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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 “연, 희망·평화의 상징...후세 위해 박물관 짓는 게 꿈이죠”

[문화인] “연, 희망·평화의 상징...후세 위해 박물관 짓는 게 꿈이죠”

기사승인 2024. 02. 2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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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방패연 원형기법 보유자 리기태 명장 인터뷰
伊 명품 '보테가 베네타' 공예품 장인공방 프로젝트 선정
이집트 카이로에 작품 영구 전시
英왕립식물원 소장 '서울연' 복원
리기태 방패연 명장 인터뷰1
서울 종로구 북촌문화센터에서 만난 리기태 명장(74·한국연협회 회장)은 "하늘에 연이 떠 있는 한 지구상에는 평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조선시대 방패연 원형기법 보유자인 리 명장(오른쪽)과 그의 제자 이호준씨. /정재훈 기자
오는 24일은 정월 대보름이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정월 대보름이면 송액영복(送厄迎福·액을 보내고 복을 구함)을 기원하며 연을 날렸다. 초양(抄洋) 리기태 명장(74·한국연협회 회장)은 대한민국에서 마지막 남은 조선시대 전통연인 방패연 원형기법 보유자다. 평생을 연과 함께 해온 그는 연을 만들고, 연을 날리고, 연을 사랑하는 연인(鳶人)이다.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가 1919년 한국 정월 대보름날 서울 하늘을 쳐다보니 온 장안에 사람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연을 날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모두가 산 중턱의 성벽을 오르거나 청계천변, 들판, 강변 곳곳에서 연을 날리며 부모의 만수무강, 자녀의 합격기원, 남편의 사업성취 등을 빌며 한해를 기원했지요. 이처럼 연에는 꿈과 희망, 평화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6·25전쟁 중 서울 무교동에서 태어난 리 명장은 조선시대 후기의 방패연 원형기법을 보유한 1대 스승이자 조부 이천석, 2대 스승이자 부친 가산 이용안으로부터 대대로 전해 내려온 원형기법을 배웠다. 3대째로 원형을 보존·유지·발전시켜온 그는 부인 최상숙(NNH 회장)과 1남 2녀를 두고 있는데, 이중 두 딸 이수영·이진영과 조카 이호준, 신종욱에게 정통 제작법을 전승하며 체계를 갖추고 있다.

리 명장은 한국 전통연의 대중화를 선언하며 1974년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날릴 수 있는 방패연을 개발했다. 그의 호를 딴 '초양법'으로 명명한 방패연 제작기술은 가오리연과 같이 남녀노소 누구나가 만들어 날리면 잘 날도록 고안돼 방패연 대중화에 앞장섰다. 국내외 각 학교, 지방자치단체 등에서는 이를 배워 방패연날리기를 하고 있다.

"옛 방패연은 만들기도 힘들고 하늘에 날리기도 힘듭니다. 그래서 어린이도 손쉽게 만들어 날릴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예술성, 창작성이 있다 할지라도 과학성이 없어 날지 못하면 연이 아닙니다."


리기태 방패연 명장 인터뷰5
리기태 명장(오른쪽)과 그의 제자 이호준씨가 한국 전통 연들을 선보이고 있다. /정재훈 기자
◇이탈리아 명품 보테가 베네타가 주목한 리기태 공방

지난해 말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는 리 명장의 전통 방패연 공방을 '보테가 포 보테가스(BOTTEGA FOR BOTTEGAS)'에 선정했다. '보테가(Bottega)'는 이탈리아어로 '우수한 장인정신과 창의성을 우선하며 수공예품을 만드는 소규모 공방'을 의미한다. '보테가 포 보테가스'의 목표는 전 세계에 있는 소규모 장인공방을 조명하는 것이다. 한국 공방이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테가 베네타 측은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19세기 전통연 수공 제작 방식을 보존하는 공방으로, 리 명장은 연 제작 교육을 진행하며 후학 양성에 전념해 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통을 보존하는 장인의 위대함뿐만 아니라 그 대를 잇는 노력도 함께 소개했다.

