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정기종 칼럼] 8월의 일본 단상(斷想)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share.asiatoday.co.kr/kn/view.php?key=20240828010015493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4. 08. 28. 17:59

정기종 전 카타르대사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순하(瞬夏)》, 서가에 꽂혀 있는 이 책은 일본 고시엔(甲子園)을 다룬 사진 화보집이다. 국내에도 적지 않은 팬을 갖고 있고 올해는 8월 7일부터 23일까지 개최되면서 책 제목처럼 젊음의 열정적인 순간들을 보여주는 고교야구대회다. 8월의 한국과 일본 모두에는 여름의 만개한 청춘들이 있다. 두 나라와 세계의 미래를 담당할 세대다.

대한민국의 8월 연대표에는 8.15 해방의 감격과 일제의 식민지가 된 8.29 국치일 두 개의 상반된 사건이 나와 있다. 현재 생존한 세대의 부모 또는 조부모가 경험한 일이기 때문에 먼 과거의 이야기라고 할 수 없고 역사의 교훈은 언제나 복기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 근무하면서 놀랐던 점이 몇 가지 있다. 외양은 비슷하지만 내면은 이질적인 두 나라의 문화적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우동이 맛있게 만들어지라고 기도하는 요리사에게서 일본 장인의 노력과 정성을 볼 수 있었다. 어느 부모는 아들의 이름을 나이토라고 지었고 한자로는 기사(騎士) 즉, Knight로 표기했다. 하나의 한자를 여러 발음으로 읽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일어와 영어, 한자를 넘나드는 창의력에 놀랐다. 어린 아들이 다닌 유치원의 교육과 행사는 절도 있게 진행되고 공동체의 규범을 익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일본사회의 철저한 준비와 치밀한 계획성은 근대 제국주의 시대 대외정책에도 나타났다. 대한제국의 식민화는 단계적으로 진행되어 1904년 2월 23일 한일 간에 6개조항의 〈한일의정서〉가 체결되었다.
8월 제1차 〈한일협약〉에서는 재정과 외교사항을 일본과 사전에 토의하도록 했다. 1905년 6월에는 경찰사무를 일본에 넘겼고 11월에 제2차 〈한일협약(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 황제 궐하에 일본인 통감이 외교와 국무를 담당했다.

한일협약 조약 문안은 "일본국 정부와 한국 정부는"이라고 일본을 앞세우고 있어 사실상 일본이 작성한 문안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1910년 8월 22일 〈한일병합조약〉이 강압적으로 체결되어 29일 공포되었다.

대한제국의 멸망에는 과도한 외채도입도 주효했다. 1905년 1년 동안 도입된 국채는 당해 연도 정부예산과 비슷한 650만 원으로 이자는 증가했다. 근대식 회계나 행정 경험이 없는 대한제국의 경제적 예속 목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볼 수 있다. 1907년 2월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상환운동 당시 일본에서 차입한 국채는 1,300만원에 달해 사실상 자력 상환이 불가능한 규모였다.

많은 전쟁을 주도적으로 수행한 경험으로 인해 일본인의 전략적 사고방식은 생활에 배어 있다. 학교와 사회에는 벤쿄카이(勉强會)로 불리는 공부 모임이 활성화되어 있고 안전과 규율 그리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조심성과 배려의 문화가 발달했다. 일본의 국가역량은 국민의 이 같은 정신적 힘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7세기 쇼토쿠(聖德) 태자는 일본을 화(和)를 중시하는 공동체로 육성했다. 일본열도에 도래한 여러 계통의 세력 간의 충돌을 막고 합력을 이루기 위해 헌법 17개조를 반포했다. 완전한 인간은 없으며 모두가 잘못을 저지르기 쉬우니 개인의 독단을 삼가고 화합하라는 것이다.

씨름의 천하장사격인 스모의 오제키를 차지한 선수는 우승 비결을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노력이라고 했다. 일본인의 정신적 고향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가보면 혼자 방문한 사람들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들은 침묵 속에 합장하고 무언가 서원을 하고 돌아간다. 소란한 단체여행이 아닌 개인만의 시간 속에 정신을 집중하는 모습이다.

일본의 저력은 초등학교에서 길러진다고 한다. 교과서에는 《은하철도 999》의 작가 미야자와 겐지가 쓴 《주문이 많은 요리점》이 들어있다. 도쿄의 신사들이 시골에 사냥을 나갔다가 겪는 이야기다. 이들은 조심성 없이 거만하게 행동하다가 예상치 못한 반전을 거듭하면서 위기에 빠졌다가 겨우 탈출하게 된다. 동화를 읽는 어린이들은 세상과 사람을 외면만을 보고 가볍게 판단하면 큰 낭패를 당하게 되니 조심하고 신중하라는 교훈을 얻게 된다.

유치원의 소풍 준비 안내문에는 지도와 시간별 구간표를 정확히 보여주고 준비물로 과일과 사탕의 개수까지 알려 준다. 정확성을 배우고 친구 간의 위화감을 피하기 위한 배려다.

일본 언론의 시사 보도는 인상적이었다. TV 아나운서의 검소한 외모와 아날로그적인 화면구성에 비해 보도는 신중하고 내용은 충실했다. 9.11 동시다발 테러 발생 후에 어느 신문사 기자는 유나이티드 항공 11편을 납치해 뉴욕세계무역센터 빌딩에 첫 번째로 충돌한 이집트인 모하메드 아타의 카이로 집을 찾아갔다. 그리고 테러리스트로 변하게 된 가족환경을 살펴보고 독일 함부르크공대 졸업논문까지 조사했다. 집요하게 추적한 결과는 "테러리스트의 궤적, 아타를 쫓는다"라는 제목의 심층분석 특집으로 게재되어 독자들의 공부가 되었다.

현재 한국은 많은 부분에서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한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마치 일본과 대등한 관계라고 생각할 정도가 되었다. 총독 치하의 식민지 조선인을 일본인과 동등한 관계였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국력은 아직 부족한 요인이 많고 분열의 일상화로 중심(重心)은 불안정하다. 일본 역시 문제는 갖고 있지만 국가 기미가요의 가사처럼 모래알이 바위가 되고 바위에 이끼가 자라도록 꾸준히 합심해 나가자는 끈질긴 집단문화가 있다.

더구나 한국이 일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일본이 한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정도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외교 스펙트럼이 넓고 구심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이 국운의 상승기를 맞은 것은 틀림없지만 아직 역량을 배양해야 하는 시기다. 새로운 미래를 지향하는 선의의 경쟁자며 전략적 동반자로서 우리는 싸움에 이긴 후에 투구 끈을 고쳐 맨다는 일본의 속담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