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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 칼럼] 한국경제 리셋 청사진을 마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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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3. 08. 16. 17:00

최광 전 보건복지부 장관
현재 한국 경제를 인간의 건강에 비유하면, 여러 중병(重病)을 앓고 있는 환자다. 병의 증상은 다양하고 각기 모두 심각하다. 성장, 분배, 고용, 투자, 재정, 경기, 물가, 산업, 노사관계, 경상수지, 주가, 기업 등 한 군데도 성한 데가 없는 지경이다. '한강의 기적'이 '한강의 위기'로 돌변하였다.

한 나라 경제의 종합성적표는 그 나라의 성장률이다. 우리의 경제성장률은 1970년대에 10.5%, 1980년대에 8.8%, 1990년대에 6.2%, 2000~2009년에 4.7%, 2012년 이후에 2.3~3.3%를 기록했는데 올해 2023년에는 1.5%로 예상된다. 한때 세계 경제 평균 성장률의 3배에 달하던 우리 경제의 성장률이 지난 수년간 세계 경제 평균 성장률을 크게 밑돌고 있는데도 정책당국자도 경제 전문가들도 문제의 심각성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만병의 근원이 사실 경제의 낮은 성장에 있다. 만약 우리 경제가 매년 5%대 이상으로 성장하면 현안의 많은 문제가 거의 사라질 것이다.

어느 경우에나 문제의 해결에는 문제의 원인에 대해 제대로 된 진단이 선행돼야 한다. 작금 우리 경제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가? 우리 경제의 성장률이 왜 지속해 하락하고 그 방지 대책은 무엇인가? 이들 질문에 대해 개별 주제나 사안별로 단편적 진단과 처방이 있기는 하나, 과문인지 몰라도 우리나라 어느 경제학자도 어느 기관도 최근 한국경제 위기의 본질과 근본 원인에 대해 고뇌하며 진단하고 공감되는 처방을 제시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KDI를 비롯한 26개의 경제·인문사회분야 국책 연구기관, 국회엔 예산정책처와 미래연구원, 여야 정당에 국고지원을 받는 연구소들, 대통령실 국민경제자문회의, 한국은행의 조사국과 경제연구원, 예산 지원을 받는 수많은 대학 연구소, 경제단체나 협회 산하의 크고 작은 연구소, 그리고 상당수의 대기업 연구소가 있음에도 그 어느 기관도 독자적으로 또는 공동으로 사명감을 가지고 최근 한국경제의 장단기 문제를 엄밀히 진단하고 적절한 청사진을 제시한 적이 없다.

사회주의 국가를 포함하더라도 전 세계에 정부 지원 연구기관이 대한민국만큼 많은 나라가 있을까? 미국의 경우 국책 연구기관은 찾아보기 힘들며 민간 연구기관들이 경제정책과 관련하여 꾸준히 경쟁적으로 목소리를 내어 성가(聲價)를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예산을 지원받는 모든 연구기관이 부처 중심으로 분야별로 파편화되어 있고 지원받는 부처들이 요청하는 주제로 부처가 원하는 방향으로 연구하기 일쑤다. 세분된 있는 기관들을 통합하고, 연구자 간, 연구소 간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등 연구기관 생태계에 큰 변혁이 필요하다. 경제·인문사회분야 26개 국책 연구기관들의 2023년도 총예산이 무려 1조원에 달하는데 연구의 적합성과 생산성에 대해 엄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개별 주제에 대한 연구는 수없이 많으나 통합하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대부분의 연구가 장단기 구분과 우선순위 설정 없이 나열식이고, 같은 주제와 비슷한 내용을 반복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다. 국가적으로 엄청난 예산이 투입되어 연구를 수행함에도 경제의 기본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과제인 성장률 저하 문제를 어떻게 그렇게 많은 연구기관 모두가 외면할 수 있을까?

학계가 이러할진대 정책당국은 말할 필요가 없다. 사실 인수위 보고서의 경제부문 그리고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경제정책 방향 모두에서 한국경제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가 전혀 심각하지 않고, 진단과 처방 모두 대충대충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각 부처의 장과 각 연구기관의 장 모두에게서 애국심과 책임감이 읽히지 않는다. 영국병·독일병·스웨덴병·일본병 모두를 합친 형국인 한국병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너무 안이하다. 많은 정책 당국자나 전문가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한 경우에도 누구도 나서서 해결책을 찾을 노력을 하지 않는다.

