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취재후일담] 박리다매 병원 운영, 비현실적 수가·환자인식 문제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share.asiatoday.co.kr/kn/view.php?key=20240805010002450

글자크기

닫기

한제윤 기자

승인 : 2024. 08. 05. 16:33

상급종합병원까지 미친 박리다매 운영 실태
의료개혁 의-정 한 목소리 내야 할 때
의정갈등 장기화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
환자들이 이용하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A씨는 "건강검진에 이상이 있어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 진료를 예약했는데, 진료의뢰서는 동네에 있는 아무 병원에서나 받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실제로 건강검진에 이상 소견이 있었다면 검진한 병원에서 의뢰서를 작성해 주는 게 일반적입니다. A씨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아 추가 검사나 진료가 필요 없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진료의뢰서를 받지 않고 대학병원에 먼저 예약한 뒤 동네 병원에서 의뢰서를 쉽게 끊으려 한 것도 잘못된 순서입니다.

◇곪아버린 박리다매 운영

임재준 서울대병원 공공부원장은 지난 2일 한지아 국회의원이 주최한 '의료수가 무엇이 문제인가' 간담회에서 1~3차 의료기관이 중·경증 환자를 따지지 않고 모두 진료를 받고, 경쟁해야 하는 기형적인 구조를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병원 측에서 보면 수가 체계 자체가 '박리다매'를 유도한다는 것입니다. 상급종합병원의 수입 90%가 진료이고, 기타 교육이나 연구 등으로 인한 수입이 9%인 데 반해 정부 지원 수입이 1%에 불과한 구조이기 때문에 많은 환자를 받지 않으면 수입 체계를 유지하는 게 어려운 실정이라고 합니다.

박리다매 병원 운영의 진짜 문제는 의료 수가에 있습니다. 현재도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1~2차 의료기관에서 진료의뢰서를 받지 않으면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고 환자가 본인 부담 100%를 해야 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동네병원 아무 곳이나 가면 써준다'는 인식이 팽배한 이상 허울뿐인 규정인 셈입니다.

상급종합병원보다도 수가가 높지 않은 1~2차 의료기관은 박리다매식 환자 진료에 더 열을 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진료의뢰서를 써주는 방식 자체가 자세한 진료·진단 보다는 소위 말하는 '3분 진료' 형태를 띠게 되고, 진료의뢰서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써주는 문화가 박혀버린 것입니다.
환자의 인식 변화도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작은 병이 있어도 서울에 있는 가장 큰 병원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에게 진료받고 싶은 문화가 있습니다. 환자를 적합한 절차에 따라 회송하려고 해도 어려운 이유입니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환자 회송률이 3%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박리다매 불가한 외과는 어떡하라고

병원 구조 자체는 박리다매가 아니면 안 되는데, 외과 수술의 경우 경증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박리다매 자체가 불가능해 문제가 됩니다. 김성근 여의도성모병원 위장관외과 교수는 "수가를 더 올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적어도 쓴 비용에 대한 보상만 이뤄져도 병원에서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호소했습니다.

외과 수술은 경증 환자를 많이 받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개원한 외과의사들이 수술하지 못하고 있고, 수술할 때 필요한 품목에 돈이 들어가도 받지 못하는 '산정불가품목'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또 경험 경력에 따라 차등 보상이 되어야 하고, 새로운 수술법이 수가에 유연하게 도입되어야 할 필요성도 언급됐습니다.

◇떡 줄 사람 생각도 해야

결국 중요한 건 '얼마의 지원이 가능하냐'는 것입니다. 이날 간담회 자리에는 대부분 소위 말하는 '젊은 의사'들이 기피하는 과 교수들이 모여 수가 개편에 필요한 현장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러던 중 한 교수는 "반대로 묻고 싶다"며 "결국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일이 생길 수 있어 정부에서 과연 얼마나 돈을 줄 수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수가를 얼마 달라고 말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다"고 통찰했습니다.

이어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이 2%대가 안 되는데 건강보험 재정 체계가 과연 언제까지 이렇게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주실 수 있어야 수가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꽤 많은 변화가 필요해 보이는데 아직 정부가 국민에 제대로 설명해 준 적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간담회에는 정성훈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 과장도 자리했습니다. 그는 "재정 규모에 대해서는 이번 종합대책 내에서 10조원 이상의 신규 재정 투입을 하겠다고 밝힌 상태고, 추가적인 재정은 건강보험도 보험료를 걷어서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만약 재정 투입이 더 필요하다고 하면 일정 부분 사용 논의를 거쳐서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의료개혁', 한 목소리 절실

한지아 의원은 이날 의정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의료계와 정부 간 소통 창구를 재건하고, 산적한 보건의료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번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각 의료계 전문가가 모인 자리였지만, 그들 안에서도 서로의 진짜 힘든 문제가 무엇인지 그간 미처 알지 못했다는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의료계 내부적으로도 각자 문제로 인식하는 범위가 다른 것처럼 서로 몰라서 해결점을 찾지 못한 것들도 있습니다. 정부가 이제라도 전반적인 의료계 문제를 손질해 보겠다며 의료개혁특위를 구성했고, 의사들도 참여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집단행동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의료계 눈치가 보여 적극적으로 의견 개진을 못 하는 실정입니다.

더 이상 서로 모르고, 눈치 보고, 잘잘못 따지며 미룰 게 아니라 진정한 의료 개혁이 목적이라면 단일화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로 나와 소통의 길을 열어야 할 때입니다.
한제윤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