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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철 칼럼] 텀블러가 종이컵보다 친환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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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3. 11. 28. 18:59

김범철 2022
강원대 환경학과 명예교수환경정책협의회 공동대표
텀블러와 일회용 컵 가운데 어느 쪽이 친환경적인가 묻는다면 대부분 텀블러라고 대답할 것이다. 텀블러는 반복 사용할 수 있어 쓰레기도 적게 발생하며 자원의 소비가 적으니 당연히 친환경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을 살펴보면, 그 대답은 그리 간단치 않다.

환경과학에서는 어떤 제품이나 제도가 친환경적인지 판단하기 위해 제품의 사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제조 과정부터 사후 처리까지 전체 공정에서 필요한 모든 에너지를 평가한다. 이를 전과정평가(life cycle assessment)라고 하는데 제품을 제조하기 위해 광물을 채굴하고 제련하는 과정을 거쳐, 공장에서 제조하고 포장하는 에너지, 운반에 필요한 에너지, 그리고 사용 후 폐기하는 과정까지 소요되는 에너지와 환경오염을 모두 합하여 평가하는 것이다. 수질오염이나 대기오염은 그 오염을 정화하는 데에 필요한 에너지로 환산하면 상호 비교가 가능하다.

어떤 제품의 재료를 얻기 위해서는 광산과 제련소에서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오염을 유발하는 사례가 많으므로, 비록 사용 중일 때에는 오염이 적다고 해도 제조 과정과 폐기하는 과정에서 많은 수질오염을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단순히 사용 중에 발생하는 오염뿐만 아니라 제조를 포함한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까지 모두 살펴보는 것이 사용 중에 발생하는 오염만 살피는 것보다 더 합리적인 접근방법이다.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전기자동차 사용 과정에서는 대기오염물 발생은 없지만 제조공정에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그리고 전기를 만들기 위해서 이미 발전소에서 대기오염을 발생하였으므로 전기자동차를 사용한다고 해서 환경오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태양광 발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태양광 발전을 위해서는 광산과 공장에서 오염을 유발하며 에너지를 사용하여 전지판을 만들어야 한다. 태양 전지판의 사용 후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도 고려해야 한다. 풍력발전기도 제조공정에서 유발하는 환경오염을 피할 수 없으며 설치과정에서 충격파로 인한 수중동물 피해, 발전기 날개에 부딪혀 죽는 새의 목숨값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 당연히 사용 후 폐기물이 미치는 영향도 계산하여야 하는데 폐기물의 부피가 크고 오래 잔류한다면 오염피해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일회용 컵' 허용 문제에서도 이런 전과정평가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일회용품의 사용 금지 운동이 확산되자 캐나다에서 한 연구자가 일회용 종이컵과 다회용 컵의 제조에서 사용 후 폐기까지 전 과정에서 소요되는 에너지를 조사하여 비교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결론은 다회용 컵을 적어도 500회 이상 사용해야 종이컵과 에너지 소비량이 같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 다회용 물품이 충분히 사용되지 않고 폐기되어 오히려 친환경적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폐기물을 모아서 재활용하는 것도 친환경적인지 확실치 않은 경우가 많다. 원료 생산의 에너지를 절약하겠지만 만일 수집과 운반에 더 많은 에너지가 소요된다면 결코 친환경적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재활용에 필요한 인건비도 에너지로 환산하여 계상하여야 한다. 시간 절약을 위해 걷기 대신 자동차를 타고 가는 등, 사람들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기 때문에 인건비도 에너지인 것이다.

어느 날 우리 집에 있는 텀블러들을 모아 보니 열 개쯤 된다. 내가 구입한 것은 없고 모두 기념품이나 선물로 받은 것이다. 텀블러를 활용하려고 커피를 살 때 텀블러를 챙겨가기도 하지만 제일 마음에 드는 하나만 간혹 사용하고 나머지는 장안에 박혀 있으니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 우리나라에서 텀블러의 사용횟수를 조사한 결과를 보니 100회를 넘지 못한다고 한다. 결국 환경보전을 위해 텀블러 사용 운동을 벌였지만 실상은 더 많은 오염을 유발한 셈이되고 만 것이다.

어떤 제품이나 제도가 친환경적인지 확인하려면 원료 개발에서 제조공정, 폐기 비용, 운용 중의 사회시스템 비용까지 전 과정에서 소요되는 에너지와 환경영향을 정밀하게 조사하고 시뮬레이션하며 계산을 한 후 신중하게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래야 얼핏 겉보기에는 매우 친환경적으로 보이는 정책을 실행했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환경을 더 오염시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을 수 있다.

김범철 강원대 환경학과 명예교수·환경정책협의회 공동대표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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