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칼럼]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왜 반복되나?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share.asiatoday.co.kr/kn/view.php?key=20240519010008897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4. 05. 19. 17:36

양원근박사 사진
양원근(前 KB금융 부사장·경영학 박사)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전국에 60여 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장과 약 1조9000억원의 부채를 갖고 있는 대형 건설사다. 금리 상승으로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자 PF에 대한 불안이 경제 전체에 드리우고 있다. 정부는 PF 규모를 최대 230조원으로 추정했다. 금융기관, 시행사, 시공사들이 PF 대출을 일으킬 때는 높은 가격에 주택, 상가 등의 분양이 마무리될 것을 예상했지만 모두가 편안한 그런 예상대로의 상황은 오지 않을 것 같다.

2010년에도 최근의 상황과 유사한 부동산 PF 부실사태가 저축은행을 중심으로 발생했다. 당시 저축은행은 과거 신용금고라는 사명을 바꿔 은행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고 업무영역도 넓어지는 등 대형화 추세에 있었다. 경쟁적으로 부동산 PF 대출에 뛰어들었으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동산 경기가 하락하자 대량으로 부실화되었다. 삼화, 부산저축, 토마토, 솔로몬, 한국 등 대형 저축은행을 중심으로 31개 사가 정리되거나 M&A되어 사라졌다. 저축은행 총자산은 약 87조원에서 44조원으로 반토막이 됐다. 구조조정의 비용은 예금보험기금의 대규모 손실로 메꾸어졌다. 특히 지역 자영업자를 포함한 5000만원 이상의 예금을 보유한 많은 예금자들은 추후에 파산재단으로부터 소액의 배당으로 만족해야 하는 등 고통이 컸다.

2010년 금융권의 PF 대출 총액은 약 80조원으로 최근 PF 대출의 절반에 못 미친다. 하지만 명목 GDP가 그 당시보다 2배 정도 증가했고, 은행 자본금 총합도 2배 정도 늘어 사실상 경제규모와 비교하면 비슷한 수준의 부동산 PF 대출이 실행된 셈이다. 왜 14여 년 만에 경제규모에 유사한 비중의 부동산 PF 대출 규모와 부실화가 발생하고 우리 경제를 어렵게 할까? 어떻게 거의 비슷한 어려움을 반복해서 겪게 되는 것일까? 금융사와 시행사, 시공사 간에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선진국 금융의 역사는 위기를 겪고 위기를 예방하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과정이다. 미국은 건국 이후 자유방임주의를 기반으로 금융정책을 운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하여 수많은 은행들이 파산하며 시스템 붕괴에 이르렀다. 이에 금융은 경제의 시스템을 지키는 공공성을 갖고 있다는 인식하에 제도개선을 추구했다. 1932년 은행을 증권업무와 분리하여 은행기능을 보호하고, 예금보험제도를 도입해 예금자들을 안심시켜 뱅크런을 방지했다.
이후 60년이나 별 탈 없던 미국 금융산업에서 1990년을 전후로 우리나라의 저축은행과 유사한 업무를 하는 S&L(저축대부조합) 위기가 발생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부동산 경기 후퇴를 겪던 텍사스 지역을 중심으로 부동산 대출이 대규모로 부실화됐다.

1980년 예금보호 한도를 10만 달러로 대폭 인상한 것이 은행보다 영업규모가 작은 저축대부조합에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켰다. 예금자들은 저축대부조합의 부실여부는 상관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높은 금리를 선호했다. 부실한 조합들이 고수익을 기대하고 자금을 확보해 위험한 대출을 확대했다. 미국 정부는 공적자금을 투입해 구조조정에 나서 1000여 개의 저축대부조합이 정리되었다.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 대마불사 불인정, 차등보험요율제도, 적기시정조치 등의 제도를 도입했다. 공적자금을 집행한 연방예금보험공사는 부실에 책임이 있는 대주주, 경영진은 물론 회계법인, 법무법인에게도 민사소송을 제기하여 거액의 합의금을 받아냈다. 이후 저축대부조합업계에서는 크게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다. 즉 부실화되었을 때 구제해 주지 않고 자기책임을 강화하는 제도개선은 효과가 있었던 셈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 대출 대량부실로 발생한 글로벌 위기는 금융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미국정부가 대공황 이후 유지하던 은행과 증권업무의 경계를 허물면서 발생했다. 투자은행들은 상업은행의 모기지 대출을 기반으로 파생상품을 만들어 부실규모를 키웠다. 위기 이후 볼커 룰이 적용되며 은행과 증권업무를 분리해 은행업무를 보호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2016년 미국 웰스파고 은행 직원들이 내부평가를 잘 받기 위해 유령계좌를 만들어 교차판매를 많이 한 것처럼 위장했다. 미국 금융당국은 은행장을 포함한 관련 임직원을 해고하고 벌금과 함께 평생 은행 및 은행관련업에 취업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경제 시스템을 지키고 위기를 예방하기 위해 금융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감독한다.

미국 금융제도를 받아들인 우리나라도 위기 때마다 제도를 개선하고 책임을 물어 또 다른 위기발생을 예방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에는 퇴출과 회생을 수반하는 대규모 구조조정과 함께 금융선진화를 위한 많은 제도개선이 있었다. 또한 예금보험공사를 통해 공적자금 손실의 책임이 있는 기업, 금융기관의 대주주, 경영진 1만여 명에 대해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2010년 PF 부실 사태에도 기금손실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그럼에도 유사한 대규모 금융부실이 반복되는 것을 고려해 우리 금융 더 나아가 경제 전체적으로 대마불사, 혹은 구제금융에 대한 기대 등 도덕적 해이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PF사태의 연착륙을 위해 구조조정이 필요하고 또한 진행 중이다. 책임이 있는 곳에 책임을 정확하게 물리고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또 다른 위기를 방지하는 길이다. 금융기관은 시행사, 시공사들이 부동산 호황을 기회로 사업 확장에 나설 때 적절한 시기에 고삐를 당기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기회로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는 진정한 의미의 선진 금융, 선진 경제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양원근 (전 KB금융 부사장, 경영학 박사)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댓글 작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