정책당국이나 학계 모두 과거의 일을 서술(敍述)하면서 분석하고 진단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으며, 관련 현상의 인과(因果)관계도 맥을 잡지 못하면서, 구태의연한 처방을 마구잡이로 쏟아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 것 하나 목적에 부합하는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정치 지도자가 해야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 사회의 각종 구조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국민을 설득하는 정치력을 발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에 대한 청사진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지도력 발휘는 지도자 자신들의 결심과 능력의 문제지만, 비전과 청사진의 제시는 최고 전문가들의 몫이다.

민의를 반영한다는 명분으로 인기에 영합한 정치권의 중구난방(衆口難防)식 정책은 단호히 배격되어야 한다. 아무리 어려운 국면이라 하더라도 문제를 순리대로, 원칙에 따라 원천적으로 풀어야지, 충격요법이나 대증요법(對症療法)으로 대처해서는 안 된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사실 한국경제가 동력을 상실한 것은 정쟁만을 일삼는 무지한 정치가, 애국심 없는 복지부동의 관료, 사명감 없는 무사안일의 전문가 때문이다.

한국경제를 리셋하는 청사진을 마련하고 실제로 집행하기 위해서는 경제의 컨트롤 타워를 새로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경제정책의 총괄적 책임자는 기획재정부 장관이고 경제수석비서관이 대통령을 보좌한다.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부총리로서 경제장관회의를 주관하며 타 경제 관련 부처들과 정책을 조율하나, 직책의 재정 업무가 과중해 기획 업무는 사실상 전혀 못 하고 있다. 대통령 책임제하에서 대통령실의 중심 업무는 부처 차원을 뛰어넘는 국가 차원의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관리하는 것이어야 한다. 경제수석비서관 대신 경제전략실장을 두고 경제의 세부 사항은 경제부처에 위임하되 핵심적 전략적 과제에 대해 대통령을 보좌하도록 하자. 경제전략실 운영의 목적과 방식은 기존 국가안보실의 형태와 행태를 따르면 된다.

경제전략실은 미국 백악관의 국가경제자문위원회(National Economic Counsel, NEC)와 같은 성격의 조직이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에게 경제문제에 자문하는 조직으로 3명의 경제학자로 구성된 경제자문위원회(Counsel of Economic Advisors, CEA)가 있고 백악관 내에 NEC가 설치되어 있다. NEC는 클린턴 대통령 시절 처음 설치된 것으로, 클린턴은 경제를 회복시킨 대통령으로 기록되었으며, 클린턴 시절의 호경기를 신경제(New Economy)라고 했다.

말이 나온 김에 헌법 기관인 국민경제자문회의의 잘못된 지배구조에 대해 지적하고자 한다. 헌법 93조 1항에 의거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한 중요정책의 수립에 관하여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하여" 설치된 국민경제자문회의의 의장이 대통령으로 되어있다. 대통령이 국민경제자문회의로부터 조언받아야 하는데 그 국민경제자문회의의 위원장이 대통령이기에, 위원장인 대통령이 대통령인 위원장으로부터 조언을 받는 일이 발생한다. 대통령이 스스로 자문하는 형국이다. 현재 민간 전문가인 국민경제자문회의의 부위원장이 업무를 총괄하는데 부위원장을 위원장으로 승격시키면 지배 구조상의 모순은 사라진다.

대통령실에 경제전략실을 설치하고 경제전략실장의 주관 아래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주축으로 국내 국책 및 민간 연구기관들의 적극적 도움을 받으면서, 필요하면 해외 석학들의 참여도 허용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경제학자 및 사회과학자 30여 명으로 위원회를 구성하여, 한국경제의 중병을 치유하고 리셋하여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창출할 청사진을 만들길 간곡히 호소한다. 그 청사진은 한국경제를 다시 한번 도약시키는 내용을 담은 전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역사에 남는 걸작이어야 할 것이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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