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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패기의 ‘젊은 총수’에서 사회적가치 ‘전도사’로...최태원, 그는 누구인가?

①패기의 ‘젊은 총수’에서 사회적가치 ‘전도사’로...최태원, 그는 누구인가?

기사승인 2020. 05. 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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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최태원, 지나온 22년 함께할 22년]
38세 나이에 그룹회장·생존 기로
만화 속 도전하는 주인공에 감명
20년 경영…여전한 '파격적 총수'
임직원 행복·사회공헌에 눈돌려
자신감 넘치는 외향적 오너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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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도저. 뚝심. 젊은 총수.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다른 재계 총수와 다른 결을 보이는 수식어들이다. 청바지에 빨간 티셔츠 차림으로 월드컵 응원에 나서는가 하면 외국계 자본에 경영권 박탈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최근엔 이혼과 함께 혼외자를 세상에 알려 재계서 유례없는 행보도 보였다.

최 회장만큼 굴곡진 인생을 겪은 총수도 드물다. 그는 부친인 故최종현 선대회장의 갑작스런 작고로 가족 간 회의를 통해 SK대표이사 회장으로 올랐다. 취임 해인 1998년은 IMF외환시기로 기업들이 쓰러져 나가던 때로 그룹의 위기였다.

그는 외국계 자본에 경영권 박탈 위기도 몸소 겪었다. 소버린자산운용이 SK지분을 14.99% 사들이며 SK경영권 탈취를 계속 시도했다. 소버린 사태 이후 SK그룹은 지주사 체제로 전환해 최 회장과 총수 일가의 경영권을 강화했지만 투기자본에 국내 기업이 흔들릴 수 있다는 본보기를 보여줬다. 취임 10년차에 최 회장이 임직원들을 앞에서 ‘큰 절’을 올리게 된 까닭도 경영권 방어를 성공했다는 안도감때문이었다.

파격과 뚝심의 상징인 최 회장이 SK그룹의 괄목할만한 양적성장을 이끌었다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다. 1998년 SK그룹 자산은 34조원으로 재계 5위 수준이었다. 올해 공정위가 발표한 SK그룹 자산은 225조로 재계 3위다. 지난해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Fortune)이 발표한 500대 글로벌 기업순위에 따르면 SK는 73위로 1년만에 11계단 상승했다.

최 회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저는 ‘전쟁을 해야한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며 “전쟁 끝에 선 저는 착한사람하고는 거리가 먼, 지독한 기업인이었다”고 밝혔다. 소버린 사태로 지배구조 불안감과 부친으로부터 이어받은 기업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 또 SK의 사회적 가치도 실현해야 한다는 책임감 등이 최 회장에겐 더욱 무겁게 다가왔다.

그래서였는지 취임 6년 차 최 회장은 신입직원들에 일본 인기만화 ‘미스터 초밥왕’을 추천했다. 만화를 추천한 것도 파격적이지만 주인공인 ‘쇼타’의 사고방식이 SK와 닮아서였다. 시골의 초밥집 아들 쇼타가 도쿄로 상경해 온갖 고생 끝에 일본 최고의 요리사가 되다는 줄거리는 SK의 장인정신과 기업 생존을 위해 발로 뛴 최 회장과도 닮았다. 그는 올 초에는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라는 책을 신입사원에 추천했다. 30년간 정신과의사로 활동한 정 씨가 마음에 대한 통찰과 치유법에 대해 말하는 책이다. 과거 최 회장을 상징하는 키워드가 ‘생존’과 ‘패기’였다면 현재는 행복추구와 사회적 가치 실현으로 달라진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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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에서 맏형으로...20년간 재계 지킨 최태원
취임 초창기 최 회장은 ‘젊은 총수’이미지를 벗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38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그룹 회장에 오르면서 안팎으로 우려의 시선이 많았기 때문이다. 당시 최 회장과 공식석상에서 어깨를 나란히 했던 4대 그룹 총수들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1942년생),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1938년생), 故구본무 LG그룹 회장(1945년생) 등으로 모두 아버지 연배였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으로 참석한 최 회장은 디지털 카메라로 선배 기업인들을 촬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재계 막내만이 할 수 있는 파격적인 행보였다. 이후 총수들의 세대교체가 이뤄지며 2018년 남북정상회담에는 재계 맏형 격으로 참석했다.

