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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욱 칼럼] 폭염기승과 ‘처마차양’

[이경욱 칼럼] 폭염기승과 ‘처마차양’

기사승인 2024. 08. 26.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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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대기자
호주 시드니에서 몇 년간 근무했을 때 인상 깊었던 것은 호주의 짙푸른 남태평양이나 수천 개에 달하는 해변, 캥거루가 아니었다. 그것들보다 더 마음속에 여전히 진한 잔상으로 남아 있는 것은 빌딩 처마차양과 지하 통로나 덮개로 연결된 시드니 시내 중심가 빌딩들이었다. 처마차양은 자외선 차단과 비 가림의 기능을 한다. 아열대 기후 지역인 시드니 시민들이 뜨거운 햇빛을 피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빌딩과 빌딩 사이를 연결하고 덮개를 덮어 생성된 연결 부분에 길거리 카페를 차려놓은 곳도 제법 된다. 인도 위를 덮는 처마차양은 시드니·멜버른 등 시내 중심가 큰 빌딩에만 설치돼 있는 게 아니라 동네 조그마한 빌딩에도 웬만하면 돌출돼 있다. 목적은 당연히 강렬한 태양으로부터 자외선을 기피하고 피부 타는 것을 꺼리는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맑은 날이 대부분인 호주의 기후 특성상 이런 식으로 건물에 처마차양을 설치하는 것은 당연하리라. 법적 의무사항인지는 모르겠지만, 건축주라면 누구나 처마차양이나 지하통로를 만들려고 할 것이다. 남태평양의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해변에서 수시로 일광욕과 수영을 즐기는 호주인들이 피부암에 잘 걸린다는 얘기는 새롭지 않다.

이제 우리나라 기후도 점차 아열대로 변하고 있다. 사과 재배 한계선도 점차 북상 중이라고 한다. 생각지도 못했던 바나나 재배 면적도 차츰 늘고 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돌발 기상 상황이 잦은 것 모두가 기후변화 탓이다. 올해 폭염일수가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는 기상청 분석이 나왔을 정도다. 이전에 겪어 보지 못했던 폭염으로 모든 국민이 힘들어하고 있다.

폭염이 작열할 때 모두가 그리워하는 것은 일단 태양을 피하는 것이다. 직사광선에 노출될 때 여러 가지 부작용에 시달릴 수 있기에 자외선 차단 선크림을 잔뜩 바르는 게 일반화됐다. 군부대 위문품으로 인기가 있는 품목 중 하나가 바로 선크림이라고 한다. 우산 겸용 자외선 차단 양산은 등장한 지 오래다.

열대우림 기후지역인 싱가포르의 경우 주요 빌딩이 지하철역과 연결돼 있다고 들었다. 아열대 기후지역보다 날씨가 더 극한 상황이기에 다른 대도시 못지않게 지하공간을 잘 개발해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곳에 근무했다가 돌아온 한 지인은 냉방이 잘돼 있는 집에서 차를 타고 회사 지하에 차를 대고 업무를 보다가 식사 시간이 되면 지하로 이동해 '지하도시'에서 식사를 한 뒤, 다시 지하에 주차해 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일부러 찾지 않는 한 햇빛을 볼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폭우가 내려도 비를 맞으며 길을 걸을 일이 없다고도 했다. 시민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려는 당국의 의지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우리의 도심 거리는 호주나 싱가포르 같지 않다. 햇볕에 그대로 노출된 채 길거리를 오가야 한다. 지하철을 타러 갈 때도 햇볕을 피하기 어렵다. 지하철과 연결된 빌딩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예외겠지만, 국민 대부분은 햇볕을 피할 수 없다.

이제 우리도 더 늦기 전에 기후변화에 대비한 도시계획을 새로 짜야 할 때가 됐다. 신축 건물에는 의무적으로 처마차양을 설치하도록 해야 한다. 처마차양과 지하화를 통해 업무와 생활 여건을 쾌적하게 만들도록 도시를 재정비해야 한다.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와 강남대로 등등 8차선 안팎의 넓은 도로 밑을 집중적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테헤란로의 그 넓은 길 양쪽에 즐비하게 늘어선 건물을 오가려면 어쩔 수 없이 횡단보도를 이용해야 한다. 역세권이라면 사정이 다르겠지만 지하철역과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건물은 예외 없이 밖을 통해 들어가야 한다. 강한 햇볕을 피하기 어렵고 갑작스레 쏟아지는 폭우를 피하기 힘들다.

횡단보도를 없애 차들이 직선 차로를 물 흐르듯 쉬지 않고 오갈 수 있도록 하는 대신 직장인 등 보행자들은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철을 타러 가거나 지하에 있는 식당 등을 이용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도시를 설계할 때 주민과 민간 디벨로퍼(시행사) 등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정주 여건이 좋은 도시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기상학자들은 기후변화의 악화 현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속도가 붙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앞으로 우리의 폭염일수가 더 늘어나는 현상은 피할 수 없을지 모른다. 폭우가 내리는 날도 잦을 것으로 예측되기도 한다. 어차피 우리는 자연재해 속에서도 근로를 이어가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삶의 질 향상·생산성 제고를 위해 우리 도심의 처마차양화(化)와 지하도시화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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