리 명장은 이번 선정을 기념해 한지와 대나무로 만든 방패연 작품을 선보였다. 방패연엔 탈을 그려 넣었고, 노랑·초록·빨강 등 다채로운 색으로 장식했다. 압도적인 크기와 함께 익살스러운 표정이 눈길을 끄는 그의 방패연은 '보테가 포 보테가스' 캠페인을 위해 4곳 공방의 작품들을 함께 촬영한 사진에서도 정 중앙을 차지했다.

리 명장은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가 한국 전통 연을 주목한 것에 큰 반가움을 전했다. "해외에서 이런 소식을 들을 줄은 몰랐습니다. 전혀 기대하지 못했는데, 우리 전통의 예술성, 창작성, 기품을 높이 평가해준 것 같아 행복하고 기쁩니다."

◇우리 연 우수성 전 세계에 널리 알려

황금찬 시인이 지어준 리 명장의 호 '초양'은 '대나무로 대양을 다스리다'는 의미다. 이 의미처럼 그는 세계를 누비며 한국의 전통 연 문화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리 명장은 중국 베이징 연축제 및 연날리기대회에서 2018년과 2019년 연속으로 우승했다. 미국, 영국, 캐나다, 중국, 일본, 브라질 등 세계 30여 개국의 연날리기 대표선수단들이 참가한 가운데 당당히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2017년에는 이집트 카이로 오페라하우스에서 자신의 방패연과 나무육각얼레를 영구 전시했다. 또 2014년에는 손수 만든 방패연이 한국·카타르 수교 40주년을 기념해 이슬람박물관에 영구 소장됐다. 당시 리 명장은 이슬람박물관 야외광장에서 연날리기 행사를 선보였는데 카타르 4대 일간지와 알자지라방송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사막의 나라 중동 카타르인 사이에서 한국의 전통문화는 큰 화제와 인기를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성과로 이듬해인 2015년에도 연날리기 행사가 개최됐다. 뿐만 아니라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때는 김연아 선수를 응원하는 방패연을 만들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리 명장은 영국왕립식물원에 소장돼 있는, 한국의 최고 오래된 '서울연'을 2011년 복원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888년 제2대 주한 영국영사 토머스 와터스(Tomas Watters, 1840~1901)는 조선인에게 서울연을 선물 받아 귀국할 때 가지고 갔다. 영국왕립식물원이 보존해 온 이 연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연이자, 현존하는 한국민속연의 표준연이다. 리 명장은 일부 훼손된 서울연의 제 모습을 찾아줬다.


리기태 방패연 명장 인터뷰13
리기태 명장. /정재훈 기자
◇연박물관 건립이 꿈..."후세에 연을 알리고 싶어"

리 명장은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연을 알리고자 하는 마음에 연박물관 건립을 꿈으로 꼽았다.

"중국에는 20만평이나 되는 연박물관이 있고 인도에도 어마어마하게 큰 연박물관이 있지요.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연의 역사가 짧은데도 박물관이 있어요. 제가 가진 수백 점의 연으로 연박물관을 세워 한민족의 전통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 싶습니다."

리 명장은 초등학교에 방패연 특별활동을 보급하고 싶다고도 했다. 어린이들이 자연친화적인 연과 가까워졌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요즘은 아이들이 연보다 드론을 많이 날리고 있지요. 하지만 대자연 속에서 같이 숨 쉬면서 바람을 타고 날리는 연은 치유의 효과가 있습니다."

리 명장은 연을 날리면 나쁜 마음은 떠나보내고 깨끗하고 맑은 마음만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연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하늘로 전하고 그로부터 성스러운 기운을 얻게 되지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액운이나 악을 멀리 떠나보내고, 선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하늘에 연이 떠 있는 한 지구상에는 평화가 있을 것입니다."

◇리기태는…

△1950년 서울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국문과 △성균관대 경영대학원 졸업 △조선시대 방패연 원형기법 보유 장인 △한국연협회 회장 △리기태연보존회 회장 △아시아투데이 상무이사 △영국 왕립식물원 소장 '서울연' 원형 복원 △KBS '한국의 유산' 총 48회 진행 △중국 베이징국제연축제 대상, 챔피언(2018, 2019) △그리스, 인도, 카타르, 미국, 싱가포르, 러시아, 체코, 태국 등 국제연축제 한국대표단 단장 및 대표 △성균관대 총동창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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