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연재] 농경의 확산,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바꾼 사상 혁명

[연재] 농경의 확산,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바꾼 사상 혁명

기사승인 2024. 08. 25. 17:44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외계인에 들려주는 지구인의 세계사 <제7회>
송재윤1
송재윤(맥마스터 대학 역사학과 교수)
도구를 사용하는 '문화적 인간(cultural man)'은 대략 200만년 전부터 지구 위에 살아왔다. 그 긴 세월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지구인들은 불과 1만년 전부터 곡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사육하기 시작했다. 이후 수천 년에 걸쳐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북중국, 중남미 등지에서 농경(農耕, agriculture)이 퍼져나갔다. 최초의 농사꾼들은 정교한 솜씨로 돌망치, 돌칼, 돌끌, 돌화살촉, 돌창끝 등을 제작했고, 남은 곡물을 담아서 보관하는 다양한 문양의 질그릇을 빚어 쓰고 있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농경이 불러온 전면적이고 불가역적인 격변의 과정을 편의상 신석기 혁명(Neolithic Revolution)이라 부르지만, 농경의 확산은 지구인과 자연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사회경제적 혁명이었다.

◇ 지구인들은 대체 왜 농사를 짓게 되었나?

미국의 농경제학자 할란(Jack L. Harlan) 교수는 묻는다. 대체 왜 전 지구의 여러 지역에서 수렵과 채집 대신 농경과 목축이 성행하게 되었을까? 20세기 수렵채집 경제로 살아가는 부족민들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를 보면, 사냥꾼들은 농사꾼들이 하는 모든 일을 하면서 노동은 덜 해도 되는 꽤나 괜찮은 생활을 누렸다. 수렵채집인들 역시 "불을 질러서 숲을 개조하고, 씨를 뿌리고, 덩이줄기를 심고, 식물을 보호하고, 땅과 집과 노예를 소유하고, 첫 과일을 딸 땐 잔치를 하고, 기우제를 올리고, 수확의 증대와 풍작을 기원한다." 그렇다면 "대체 왜 농사를 지어야 했을까? 왜 일주일 20시간 노동과 사냥의 기쁨을 버리고 땡볕 아래서 고생해야 했을까? 왜 음식의 영양가는 더 낮고 공급량은 가변적인데도 더 힘들게 노동하려 했나? 왜 기근, 역병에 밀집된 생활환경을 원했던가? 왜 황금기를 버리고 짐을 짊어졌는가?"(Harlan, Crops and Man, 1992, p.27)

할란 교수의 질문에 맞장구치며 외계인 미도도 내게 묻는다.

"루소란 18세기 프랑스의 철학자가 그랬다죠?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서나 쇠고랑을 차고 있다고요. 또 어떤 사회학자는 그랬더군요. 농경과 더불어 지구인들은 '철창 없는(cageless)' 세상에 살다가 '철창에 갇힌 사회(caged society)'에 살게 되었다고요. 그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나요? 상식적으로 사냥꾼은 큰 짐승 한 마리만 잡으면 배불리 며칠은 살 수가 있지만, 농사꾼은 단 하루도 쉴 수가 없죠. 땅을 갈고 김을 매려면 날마다 꼭두새벽부터 중노동에 내몰릴 수밖에 없잖아요. 또 농사를 지으면 대량의 곡물을 수확할 수 있었겠지만, 자연에 널린 다양한 곡물 대신 한 종만 집중적으로 생산하면 영양의 불균형뿐만 아니라 경제적 불안정도 불가피해지죠. 수개월 온 힘을 기울여 농사를 지어야 하지만, 홍수나 가뭄이 닥쳐 흉작이 들면 굶주릴 수밖에 없죠. 또 농업의 효율성을 제고하려면 당연히 논밭을 개간하고 물길을 내려면 큰 공사를 해야만 했죠. 그 과정에서 다수 대중을 끌어모아 조직화하는 정치권력이 생겨났고, 지구인들은 부리는 자와 부림을 당하는 자로 나뉘게 되었죠. 거기서 계급적 착취가 필연적으로 발생했죠. 그뿐 아니죠. 우리에서 가축을 사육하고 분뇨를 거름으로 쓰면서 천연두, 풍진, 수두, 감기, 결핵 등등 바이러스성 역병과 박테리아성 질병에 시달리게 되었죠. 도대체 왜 지구인들은 불과 1만년 전에 큰 위험과 고통을 무릅쓰고서 그토록 급속하게 농경의 길로 나아가야만 했을까요?"

