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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욱 칼럼] ‘공공의 적’ 클랙슨

[이경욱 칼럼] ‘공공의 적’ 클랙슨

기사승인 2024. 01. 29.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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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욱 대기자 사진
아시아투데이 대기자
자동차나 오토바이 등의 경적(警笛), 즉 클랙슨(Klaxon)은 자동차 부품회사 이름이다. 클랙슨 생산 경적이 입소문을 타고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 자동차 생산 대국 우리나라에서 클랙슨은 오래 전부터 자연스럽게 경적을 대신하는 외래어가 됐다. 영국 케임브리지 사전은 '경찰 차량이나 긴급 구호차량 등에 장착돼 다른 사람들에게 경고를 보내기 위해 사용된 매우 큰 소리의 경적으로, 자동차 부품회사 이름'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크락션, 크락숑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오래된 영화에는 클랙슨을 장착한 차량이 종종 등장한다. 초기 클랙슨은 손으로 눌러 행인이나 주변 차량 운전자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클랙슨이 언제부터 길거리를 오가는 모든 차량 속에 떡하니 똬리를 틀게 됐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클랙슨은 이런 경고의 역할을 뛰어넘어 민주화의 도구로도 사용되기도 했다. 1987년 민주화 거리 시위가 끊이지 않았을 때 최루탄과 공권력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클랙슨이 동원됐다. 수많은 운전자들이 거리 시위 지지 의사를 밝히려고 클랙슨을 눌러댔다. 2002년 서울에서 열린 제17회 월드컵경기 때에는 우리나라 축구팀 응원이나 승리 축하 도구로 클랙슨이 애용되기도 했다.

클랙슨은 행인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때로 민주화의 도구 등으로 사용됐지만 지금은 행인이나 운전자 모두에게 짜증을 유발하는 '공공의 적'으로 전락해 가고 있다. 거대한 트럭의 클랙슨 소리는 귀청이 찢어나갈 정도다. 가슴이 털썩 내려앉는다. 불법 개조 클랙슨을 달고 도로를 오가는 차량이 주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이런 가운데 미국 뉴욕시가 일정 데시벨 이상 클랙슨 소음을 내는 운전자에게 수백만 원의 벌금을 물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시의회가 일부 지역 도로에서 시범 운영되고 있는 '소음 단속 카메라'를 2024년부터 시 전역에 확대 설치하는 법안을 최근 통과시킨 데 힘을 얻은 모양이다.

뉴욕시는 시민 스트레스 저감을 위해 운전자가 85dB(데시벨) 이상의 소음을 내는 경우 벌금을 매기겠단다. 시가 생각하는 벌금 액수는 첫 위반 시 800달러(104만원), 두 번째 1700달러(221만원), 세 번째 2500달러(325만원)다. 단속은 소음 단속 카메라가 맡는다. 과속 카메라와 함께 설치된 소음 카메라는 기준 초과 소음 유발 차량의 번호판을 찍어 벌금 통지서를 집으로 보낸다.

900만명이 몰려 사는 뉴욕시에서 매년 제기되는 소음 관련 민원은 5만 건에 달한다고 한다. 뉴욕 맨해튼 시내를 걷다 보면 마천루 사이를 타고 멀리까지 퍼져나가는 구급차와 차량들의 클랙슨 소리를 자주 듣게 된다. 클랙슨 소음에 늘 시달리고 있는 뉴욕 시민들은 시의 이런 행정에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우리나라도 클랙슨에 엄격하게 대응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 최근 사례로 2022년 7월부터 횡단보도나 정지선에서 일시 정지하는 앞 차량을 빨리 가라고 클랙슨으로 재촉하는 경우 처벌받을 수 있도록 도로교통법이 개정된 것만 봐도 그렇다.

클랙슨 소음 근절과 쾌적한 도시 환경은 누구라도 원한다. 클랙슨 소음을 100% 차단할 수는 없겠지만, 뉴욕처럼 소음 단속 카메라 설치를 계기로 모두가 경각심을 갖고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클랙슨의 존재는 점차 사라질 것이다. 그 전이라도 클랙슨 때문에 유발되는 사회적 짜증 탓에 클랙슨 없는 차량이 차라리 좋겠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특수 차량을 제외하고 자동차 제작 단계에서 클랙슨을 아예 없애도 되지 않을까. 그런 의견이 나온다면 전적으로 공감을 표하고 싶다. 물론 클랙슨 퇴출 전 운전자 모두가 웬만해서는 클랙슨을 누르지 않는 성숙함을 보여주면 더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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