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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카리스마 vs 소통…삼성 이건희·이재용, 같지만 다른 리더십

② 카리스마 vs 소통…삼성 이건희·이재용, 같지만 다른 리더십

기사승인 2020. 04. 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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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의 ‘뉴 삼성’, 왜 강한가]
이재용, 과거와의 결별 ‘실용주의’에 방점…이건희 업그레이드 버전
화합 중시하는 시대적 흐름 반영…수평적 소통 통해 집단지성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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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운동복·이재용 립밤·이재용 패딩….’

그가 착용한 모든 것이 히트상품 대열에 합류할 정도로 대중의 관심이 쏠리지만 정작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알려진 부분은 극히 일부다. 어찌보면 아버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은둔형 경영자’의 모습과도 닮았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위급해지자 현장을 직접 찾아가고 구내식당에서 격의 없이 직원들과 식사를 하고 셀카 요청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은둔이나 왕좌가 아닌 소통지향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기나긴 침묵 뒤에 내뱉는 독한(?) 한마디로 그룹의 전반적인 경영방향을 좌우했던 카리스마형 리더십의 이건희 회장과 달리 이재용 부회장은 수평적 경청과 소통으로 집단 지성을 최대한 활용할 줄 아는 ‘지혜’를 갖췄다. 일본과 미국에서의 유학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용적이고 유연한 사고로 아래로부터의 혁신 요구와 열망을 기꺼이 받아들일 줄 안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합리적인 판단을 도출해 내야 하는 요즘 시대의 걸맞은 지도자상이라는 평가다.

22일 전문가들은 초일류 삼성을 이끄는 그의 리더십에 대해 “고도의 성장기였던 1990년대에는 추진력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이건희식 카리스마 리더십이 요구됐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전 세계로까지 네트워크가 연결된 지금의 시대에선 수많은 관계성과 소통을 통한 합리적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유연적 사고의 이재용 부회장의 리더십이 더 적합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 부회장은 체면보다는 실용을, 특권보다는 평민의식을, 과거보다는 미래를, 카리스마보다는 소통을, 군림보다는 화합과 관계를 더 중시한다.

김익성 동덕여대 교수는 “이재용 부회장은 권위적 리더십을 보여준 이건희 회장과 달리 전문가의 조력을 바탕으로 스스로 판단하려는 자세를 보인다”면서 “전문가들에게 보고를 받으면서 아버지 이건희 회장 밑에서 경영수업을 받으면서 체득한 삼성의 문화적 속성을 활용해 시대적 현실에 맞춰 그룹을 이끌고 있다”고 평했다.

송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건희 회장 시대의 삼성은 글로벌 기업들을 쫓는 ‘추격자’ 입장이었지만 현재의 삼성은 거대 기업으로 글로벌 감각이 중요한 시기”라면서 “그런 면에서 글로벌 네트워크 마인드를 갖춘 이재용 부회장은 강점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2014년 이건희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경영전면에 나선 이 부회장은 그룹의 관제탑 역할을 했던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계열사 전문경영인들에게 더 큰 권한을 부여, 자율경영체제를 확대했다. 경직된 조직문화도 유연하게 바꾸려는 데 앞장서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자율 출근해 하루 4시간 이상씩 주 40시간 근무만 채우면 원하는 시간에 퇴근할 수 있는 ‘자율출퇴근제’를 도입했고, 삼성 조직 전체의 소통을 위해 사내 집단지성시스템인 ‘모자이크(MOSAIC)’도 가동시키고 있다.

특히 ‘모자이크’는 이건희 회장이 자녀들에게 리더의 덕목으로 가르쳤던 ‘한비자’의 교훈과 맥이 닿아 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법가이자 사상가인 한비자는 “삼류 리더는 자기 능력을 사용하고, 이류 리더는 남의 힘을, 일류 리더는 남의 지혜를 사용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부회장은 임직원들이 창의적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실행해서 성과로 나타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 ‘모자이크’를 통해 ‘지혜의 사용법’을 터득하려고 했을지 모른다. 물론 고 이병철 선대회장으로부터 이어져오고 있는 ‘경청’의 교훈도 반영됐다.

