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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아버지가 끌고 아들이 키우고…최태원이 걸어온 20년의 길

②아버지가 끌고 아들이 키우고…최태원이 걸어온 20년의 길

기사승인 2020. 05. 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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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최태원, 지나온 22년 함께할 22년]
최종현 선대회장, 섬유사업 확장
유공·한국이동통신 인수…뼈대세워
최태원, 바통이어 글로벌화 추진
포스트 반도체 배터리·바이오 육성
치밀한 준비·과감한도전 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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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인 故최종현 선대회장의 유훈에 따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사회적 가치 실현에 앞장서고 있다. 앞서 최 선대회장은 “기업의 이익은 처음부터 사회의 것”이라며 “기업은 사회에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닌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얘기해왔기 때문이다. 이에 최 회장은 기업이 이익의 성과보다는 사회와 함께 성장할 것을 주문했다. 각 계열사들에 사회적 가치를 측정할 수 있도록 했을 뿐 아니라 ‘계열사 ’행복나래‘를 통해 사회적 기업들의 성장도 돕고 있다. 특히 부친은 ’인재 양성‘을 가장 큰 업으로 삼기도 했는데, 그 뜻에 따라 최 회장도 한국고등교육재단의 장학사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조건없는 지원에 나서고 있다. 그래픽은 2007년 최 회장이 인천 중구 일대애서 소외계층에 연탄을 배달하는 모습으로 왼쪽에는 최 선대회장을 이미지화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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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 유공 인수, 정보통신산업 진출 등 남들은 운이 좋았다고 하지만 절대 운만으로는 큰 사업을 할 수 없다. 새로운 성장동력원 확보를 위해 10년 이상을 준비한 결과다.”

1997년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이 말한 SK그룹의 성공 비결은 아들인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무서울 정도로 닮았다. 부자(父子)는 경영 위기 속 SK를 이끌었다는 점, SK그룹을 키우기 위해 모두가 어려울 것이라 했던 사업을 끝내 인수해 성공시킨 점, 사회적 가치 실현에 한 뜻을 했다는 점 등이 같다.

최 선대회장은 부친의 별세 소식을 받고 미국 유학 중 급히 귀국해 형인 故 최종건 창업회장의 뜻에 따라 선경직물 부사장으로 취임했다. 선경직물은 SK그룹 모태로 최 선대회장이 취임할 당시 회사의 위기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국내 원사 가격 상승에 따른 ‘원사파동’으로 종업원들의 월급이 4개월째 밀려있고, 부채가 월매출액을 넘었다. 이에 최 선대회장은 정부의 인견사 수입공매불(정부나 공공기관이 매각한 달러)로 국내 수입자를 거치지 않고 원사를 직수입하면서 이익을 내는데 성공했다. 최 선대회장의 치밀한 기획력과 투자 판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최 창업회장의 작고 후 최 선대회장이 경영을 맡게 됐을 때는 석유파동으로 인한 경제불황이 이어지던 시기다. 그럼에도 최 선대회장은 대한석유공사(유공, 현 SK이노베이션) 인수에 나서며 사업영역 확장을 추진했다. 당시 우리 정부의 가장 큰 고민은 안정적인 원유 수급이었다. 최대 원유생산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친밀한 관계가 정유 비즈니스의 핵심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최 선대회장이 미국 시카고대 유학 시절 맺은 사우디 왕실과 친밀한 관계를 꾸준히 유지한 노력이 빛을 발했다. SK의 원유 확보 능력과 자금 조달 능력 입증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SK가 유공 인수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SK텔레콤 인수 배경엔 부자의 ‘협력’

SK텔레콤의 전신인 한국이동통신 인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1992년 선경텔레콤이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획득했지만,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인척기업 특혜 논란이 일며 사업권을 포기해야 했던 것이다. 이후 정권이 바뀌고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은 제1이동통신 사업자인 한국이동통신의 민영화와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추진했다. 최 선대회장은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에 재도전하려고 했으나 당시 정부가 전국경제인연합회에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의뢰하기로 하면서 암초를 만났다. 당시 최 선대회장이 전경련 회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랜 기간 통신사업을 추진해 왔던 최 선대회장은 결국 방향을 선회해 한국이동통신 주식 매각 경쟁 입찰에 참여하게 됐다. 공개매각이 진행되며 한국이동통신의 주가가 급등하게 되면서 결국 최 선대회장은 시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게 됐다. 내부에서도 높은 가격에 인수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으나 선대회장은 “우리가 통신 사업을 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나. 회사 가치는 앞으로 더 키워가면 된다”고 직원들을 다독였다.

