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조성준의 와이드엔터]부쩍 심해진 한국 영화의 하향 평준화, 그 이유는?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share.asiatoday.co.kr/kn/view.php?key=20240706010004012

글자크기

닫기

조성준 기자

승인 : 2024. 07. 07. 13:10

공통적으로 시나리오의 완성도 떨어져…인적·물적 투자 아끼지 말아야
최근 개봉 한국영화
시나리오의 완성도 결여로 인한 한국 영화의 하향 평준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사진은 '하이재킹'(왼쪽부터) '핸섬가이즈' '탈주' 등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들./제공=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키다리스튜디오, 뉴(NEW),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영화를 만들 때 시나리오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오죽하면 이런 말이 있을 정도다. '좋은 시나리오에서는 좋은 영화가 나올 수도 있고 나쁜 영화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나쁜 시나리오에서는 나쁜 영화만 나온다.'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떨어지면 제 아무리 잘난 배우와 연출자가 달라붙어도 손 쓸 구석이 없다는 뜻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많은 제작자와 감독, 시나리오 작가가 촬영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머리를 맞댄 채 시나리오를 다듬고 또 다듬는 이유가 모두 여기에 있다.

할리우드의 경우, 시나리오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아주 많게는 십 수명의 작가들을 단계 별로 고용한다. 플롯 구성과 에피소드 구축에 능한 작가들로 초고를 뽑아낸 다음, 마지막에는 이른바 '대사발'이 좋은 작가들을 투입하는 방식이다. 이들에 의해 새롭게 추가된 장면 혹은 대사가 수록된 페이지는 각각의 색깔로 구분하는데, 나중이 되면 색깔이 부족할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동원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현지 시간으로 지난 3일 89세를 일기로 별세한 할리우드의 '레전드'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타운이 전성기가 지나서도 계속 일할 수 있었던 건 바로 할리우드의 이 같은 시나리오 제작 공정 덕분이었다.
대본의 교과서로 통하는 영화 '차이나타운'의 시나리오를 집필해 명성을 얻은 타운은 필력이 다소 무뎌진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할리우드의 유명 프로듀서 돈 심슨과 제리 브룩하이머, 톱스타 톰 크루즈가 제작하는 액션 블록버스터의 '스크립트(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를 일컫는 단어) 닥터'로 변신했다. 완성 직전의 시나리오에서 문제점을 잡아내고 오랜 주특기인 근사한 분위기와 감칠맛 나는 대사를 더하는 역할로, '미션 임파서블' 1·2편과 '폭풍의 질주', '아마겟돈' 등 여러 흥행작들이 그의 손을 거쳐갔다.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들을 보고 난 뒤 뭔가 모르게 허전했던 느낌이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떠 오른 가정으로, 우리 영화계에도 시나리오의 마지막 '화룡점정'을 책임지는 베테랑 작가들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보게 됐다. 마지막 1%가 부족한 지점, 이를테면 극중 대사를 좀 더 엣지있게 다듬고 시퀀스와 시퀀스 사이의 거친 이음새를 매끄럽게 손볼 수 있는 '족집게 강사'의 부재가 아쉽다는 얘기다.

물론 현장의 영화인들이 듣기엔 한가로운 지적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시나리오 작가들이 돈 되는 드라마 시장으로 옮겨갔거나 옮겨가려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스크립트 닥터' '족집게 강사' 운운하는 것은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의 투정이나 다름없다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우리 영화계를 상대로 시나리오 단계에 더 많은 정성을 기울여달란 주문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넘쳐나는 인력과 거대 자본으로 무장한 할리우드 수준은 아니어도, 더 좋은 시나리오를 뽑아내는데 인적·물적 투자를 최대한 아끼지 말아줬으면 한다.

이와 함께 감독이 시나리오 작가를 겸하는 풍토도 조금은 바뀔 필요가 있다. 적어도 극장 개봉이 목표인 상업영화에 한해서는 감독은 연출에만, 작가는 시나리오 집필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전문화와 분업화가 이뤄져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시나리오만 잘 써도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시나리오 작가들에 대한 처우부터 개선돼야 한다

한국 영화의 하향 평준화 현상이 부쩍 심해진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극소수의 흥행작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개봉작들이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한 채 간판을 내리고 있다. 코로나19 펜데믹과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탓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출발점부터 파악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감히 단언하자면 그 출발점은 시나리오일 것이다.
조성준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댓글 작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