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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최태원·정의선, 레거시와 혁신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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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 기자

승인 : 2024. 11. 28. 06:00

최원영 사진11
"눈물이 찔끔 했는데, 아버지가 하실만한 말씀이 아니라서 그 분이 아니신가 했습니다."

AI로 복원 된 부친 최종현 선대회장의 영상과 육성을 듣던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울컥 하다 말고 웃었다. 26일 창립 50주년을 맞은 인재의 산실, 한국고등교육재단 기념식에서다.

영상 속 선대회장은 "50년전 내가 꿈꿨던 이상으로 재단을 성장 시켜 준 최태원 이사장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최 회장은 말했다. 아마 진짜 아버지라면 "이것 밖에 못하나, 더 잘해야 한다" 하셨을 거라고. 최 회장은 1998년 선대회장 작고 직후 SK그룹 총수 자리에 올랐다. 1960년생 그의 나이 38세였다. 그렇게 20여년간 고독한 경영자의 길을 걸어 온 이제 65세의 최 회장이 처음으로 장녀와 장남을 데리고 공식석상인 재단 기념식에 왔다.

SK는 지금 그룹 주축인 전통 에너지사업을 AI와 친환경 패러다임 파도에 올라탈 수 있게 무게의 중심을 옮기고, AI 메모리반도체라 불리는 'HBM' 리딩기업으로서의 고공성장을 병행해야한다. 그런 시대에, 최 회장은 선친이 1974년부터 인재 양성 신념으로 설립해 지원해 온 재단을 첫 공식 교육의 장으로 삼았다. 자녀에게 보여주고 싶은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또 한사람이 있다. 그야말로 종횡무진하며 전세계 자동차인들이 주목하는 거인으로 우뚝 선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다. '제네시스'라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켰고 전기차 시대, 글로벌 톱 티어 완성차업체로 올라서는 데 성공했다. 최근 스페인 출신 호세 무뇨스 사장을 현대차의 CEO로 선임한 건 현대의 역사를 안다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순혈주의를 강조했던 그 현대가 얼마나 빠르게 변하기로 했는지 의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폭풍 같은 정 회장 행보 중 지난해 기억할만한 갈피가 하나 꽂아졌다. 공식석상에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던 장남이 함께 행사장에 깜짝 등장한 일이다. 그 자리는 현대차가 글로벌 무대에서 처음으로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긴 모델 '포니'의 정신을 계승하고 복원하는 내용의 전시회, '포니의 시간'이다. 정 회장은 현대차만의 레거시(전통)를 아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셈이다. 포니 쿠페 콘셉트카는 이후 현대차 전기차의 디자인 밑바탕이 됐다.

내연기관과 미래차 사이에서 기계공학의 정수, 모터스포츠로 정통성을 강조 하면서도 전기차·수소차, 더 나아가 자율주행과 UAM, 로봇까지 미래 모빌리티 게임체인저로 주목 받는 이때 정 회장은, 뿌리를 알리고 혁신의 방향성을 명확히 제시했다.

한순간의 결정에 회사의 흥망이 갈리는 패러다임 급변의 시대, 최태원 회장은 자녀에게 SK의 뿌리와 신념의 가치를 가르쳤다. 그리고 현장에선 최 회장이 입이 닳도록 강조하는 AI 기술력이 동원됐다.

역사와 레거시, 신념을 보전하는 일과 기존과 완전히 다른 사고로 혁신을 거듭하는 어려운 작업이 재계 전반에서 이어지고 있다. 상반된 영역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단단히 뿌리 내린 역사와 전통의 토양 위에서의 도전은, 고난은 있어도 이겨낼 수 있는 저력을 만들어낸다. 혹은 실패해도 무너지지 않을 방벽이다. 그 간극 사이에서 우리 경제를 이끄는 두 총수의 어려운 결단과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최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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