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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은퇴한 어느 환경미화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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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부 기자

승인 : 2021. 04. 16. 14:32

람페두사 섬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 전경/사진=로사리오 씨 본인 제공
로사리오 씨는 1957년 이탈리아의 최남단에 위치한 람페두사 섬에서 태어났다. 현재는 지중해의 아름다운 관광지로 손꼽히는 곳이지만, 당시에는 원양어선만 이따금 들러가는 작은 어촌이었다. 그의 부모는 둘 다 각각 동네에서 유명한 두 마피아 집안 출신이었다. 신혼 초만 해도 재산이 많았지만 아버지가 도박에 손을 대는 바람에 집안은 점차 기울어갔다. 그의 가족은 그가 15살 되던 해에 생계를 위해 이탈리아의 경제 수도인 밀라노로 이주하기로 한다.

그들의 이동 여정은 쉽지 않았다. 우선 작은 섬인 람페두사에서 시칠리아의 주도 팔레르모까지 370km를 배로 이동했다. 그 후 다시 기차로 갈아타고 약 1500km 떨어진 최북단에 위치한 밀라노까지 꼬박 이틀을 기차를 타고 이동을 했다. 어렵사리 도착한 그들은 농어촌 위주인 남부에서 일자리를 찾아 상공업 위주인 북부 대도시로 몰려든 이들이 모여 사는 교외 변두리에 자리를 잡았다.

1970년대는 이탈리아의 경제가 한창 발전하던 시기여서, 일자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이내 세제 공장에 취업했다. 그러나 워낙 박봉이어서, 아직 미성년자였던 로사리오 씨의 누나들도 담배연기 자욱한 카페에서 일을 해야만 했다.

로사리오 씨 역시 14살에 일찌감치 용접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혼자 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고 어느 공장의 상하차 작업을 하게 된다. 새벽에 출근해서 자정에 퇴근하는 무척 고된 일이었다. 다시 화학공장으로 이직했다. 그곳에서 10년간 근무했다. 근무조건도 좋았다. 그런데 손의 피부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화학물질을 다뤘기 때문이라고 짐작했을 뿐이다. 어쩔 수 없이 이번에도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에서 대형트럭 운전면허 보유자를 찾는다는 공고를 보게 된다. 로사리오 씨는 군대에 의무 복무했을 때 그곳에서 트럭 면허를 취득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한국의 보통 1종에 해당하는 C등급 면허를 가진 사람이 드물다. 취득하는 데 워낙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취업공고를 낸 곳은 바로 밀라노 시내의 환경미화를 담당하는 AMSA였다. 면접을 보고 바로 취업이 결정되어 그는 이곳에서 2018년에 은퇴할 때까지 32년 간 근무하게 된다. 동료들은 주로 남부 출신들이었고 현재는 동유럽 출신 등의 외국인들도 같이 근무한다. 입사하고 바로 몇 달 간은 어린 자녀 부양을 위해 50%의 수당이 더 지급되는 야근 근무를 자청했다. 그러나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 근무하고 낮에 자는 생활 패턴을 계속하다 보니 건강에 이상이 생겨 주간 근무로 전환하였다. 그러나 말이 주간이지 아침 5시 20분부터 오전 11시 20분까지 근무를 한 데다 주 6일을 근무했기 때문에 은퇴 이전에는 지인들과 저녁에 외식을 하거나 외출을 하는 일은 꿈을 꿀 수도 없었다.

근무는 고되었지만 대신 초기에는 공기업이었기 때문에 해고 걱정이 없었다. 이 외의 직원 복지는 다른 일반 사기업과 비슷했다. 원하면 조기 은퇴해서 연금을 일찍 수령할 수도 있었고 직원들이 주택 구입 시 저리로 대출도 해주었다. 이 외에 직원 자녀들을 회사에서 여름방학 캠프를 15일간 보내주었고, 자녀들의 학교 교과서 구입 비용도 회사에서 80% 지원해주었다. 1년 동안 총 5주간의 휴가가 보장되었다. 다만 5주를 한 번에 쓸 수는 없고 나눠서 써야 했다.

그런데 2008년에 에너지 기업인 A2A에 합병되면서 사기업화 되어 업무량은 폭증했는데 인원 충원을 안 해서 업무 강도가 상당히 세졌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밀라노 시가 커지면서 담당 구역이 처음의 2군데에서 점차 3군데로 늘었다가, 은퇴할 무렵에는 6군데로 업무량이 3배가 증가하는 바람에 기존에 있던 동료들도 그만두고 나가고 남아있던 직원들이 고강도의 노동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는 스트레스를 너무 심하게 받아서 은퇴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한다. 은퇴하기 2년 전부터 날마다 달력에 얼마나 남았는지 표시해가며 버텼을 정도였다.

마지막 근무일이었던 2018년 6월의 어느 날, 회사는 간단한 은퇴식을 열고 30년 근속한 그에게 감사 메달을 수여하였고 근사한 점심을 로사리오 씨 부부에게 대접하였다. 지금은 밀라노 교외에서 그가 오랫동안 바라던 대로 매달 연금을 받으며 은퇴 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의 마지막 소원은 무엇일까? “나는 14살 때부터 일을 시작해서 환갑이 넘을 때까지 평생 일만 했어요. 게다가 직업 특성상 다른 이들이 주 5일 근무할 때 주 6일을 근무했고, 여름휴가도 한 번에 1주일 이상 쓸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해외여행을 많이 갈 수가 없었지요. 지금은 은퇴해서 자주 갈 수 있으려나 했더니 팬데믹 사태가 터졌네요. 제가 더 나이가 들어 여행 다니는 게 힘들어지기 전에 하루빨리 이 상황이 끝났으면 좋겠어요.”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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