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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의 문화路]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자수’의 팔색조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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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4. 05. 07. 15:49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서 '한국 근현대 자수'전 열려
주류미술사에서 소외받던 자수 집중 조명...8월 4일까지
1.김혜경, 정야, 유족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전에서 전시 중인 김혜경 작가의 1949년작 '정야'. 보는 각도와 조명에 따라 색이 다르게 보여 섬세한 자수작품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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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제3전시실에 자수 작품이 가진 팔색조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 걸렸다. 벽난로 앞에서 불을 쬐며 독서를 하고 있는 여성을 담은 김혜경의 1949년작 '정야'다. 신기한 것은 보는 각도와 조명에 따라 색이 다르게 보인다는 점이다. 한복 주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흐르는 바늘땀의 선, 한복과 소파, 카펫의 촉감 등에서 자수의 매력을 십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주위로 퍼져 나가는 난로의 온기와 불빛이 실감나게 표현됐다.

오랫동안 여성의 취미 정도로 취급받으며 주류 미술사의 관심 밖에 놓여있었던 '자수(刺繡)'를 집중 조명한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다. 19세기부터 현대까지 한국 자수의 역사를 살펴보는 대규모 전시로 40여 명의 작가 작품 170여 점과 아카이브 50여 점이 출품됐다.

김종학 백화만발 전혜원
'꽃의 화가' 김종학의 '백화만발'. /사진=전혜원 기자
전시는 서양화가 김종학의 '백화만발'이라는 회화작품으로 시작된다. '설악의 화가' '꽃의 화가'로 불리는 김종학의 작품은 전통자수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실제 작가는 "우리 것은 자기 재주대로, 그저 멋대로, 바느질이 가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만든 것"이라며 "실의 독특한 색감을 잘 살려가면서 대상에 상관치 않고 수를 높았기 때문에 예술적 완벽성은 한결 높다고 말할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전시 1부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제작된 전통자수를 소개한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자수 준이종정도(尊彛鐘鼎圖) 병풍'이다. 고대의 청동 제기를 금색 명주실로 섬세하게 수놓은 작품이다. 높이가 2m가 넘는 이 병풍은 제사를 지낼 때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혜성 학예연구사는 "사용설명서를 금사로 써놓았는데 재료비와 공임비가 많이 들어갔을 것"이라며 "명성왕후 가문에서 소장했던 것으로 보이며 현재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3.5.이장봉, 파도, 유족 소장
자수 작가들 중 유일하게 자화상을 제작한 이장봉 작가의 1995년작 '파도'. "자수는 내 친구였다"고 말한 작가가 인생 말년에 지나간 세월을 되돌아 본 작품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작 가운데 유일한 자화상을 담은 이장봉 작가의 작품도 눈길을 끈다.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산봉우리 앞에 안개 짙게 드리워진 골짜기가 겹겹이 펼쳐져 있는 가운데, 푸른 원피스를 걸친 한 중년 여성의 뒷모습이 보인다. 이 작품은 작가가 인생 말년에 지나간 세월을 되돌아 본 자화상이다.

박 학예연구사는 "이장봉 작가는 '자수는 내 친구였다. 희노애락을 함께 했다'고 말했다"며 "작가가 딸, 아내, 엄마로서 그리고 자수 작가로서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담은 작품"이라고 했다.

이번 전시는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일제 강점기 도쿄에 위치한 여자미술전문학교(조시비·女子美)에서 유학해 자수를 전공한 한국 여성들의 작품들도 소개한다. 한국 자수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박을복과 나혜석의 조카로도 알려진 나사균 등이 이 학교 출신이다. 전시에서는 조시비에서 자수를 배운 유학생들의 습작, 졸업작품 제작을 위해 그린 밑그림과 관련 자료들을 소개한다. 이 가운데 윤봉숙이 금색 비단 위에 수를 놓은 1938년작 '오동나무와 봉황'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팔상도 전시 전경 전혜원
'팔상도' 전시 전경. /사진=전혜원 기자
전시 말미에서는 보는 이를 압도하는 '팔상도'를 만날 수 있다. 양산 통도사에 있는 팔상도(부처의 탄생부터 열반까지 과정을 여덟 장면으로 압축해 표현한 그림)를 최유현 보유자가 이수자들과 함께 10여년에 걸쳐 자수로 옮긴 것이다. 형상을 충실히 재현한 동시에 선명하고 화려한 색감이 두드러지는 대작으로, 엄청난 공력이 느껴진다. 전시는 8월 4일까지.

한국 근현대 자수 전시전경 국립현대미술관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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