 

황 전 교수가 인용한 것처럼, 윤석열 대통령은 여야 숙의 없이 다수파 야당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법안들에 대해 100%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확실한 원칙을 지키면서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사회적 갈등을 빚는 법안, 바스티아가 말하는 '법적 약탈'이 최소화될 수 있을 것이다. 황 전 교수는 미국은 양원제를 두고 있는데 비해 우리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의 거부권은 더 자주 행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법의 지배' 관점에서나 공공선택학의 관점에서 볼 때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민주정에서 바람직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거대야당이 입법을 밀어붙이는 경우에는 주머니에 넣어둘 것이 아니라 자주 행사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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