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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종 칼럼]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전쟁과 전쟁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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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07. 2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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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6월 30일자 미국 CNN은 "러시아가 나토를 상대로 전면전 대신 하이브리드 전쟁을 하고 있다(it's waging a hybrid war instead)"는 기사를 게재했다. 기자는 체코 총리의 말을 인용해 6월 초 프라하 버스 차고 방화사건의 배후로 러시아를 지목했고 최근 유럽에서 발생한 2월 리가의 점령박물관, 그리고 5월 런던의 창고와 바르샤바의 쇼핑센터 방화사건 등 유사한 화재들을 거론했다.

독일경찰은 4월 폭발방화를 모의한 여러 명을 체포했고 프랑스도 6월에 폭탄제조 용의자를 구속했다. 다른 곳에서도 해킹 공격과 스파이 사건이 발생했다. CNN은 이들 공격 모두가 러시아와 관련이 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구의 지원이 증가하면서 러시아가 나토 국가 내에 소요와 분란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구가 러시아를 붕괴시켜 약소국으로 만들려는 위협이라는 러시아의 생각은 차르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서구는 본질적으로 적이라는 사고방식은 아직도 건재하다고 했다. 이것은 과거 냉전 초기와 같은 맥락으로 1946년 2월 모스크바 주재 미국대사관 케난 공사는 '롱 텔레그램' 전문 보고에서 러시아는 역사적 피해의식 때문에 공세적으로 나올 것이면서 이를 막는 방어선 구축을 건의했었다.

케난은 크렘린의 신경증적인 세계관의 바탕에는 전통적이고 본능적인 러시아의 불안감이 있다고 했다. 이것은 평화로운 농업 민족이 사나운 유목민 근처의 넓은 벌판에 사는 불안감이었으며, 19세기 프랑스와 20세기 나치 독일의 침공에서 받은 트라우마라 할 수 있다. 세계 최대 국토면적을 가진 러시아의 국경선은 공수 양면에서의 유·불리성을 동시에 가진다는 의미다. 따라서 러시아와 서구의 안보경쟁이 오히려 세계의 안보를 위협하는 안보 딜레마를 만들었다.
2017년 11월 러시아 육군 참모총장 발레리 게라시모프는 미국과 서구가 러시아에 대해 국력의 다양한 요소를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오히려 러시아가 특정지역 침투를 위해 평화와 전쟁의 전략 개념상의 혼란을 조성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이브리드 전쟁은 전통적인 형태의 직접적인 무력공격이 아니라는 점에서 제한전이나 국지전과 다르다. SNS와 IT기술을 활용한 허위정보의 유포와 인터넷 공격 그리고 군사력의 제한적 사용을 통해 적대국을 기만하는 것과 같은 다양한 국가역량을 동원한 전쟁이다. 전후방을 가리지 않고 행위자들 역시 군복의 전투원 외에 범죄자나 직업적 테러범 그리고 고정간첩으로 확대되었다.

현대 사회에는 전선뿐만 아니라 후방사회 곳곳에 불특정 인적 물적 대상을 파괴할 수 있는 위험물이 산재해 있는 것도 이 같은 전쟁에 유리한 환경이다. 불안감 조성으로 관광객이나 외국인 투자유치를 방해하는 목적도 있을 것이다.

카터 대통령 당시 외교안보수석이었던 브레진스키는 1997년 '더 그랜드 체스보드'를 발표해 나토의 동구권 확장을 주장했다. 1991년 소련 해체 후 미국 주도의 새로운 세계질서 구축을 위한 것으로 러시아는 이러한 현실을 용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충고였다.

그러나 브릭스(BRICS) 국가들과 연대하면서 새롭게 부상한 러시아는 2007년 2월 푸틴 대통령이 뮌헨 안보회의에서 나토와 충돌했다. 러시아는 바르샤바 조약군을 해체했지만, 나토 사무총장은 나토군을 독일 영토 밖에 배치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토 기지들이 러시아 국경 인근 여러 곳에 주둔해 있고 이것은 상호신뢰를 없애는 도발행위라고 했다.

21세기 러시아의 안보인식은 나토의 확대와 북극해의 해빙으로 인한 북방항로에서의 위기감이 더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크림반도와 돈바스 침공을 역사적 연고와 주민 의사에 따라 병합한 것으로 강변한다.

이러한 와중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에 비무장 도시에 대한 미사일 공격도 벌어지고 있다. 전투 드론이 투입되고 고임금을 받는 전쟁용역회사가 정규군을 대신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소 부근에서도 전투가 벌어졌고 이것은 전쟁 당사국뿐만 아니라 지역과 세계를 위협하는 일이다. 그러나 유엔의 기능은 작동하지 않고 국제 평화회의 개최나 조사단 파견 시도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러시아의 침략전쟁으로 볼 것인가, 또는 현지 주민의 독립투쟁을 지원하는 고토 수복전쟁으로 볼 것인가는 제3국이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고 학자와 전문가 의견도 나뉜다. 국가 간의 현상유지 또는 변경에 있어서 강대국들이 이중기준(double standard)과 기정사실화(fait accompli)를 강요했던 사실이 있기 때문에 영토에 관한 역사인식이 국가마다 달라져왔다.

대한민국 역시 남북한 간의 갈등과 충돌 중에 경계해야 할 것은 핵폭탄과 재래식 무기만이 아닐 것이다. 하이브리드 전쟁에 대비해야 하고 군사와 외교 그리고 설득력과 협상력을 겸비해야 한다. 그리고 전쟁국가에 대한 폭탄과 무기 공급여부는 국제법과 유엔헌장을 준수하면서 분명한 이유와 반작용을 계산해야만 한다. 국가가 경제력과 군사력 그리고 '소프트 파워'라는 국력요소를 갖고 있어도 이것을 '효과적인 힘으로 전환하는 능력(Power Conversion Capability)'이 부족하면 강국이 될 수 없다는 폴 케네디의 말은 중요하다.

헝가리와 튀르키예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평화 중개 노력을 하는 것도 연성국력을 강화하고 외교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대한민국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은 숙고해야 할 측면이 많은 전쟁이다. 중견국가(Middle Power)로서 국제사회에서의 책임이 커졌고 한반도의 지정학적 입장은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전쟁은 일정 기간 후에는 끝나고 당사국과 관련국 모두에 후과를 남긴다.

유럽의 정치지형 변화와 오는 11월 미국의 대선 결과는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전략적 사고도 전쟁뿐만 아니라 전쟁 이후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역할이 전쟁의 확산력이 아니라 억제력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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