스스럼없이 사내미용실에서 이발을 하고 직원들과 어울려 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는 소탈하고 겸손한 성격은 경영 전반 곳곳에서 묻어난다. 그의 남다른 배려를 보여주는 한 대목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스타일은) 비즈니스 미팅을 잡을 때 상대방의 접근 편의성과 선호하는 장소를 맞춰 직접 움직인다”고 전했다.

‘제왕’으로 자랐지만 권위의식이 없다. 격식과 겉치레를 따지지 않는다. 그룹 전용기도 불필요한 유지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2015년에 팔았다. 수행원 없이 캐리어 하나 끌고 혼자 해외출장길에 오르는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오랫동안 삼성을 상징했던 서울 태평로에 위치한 삼성생명 사옥도 이재용 시대에서 매각됐다. 삼성전자 본사기능도 서울에서 현장 중심으로 수원에 이전했다.

서울대 동양사학과 졸업 후 일본 게이오기주쿠대 경영학 석사, 미국 하버드대 경영학 박사과정 수료 등 글로벌에서 수학한 경험을 바탕으로 실용주의적 사고가 반영된 결과물이다.

이 부회장은 또 비주력사업은 매각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업의 인수합병에는 적극적으로 나섰다. 2014년 방산사업을 한화그룹에, 2015년 화학사업을 롯데그룹에 매각한 것이 대표적이다. 대신 2016년 말 미래먹거리로 자동차 전장부품사업에 유리한 미국의 하만을 80억 달러(당시 환율로 약 9조원)에 인수했다. 삼성전자의 역대 최대 규모의 빅딜이다.

인수 결과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다. 하만의 매출은 삼성전자에 인수된 후 2017년 7조1026억원에서 2018년 8조8437억원, 2019년 10조771억원 등으로 오르고 있다. 삼성전자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중도 2017년 3.0%에서 지난해 4.4%까지 커졌다.

송재용 교수는 이재용 부회장의 리더십에 대해 “이건희보다 더 이건희스러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현재의 삼성의 규모나 사업의 다각화, 글로벌 기업인 점을 감안했을 때 소소한 일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중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미래먹거리 발굴, 글로벌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한 기업의 비전을 제시하는 등 큰 줄기를 챙길 줄 아는 이건희 회장 수준보다 더한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이 부회장의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과감한 투자는 이건희 회장의 반도체 투자와 비견될 정도로 미래지향적 안목으로 평가된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4월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비메모리 분야에서 1위를 하겠다는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했다. 메모리반도체 1위가 이 회장의 업적이었다면 시스템반도체 1위는 이 부회장의 업적으로 고스란히 인정받을 수 있다. 아버지와 달리 무혈입성해 경영능력에 대해 여전히 의문부호를 가지고 있는 자질논란도 단숨에 불식시킬 수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의 목표는 현재가 아닌 미래의 자율주행차나 인공지능(AI), 5G(세대) 이동통신의 비메모리 시장을 잡겠다는 것”이라면서 “현재 강자와의 대결이 불가피하겠지만 새로운 시장을 먼저 개척하자는 게 우리 방향”이라고 전했다.

물론 국정농단 사건의 파기환송심 재판을 마무리하고 불확실성에서 벗어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파기환송심은 4차 공판까지 진행된 후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리면서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이 부회장은 할아버지 고 이병철 선대회장, 아버지 이건희 회장과 마찬가지로 정치사건에 연루되는 것을 피하지 못했으며, 삼성 총수 중 처음으로 구속수사도 경험했다.

김익성 교수는 “정경유착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나라는 정부가 나름대로 경제와 기업들을 통제하려는 면모가 강한 독특한 특징이 있다. 이 부회장 역시 승계작업의 과정에서 구속수감이라는 고통을 당해본 경험이 있다”면서 “이런 경험은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게 해 시장 내에서 강력하게 리딩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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