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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추적] “성폭력 피해자 맞습니까”

[뉴스추적] “성폭력 피해자 맞습니까”

기사승인 2021. 01. 26.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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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다움 강요로 끊이지 않는 조직내 성범죄
정의당 사건으로 본 실태
가해자 권한 쥘수록 진실은폐 쉬워
위계문화 족쇄로 인한 피해 악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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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정의당 전 대표의 성추행 사건으로 조직 내 성범죄 문제가 재조명되고 있다. 무엇보다 성범죄가 단순히 물리적인 성폭력이 아닌 ‘원치 않은 신체 접촉’이라는 보다 폭넓고 광범위한 인식을 제고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조직 내 성범죄 문제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한국 사회의 위계서열 문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조직 내 여성 비율이 낮을수록, 나이가 어릴수록, 인턴이나 계약직 사원 등 고용상태가 취약할수록 피해자가 되는 비율이 높다.

◇조직 내 성희롱 피해자, 비정규직·20대 가장 많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 피해 연령대는 20대 이하가 12.3%로 가장 많았고 30대 10.0%, 40대 6.0% 순이었다. 고용 형태별로 보면 비정규직 9.9%, 정규직 7.9%로 집계됐다.

조직 내 성범죄는 위계에 의해 이뤄지는 사례가 많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윗사람이 자신의 업무를 잘 챙겨주거나 호의를 베푼다고 생각했는데 점차 가해자가 갑질을 하는 형태다. 이에 대해 항의하면 일적으로 괴롭히는 식으로 위계에 의한 권력형 성범죄를 벌이는 구조다. 위력에 의한 성범죄는 주로 당사자끼리 있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특수성 때문에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20대 신입사원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여기도 느낌이 오냐”고 말한 40대 직장인은 지난해 10월 1·2심을 뒤집고 대법원에서 추행이 맞는다는 판단을 받았다. 당시 피해자가 “하지 말라” “불쾌하다”고 했지만 가해자는 오히려 자기 일을 떠넘기거나 퇴근 직전 업무 지시를 내리며 야근을 시켰다.

성폭력 상담소 관계자는 26일 “조직 내 성범죄 사례는 가해자가 위계를 악용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면서 “인턴이나 특정 직군은 신분이 불안하다보니 피해자들이 사직을 결심하지 않는 이상 상사가 저지르는 위계에 의한 성폭력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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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의원들이 26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김종철 전 대표의 성추행 사건 피해자인 장혜영 의원은 참석하지 않았다./연합
◇피해자 낮은 지위 악용해 위력 내면화…문제 제기하면 “유별나다” 2차 가해

가해자가 피해자의 낮은 지위를 악용해 2차 가해를 하고도 위력을 내면화시켜 심리적인 그루밍(길들이기) 상태를 만들기도 한다. 이 경우 피해자들이 가해자의 심기를 보좌하는 상황까지 놓이기도 한다. 뒤늦게 성범죄의 피해를 깨닫게 된 후 사건을 공론화할 경우 “왜 뒤늦게 문제 삼느냐”는 반응의 2차 가해도 벌어지기도 한다.

성추행 문제를 제기하면 ‘유별나다’ ‘증거가 있느냐’는 식으로 피해자를 다그치는 경우도 일어난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미투 의혹의 경우 여당 일각에서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지칭하거나 피해자 주장을 거짓·억지로 몰아 2차 가해 논란에 휩싸였다.

피해자들의 조직 내 취약한 기반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거나 평온한 일상이 깨지는 것을 우려해 공론화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조직에 피해 사실을 알릴 경우 도리어 피해자에게 좋지 않은 소문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점도 적극적인 문제제기에 걸림돌이 된다. 이러다보니 조언을 구하는 피해자에게 오히려 참으라고 조언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위계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근절되기 어려운 원인으로 꼽힌다.

◇ 정의당 “조직문화 성폭력 묵인 여부 점검해야”

이번 정의당 사건에서 여성 국회의원이 성범죄 피해를 당하면서 ‘피해자다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입증됐다. 이를 공론화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가해자의 사실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죄, 책임을 지는 절차가 필요하다”면서 “이 모든 과정에서 그 어떤 피해자다움도 강요돼선 안된다”고 했다.

정의당 성추행 사건의 내부 조사를 총괄한 배복주 부대표는 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구체적 행위를 밝히지 않는 것은 행위 경중을 따지고 ‘그 정도로 뭘 그래’라며 성추행에 대한 판단을 개인이 가진 통념에 기반해서 해버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배 부대표는 “이번 사건을 단순하게 개인의 일탈행위로만 규정하지 않는다”며 “조직문화가 성차별·성폭력을 용인하거나 묵인하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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