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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행위는 행정부의 행위 중에서 사법심사를 절대적으로 면제받는 행위를 일컫는 법률용어이다. 통치행위를 인정한 첫 판례는 1822년도 라피트(LAFFITTE) 재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통치행위론이 등장했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행정부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약화됐음을 의미한다. 이 재판은 정치동기론(論)이라는 다소 포괄적인 이론이 그 바탕이 되었는데, 1875년도 프린스 나폴레옹(PRINCE NAPOLEON) 재판에 이르러 정치동기론이 배척되면서, 이후로는 판례를 통해 통치행위가 개별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 재판례에 따라 인정되는 통치행위는 크게 두 분류인데, 첫째는 행정권과 입법권 사이의 관계에 관한 행위이고, 둘째는 행정권과 외국·국제기구 사이의 관계에 관한 행위이다. 후자의 예시로는 국제조약에 대한 교섭·서명·비준, 국제소송의 거부, 핵실험의 재개 등이 대표적인데, 우리 헌법재판소에서도 2004년 4월 29일 재판에서 국방 및 외교에 관련된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요하는 결정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음을 확인한 바 있다.
행정권과 입법권 사이의 관계에 관한 통치행위는 학설상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로는 입법기능에 대한 참여의 일환으로 행정부가 내리는 결정에 관한 것이고, 둘째로는 헌법적 권한과 입법기능수행 사이에 영향을 미치는 대통령의 결정에 관한 것이며, 셋째로는 입법부가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정부의 결정으로서 입법부 결정의 예비적 단계에 해당하는 정부의 결정 등이다. 이 중 계엄과 관련되는 것은 두 번째 유형에 속하는데, 비상조치권 발동(1962), 법률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결정(1962), 국회해산결정(1989), 헌법재판관의 임명(1999) 및 통과된 법률에 대한 헌법위원회로의 이송거부결정(2001) 등이 판례에서 대통령의 통치행위로 인정되어 왔다.
계엄발령에 대한 통치행위가 실무적으로 다뤄진 적은 없어서, 계엄과 유사한 제도인 비상조치(les pouvoirs exceptionnels)제도와 긴급사태제도(l'etat d'urgence)에 대한 판례의 태도를 알아야 하는데, 전자는 1962년도 재판에서 통치행위로 인정된 바 있고, 후자는 1985년도 재판에서 소극적이긴 하지만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었다. 비슷한 듯 다른 이 둘의 핵심적인 차이는 비상조치제도는 프랑스 헌법 제16조에 근거를 둔 제도이고, 긴급사태제도는 1958년 4월 3일자 법률에만 그 근거를 두고 있다는 부분이다. 즉, 헌법에 바탕을 둔 권한의 발동에는 통치행위성이 인정되었고, 헌법적 근거 없이 단순히 법률에 근거한 권한발동의 경우에는 통치행위성이 배제된 것이다.
프랑스의 계엄제도는 대혁명과 함께 시작되었는데, 1791년 7월 1일 선포된 계엄은 군법(la loi martiale)이라는 법률로 공포된 것이었다. 즉, 처음에 등장한 계엄은 헌법적 제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1849년 헌법에서부터 계엄제도에 관한 법률을 규율하도록 하면서, 이후로는 계엄이 헌법적 제도가 되었는데, 이때부터 계엄은 "l'etat de siege"라는 표현으로 불리었다. 오늘날 계엄제도는 헌법 제36조에 그 근거를 두고 있으며, 자세한 내용은 국방법전에서 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므로 프랑스 대통령의 계엄선포행위는 헌법적 권한의 발동으로 그 사법심사가 배제된다.
필자 역시 프랑스 파리 유학시절에 발발한 테러사태로 인해 2015년 11월 14일자 긴급사태 시행을 온몸으로 겪었던 기억이 있다. 학교에서도 마트에서도 가방을 검문하는 통에 이후로는 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는 습관마저 생겼었다. 당시 프랑수와 올랑드 대통령은 사르코지 대통령 때부터 이어져 온 긴급사태제도의 헌법화 논의를 위해 폭넓은 정치활동을 이어갔었는데, 핵심은 헌법 제36조 제1항을 "계엄 및 긴급사태는 국무회의의 데크레로 발한다"라고 개정하여 계엄과 나란히 긴급사태를 열거하는 내용이었다. 만약 긴급사태가 헌법에 삽입된다면, 앞으로는 대통령의 긴급사태 선포행위 역시 법원의 심사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다.
통치행위론은 개개인의 구체적인 자유가 아니라 자유체제를 수호하는 권력분립의 본질적인 기능을 지키는 핵심 이론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대통령의 계엄권한에 대한 견제는 사법부의 임무가 아니라 원칙적으로는 입법부가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다. 우리 헌법 제71조 제1항도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라고 하여 입법부에 계엄발동의 요건부터 효과까지 마음껏 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프랑스의 계엄제도나 비상조치제도 등은 대통령이 발령한 지 12일이 지나면 자동으로 실효되는데, 이를 연장하기 위해서는 입법부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도록 제도를 설계하고 있다. 계엄의 발령에 있어 대통령의 계엄권한 행사가 남용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입법부로서는 계엄법을 충실히 개정하여 국민이 원하는 통치 구조를 설계하면 될 일이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황재훈(변호사, 프랑스 파리13대학교 법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