특히 이동통신사업 진출 과정에는 아들인 최 회장의 역할도 컸다. 최 회장이 미주 경영기획실에 있을 당시는 미국에서 이동전화가 나오기 시작한 때다. 그는 이동통신 사업이 유망한 데다 리스크가 적다고 보고, 최 선대회장에게 이동전화를 초석으로 향후 사업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최태원, 부친 바통 이어받아 글로벌화 추진

“혁신적인 변화를 할 것이냐(Deep Change), 천천히 사라질 것이냐(Slow Death)”

최 회장이 1998년 취임하며 던진 화두였다. 당시 최 선대회장이 갑작스럽게 영면하며 38세에 불과한 최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재계에선 젊은 총수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없지 않았고, 무엇보다 최 회장 자신도 무게를 가늠하기 힘든 책임감을 느꼈을 것이다. SK㈜ 회장으로 취임하던 때는 IMF(외환위기) 직후여서 한국경제의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던 시기였다. 최 회장 주변에서 그 어느 방향도 녹록한 상황이 아니었다. 이것이 최 회장이 자신을 비롯한 임직원들의 근본적인 체질 변화를 주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최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지 어느덧 22년이 흘렀고 취임 초 34조원이었던 SK그룹의 자산규모는 재계 3위까지 도약했다. 21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SK그룹의 자산은 지난해 225조5000억원을 넘어섰으며, 계열사는 125개로 10대 그룹 중 가장 많다.

최 회장이 취임한 후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글로벌’이다. 내수 시장에 의존하는 영업 구조를 글로벌로 바꿔야만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래 성장 동력 발굴을 위해서도 주력했다. 2011년 최 회장이 주변의 반대를 이겨내고 하이닉스를 인수했던 것은 미래 캐시카우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도시바에 대한 지분 투자 역시 SK의 반도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최 회장은 이 외에도 2015년 OCI머티리얼즈(현 SK머티리얼즈)를 인수했으며 이어 2017년에는 반도체칩 핵심 기초소재인 반도체용 웨이퍼를 제작하는 SK실트론을 출범시켰다. 현재 SK가 반도체 부문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된 배경이다.

최 회장은 반도체에 만족하지 않고 ‘포스트 반도체’ 발굴에 나섰고, 전기차 배터리와 바이오사업을 눈여겨봤다. 이 사업들은 최 회장의 뚝심있는 추진력에 힘을 받고 있다. 앞서 부친이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선 10년 이상을 준비해야 한다”는 경영 마인드가 최 회장에도 깊숙히 박혔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미국 제2 배터리 공장 건설을 위한 8900억원 투자를 결정하는 등 어려움 속에서도 투자를 지속하고 있고, 오는 2022년 생산을 목표로 미 조지아주에 17억 달러 규모의 전기차배터리 공장을 건설 중이기도 하다.

제약·바이오 부문도 최 회장의 오랜 투자 끝에 최근 결실을 맺고 있다. SK는 미국의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 의약품 위탁생산회사(CMO) 통합법인 SK팜테코를 설립하는 등 제약바이오 분야를 집중적으로 키우고 있다. SK지주사 산하에 있던 생명과학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한 SK바이오팜의 경우 미국에서 뇌전증 신약을 출시하는 등 사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에서는 6월말 상장을 예고하면서 사업 확장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최 회장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 역시 최 선대회장의 영향을 받았다. 최 선대회장의 고등교육재단 등 인재보국(인재를 키워 나라에 보답한다)을 최 회장은 사회적 가치(SV) 경영으로 진화, 발전시켰다. 또한 최 선대회장이 정립한 SK경영관리체계(SKMS)를 지속적으로 개정하며 구성원과 이해관계자의 행복을 극대화해나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SK는 치밀한 준비와 과감한 도전, 이를 뒷받침할 체계적인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면서 “특히 최종현-최태원 회장의 혁신 리더십이 있었기에 그룹의 생사가 달린 위기때마다 이를 기회 삼아 창조적으로 돌파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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