세월만으로 ‘재계 맏형’ 이미지를 갖춘 것만은 아니다. 그는 한때 故구 LG그룹 전 회장의 화합 리더십과 중량감 있는 모습을 벤치마킹하며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기도 했다. 열정과 패기있는 수장으로 통하던 최 회장은 구 전 회장의 서번트 리더십과 재계 큰 형님으로서의 무게감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실제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재계 관계자에 따르면 과거 최 회장은 과묵하고, 공식석상에서 내성적인 측면이 없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자신감 넘치는 외향적 오너로 바뀌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경직된 표정으로 임직원에 설명하는 모습이 많았는데 근래엔 항상 미소띈 얼굴과 큰 동작으로 ‘달변가’이미지로 변신했다는 것이다.

◇최태원 키워드 ‘생존’에서 ‘사회적 기업’된 이유
“그룹 경영을 맡게 된 나는 선친의 경영 철학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했다. 사업을 안정시키고 성장시키는 한편 사회공헌활동에도 눈을 돌렸다. 그러면서 기업의 존재 의의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최 회장의 저서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의 서두다. 그는 2004년 SK의 기업가치를 ‘이익 극대화’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행복 극대화’로 바꿨다. 최 회장은 SK가 석유화학, 정보통신, 반도체와 같은 국가기간산업을 운영하는 만큼 사회적 책임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고 한다. 이후 그는 현장 경영에 더해 사회공헌활동에도 적극적이게 됐다. SK자원봉사단을 출범시킨 후 최 회장은 직접 사랑의 연탄배달수레를 끄는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으며 각 계열사들이 산발적으로 추진하던 사회공헌활동을 체계화시켰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직접 사회적 기업에 대한 경험을 쌓은 그는 직접 이와 관련한 책을 썼으며, 세계경제포럼인 ‘다보스포럼’에 패널로 참가해 사회적 가치를 공유해 주목받았다.

◇‘만능 스포츠맨’과 ‘파격적 총수’이미지는 그대로
최 회장의 남다른 스포츠 사랑은 업계서도 유명하다. 그는 최근 내년으로 연기된 올림픽 일정으로 낙심했을 SK스포츠단 선수들과 직접 화상 전화를 하며 격려에 나섰다. 2008년부터 대한핸드볼협회장을 역임하며 핸드볼 업계의 숙원인 핸드볼전용경기장을 짓기도 했다. 여자와 남자 실업구단을 창단하면서 국내 핸드볼 발전에 큰 공을 세웠다는 평가도 받는다. 최 회장은 중학교 시절 핸드볼을 배웠으며 선수로도 뛰었다고 전해진다.

테니스 실력도 상당하다. 최 회장은 주로 워커힐호텔이나 한남동 자택 부근에서 테니스를 치는데 아마추어급으로는 국내 최고 수준으로 통한다고 한다. 건강 관리를 위해 종종 자택에서부터 서울 서린동 SK본사까지 운동복 차림으로 조깅하며 출근한다. 그의 집무실에는 몇 가지 헬스 기구들도 한편에 마련돼 틈틈히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체중 조절을 위해 1년에 한 달간은 ‘하루 두 끼’로 아침과 저녁만 먹는다.

20여 년간 SK그룹을 이끌어온 최 회장을 두고 재계서 가장 ‘파격적인 총수’라는 평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2002년 월드컵 당시 직접 시청 거리에 뛰어나가 얼굴에 페인팅을 하고 청바지에 빨간 티셔츠 차림으로 거리 응원전을 펼쳤다. 친화력, 적극성, 격의 없는 방식으로 오너 편견을 깬 선두주자다.

특히 재계서 불문율로 여겨지고 있는 동거인에 대해서도 스스로 세상에 알린 총수이기도 하다. 2015년 그는 한 언론에 서신을 보내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과 이혼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세상을 놀라게 했다. 현재 노 관장과는 1조원대 이혼 소송 중에 있으며 동거인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과의 사이에는 딸도 1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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