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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 칼럼]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무지(無知)

[최광 칼럼]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무지(無知)

기사승인 2023. 05. 2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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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 전 보건복지부 장관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체제이고,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이다. 인류 역사에서 등장한 두 경제체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사회주의 지시경제이다. 제헌(制憲) 헌법에서 우리의 경제 질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아닌 사회주의 지시경제였다. 5·16 후인 1962년 제5차 개헌에서 자유시장경제 원칙이 헌법의 지배적인 개념이 되었으나 현행 헌법에는 아직도 제헌 헌법의 사회주의 지시경제의 잔재가 강하게 남아 있다. 


 놀랍게도 우리나라만큼 일반 국민은 물론 전문가나 지도자조차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해 무지한 국가를 찾아보기 어렵다. 필자는 20여 년 전 사석에서 경제학을 강의하는 10여 명의 후배 교수들에게 "자본주의 시장경제란 무엇인가를 수업 중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는가?" 하면 "어떻게 설명하는가?"라고 물은 적이 있다. 후배 교수들 모두가 침묵으로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당혹한 나머지 당시 시중에 나와 있는 27권의 경제학원론 교재 전부를 조사해 봤더니,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제대로 설명한 교재는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제대로 설명한 경우에도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우월성을 부각시키지 않았다. 경제학 교수 상당수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모르거나 경시한다는 사실과 대학 교재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충분히 제대로 서술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믿기지 않고 황당하다.

 경제학 교재에 더하여 일반인들이 참고하는 사전도 자본주의를 잘못 서술하고 있다. 한글학회 발간 〈우리말 큰 사전〉을 펼치면 자본주의가 "자본의 경제적 세력을 가지고, 또는 그 이득으로 인권·상권의 패권을 가지려는 주의 곧 자본에 대한 이윤만을 유일의 목적으로 하는 경제적 활동 내지 경제조직의 총괄적 표현"이라 서술되어 있다. 이는 자본주의의 멸망을 예언한 마르크스(Karl Marx)의 자본주의에 대한 인식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참으로 잘못된 서술이다.

 필자는 교수시절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는 사유재산제도와 선택의 자유를 근간으로 개별 경제주체들이 자기의 책임 하에 자유롭게 사익을 추구하게 하여 어떤 재화를, 얼마만큼, 누구를 위해서, 어떻게, 언제, 어디에서 생산하고 소비하는가 하는 기본적인 경제문제를 정부 아닌 시장을 통해 해결함으로써 사회 구성원의 복지를 최대로 증진시키는 경제체제이다"라고 칠판에 판서한 후 3시간여에 걸쳐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창출한 경제적 기적들을 설명하곤 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자본'이나 '자본가'라는 용어는 자본주의와 전혀 관계가 없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가 사회주의(공산주의) 경제체제와 다른 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그 하나는 사유재산권이 인정되는지 여부이고, 다른 하나는 교환 및 거래의 자유가 인정되는지 여부이다. 경제주체의 선택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국가가 계획을 통해 어떤 재화를, 얼마만큼, 어떻게, 언제, 어디에서 생산하는가를 결정하고, 사유재산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사회주의 경제체제이다.

 20세기 최대의 역사적 사건이 무엇일까? 20세기 초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으로 사회주의(공산주의)가 공식적으로 등장한 후 72년 존속하다 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지구상에서 실질적으로 사라진 것이 20세기 최대의 역사적 사건이다. 좌파 사회주의 사상은 개인보다 집단을 앞세우며 인간의 이성으로 세상을 설계하면 인민이 다 같이 잘 사는 지상낙원의 건설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마르크스는 여러 가지 이유로 자본주의는 붕괴되고 사회주의가 등장하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역사는 마르크스의 예상과는 달리 경제체제 전쟁에서 사회주의 지시경제는 처참하게 몰락했고,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완벽하게 승리했음을 보여준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가 국가 번영의 유일한 대안임은 전 인류의 역사까지 갈 필요가 없고 한반도 역사만으로도 충분하다. 남북한이 같은 민족 같은 역사를 가졌음에도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남한이 사회주의 지시경제의 북한보다 불과 70여 년 만에 30배나 높은 1인당 소득을 구현했다. 남한은 불야성을 이루는데 북한은 암흑이다.

 그럼에도 지도자와 지성인의 무식과 무지 때문에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에선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문제가 많은 체제 그리고 만악(萬惡)의 근원인 체제로 인식되고 있다. 사유재산권을 부인하는 단계를 넘어 토지공유제 주장까지 나오고, 경제주체의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정책이 횡행하고 있다. 한때 대단한 선진국이었던 남미 여러 나라들의 경제가 오늘날 거덜 난 것 그리고 유럽의 선진국인 영국·독일·스웨덴이 한때 각기 영국병·독일병·스웨덴 병을 앓고 경제 병자라고 조롱받은 것은 모두 경제운용이 시장경제 원칙을 따르기보다는 사회주의 기조를 따랐기 때문이다.  

 작금 반시장적 경제정책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정책 담당자와 정치지도자들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해 무지한 때문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 친시장적인지 또는 반(反)시장적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해 답을 해보면 알 수 있다. 첫 번째 질문은 "해당 정책이 사유재산권을 존중하는가?"이고 두 번째 질문은 "해당 정책이 선택의 자유를 허용하는가?"이다. 두 질문에 대한 답이 모두 "예"이면 친시장적인 정책이고, 하나 또는 둘 다 "아니오"이면 반시장적 정책이다.

 많은 경제 전문가나 정치가들이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의 열렬한 옹호자라고 자처하면서도 개별 정책에 오면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사유재산권을 부인하는 정책을 주창하기 일쑤다. 얼마나 자가당착적 태도인가? 

 좌파 진보주의자들은 시장제도는 원시적이고, 비효율적이며, 무질서하고, 반사회적이며, 불공평하고 근본적으로 비도덕적인 것이라 비난하면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러한 좌파들의 주장은 틀리거나 근거가 없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야말로 효율적이고 정의로운 제도이고,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풍요롭게 사는 것은 전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 덕분임을 명심하자.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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