농경_쌀 농사
쌀은 9천 년 전 중국 북부에서 '개량되어 재배되었다(domesticated).' 1962년 중국 하이난다오(海南島)의 농촌. 공공부문
◇ 농경, 돌이킬 수 없는 사상 혁명

진정 역사의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1만여 년 전 지구인들은 과연 왜 수렵과 채집의 전통을 버리고서 급속하게 농경과 목축이라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했을까? 수십만 년 대지를 끊임없이 떠돌며 먹잇감을 사냥하고, 과일, 이파리, 수초, 버섯 등등을 따고, 땅 아래 자라는 뿌리 열매를 캐서 먹고살던 지구인들이 과연 왜 더는 정처 없이 날마다 떠도는 생활을 버리고 지구인들은 한곳에 정착하여 땅을 갈거나 가축을 치면서 살게 되었을까?

오늘날 지구인 중에서 과연 몇 명이나 할란 교수나 외계인 미도의 그러한 질문에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을까? 태고의 자연 상태를 미화하는 환경 근본주의자들의 반문명적 선전만은 아니다. 농경에 따르는 고된 노동과 질병의 확산은 지구인들의 삶을 더욱 고되게 했다. 그럼에도 거의 모든 지역에서 대다수 지구인은 농사꾼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흔히 식량 생산량의 급증이 경제적 풍요를 불러왔기 때문이라 생각하지만, 인류학자들은 수렵채집의 단계에 머물러 있을 때가 1인당 칼로리 소비량이 더 많았다고 추정한다. 농경 이후 투입되는 1인당 노동 시간 대비 1인당 식량 획득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수렵채집 경제에선 지구인의 인구가 적정 수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농경에 따른 식량 증산은 인구 급증을 초래했다. 그 결과 굶주리는 인구의 비율은 증가했다. 농경은 지구인의 생존율을 상승시켰지만, 생존 선장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지구인들이 그만큼 늘어났다. 결국 농경과 더불어 지구인들은 에덴동산을 떠나간 아담과 이브처럼 실낙원(失樂園)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일까?

이집트의 농경생활
3,400년 전 이집트의 미술. 쌀을 재배하고 소를 사육하는 고대 이집트의 농경 생활을 보여준다. 공공부문
◇ 농경은 유전공학적 실험, 자연을 이용하는 지구인의 간지


지구인들이 일으킨 문명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널리 퍼진 그런 식의 주장은 과격한 반문명적 극단론이 아닐까 싶다. 오늘날의 지구인들이 바보가 아니듯, 1만년 전 농경을 시작한 지구인들도 바보가 아니었다. 여러 위험과 단점에도 불구하고 지구 여러 지역에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독자적인 농경문화가 시작됐다. 지구인들이 농경을 채택한 진짜 이유는 자연을 보는 지구인의 시선, 환경을 대하는 지구인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라 볼 수밖에 없다. 바로 그 점에서 농경의 시작은 지구인의 역사에서 가장 급진적인 사상 혁명(thought revolution)의 결과였다. 그 사상 혁명은 지구인의 역사에서 돌이킬 수 없는 격변의 소용돌이를 몰고 왔다.

수렵채집으로 오랜 세월 지구 위에서 살아온 호모사피엔스는 언제부턴가 실한 열매들만 따로 모아 거름이 풍부한 비옥한 땅에 심으면 더 좋은 곡물을 얻을 수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한 깨달음은 수백, 수천 세대에 걸쳐 쌓아 올린 경험적 지식 위에서 피어난 실로 코페르니쿠스적인 인식 전환의 결과였다. 농경의 발생은 자연적 진화에 역행하는 비자연적 선택을 통해 종자(種子)를 개량해 가는 유전공학적 실험 위에서 이뤄졌다. 생명체의 자연적 진화 과정에 역행하는 인위적 유전자 조작이 농경의 성공 비밀이었다.


지구인들은 인위적인 유전적 교배의 원리를 식물뿐 아니라 동물에도 적용했다. 야생동물을 길들인 후 장시간에 걸쳐 인위적으로 교배하면 인류에게 유용한 새로운 종자를 개발할 수 있다. 그러한 과정을 가축화(家畜化, domestication)라 한다. 농경이란 결국 자연이 만들어낸 다채로운 생명들이 살아가는 땅 위의 서식지(habitat)를 식량 생산의 농장으로 뒤바꾸는 과정이다. 불의의 재앙과 굶주림이 따를지라도 농경의 비밀을 터득한 지구인들은 과거로 돌아갈 순 없었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삶을 버리고 자연을 역으로 이용해서 부(富)를 얻는 간지(奸智)가 지구인들의 머릿속에서 이미 자라났기 때문이다. <계속>

송재윤(맥마스터 대학 역사학과 교수)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