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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인사이트]올해부터 용적률도 사고판다… 한국판 ‘허드슨 야드’ 생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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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현 기자

승인 : 2025. 01. 21. 16:46

국토부·서울시, '용적률 거래제' 도입 추진…올해 시범사업
못쓰고 남은 용적률로 타지역 고층 건물 건립 가능
재산권 침해받던 규제지역 수혜…도심 개발 숨통
특정 지역 쏠림 등 넘어야 할 산 많아
허드슨 야든 베슬
미국 뉴욕 맨해튼에 들어선 허드슨 야드의 랜드마크 '베슬(Vessel)'. '뉴욕의 에펠탑'으로 불리는 이 건물은 용적률 거래를 통해 최대 3200%의 용적률을 적용받아 지어졌다. 우라나라에도 올해부터 용적률을 사고팔 수 았는 '용적률 거래제'가 도입될 전망이다. /연합뉴스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지하철 7번 라인 종착역인 34번가의 허드슨야드역에 내리면 남쪽 고층 빌딩 사이로 마치 벌집처럼 생긴 독특한 건물이 눈길을 끈다. '뉴욕의 에펠탑'으로 불리는 '베슬(Vessel)'이다. 높이 46m의 베슬을 둘러싸고 쇼핑몰과 복합문화공간 등 고층 빌딩이 늘어서 있다.

원래는 버려진 철도 차량 기지였지만, 지금은 랜드마크가 즐비한 이곳. 고밀도 복합 개발의 아이콘인 미국 뉴욕의 '허드슨 야드(Hudson Yards)'이다. 용적률(대지 면적 대비 건물의 연면적 비율)이 최대 3200%로, 서울 일반상업지역 용적률(800%)의 네 배에 달한다. 뉴욕시가 용적률 거래를 허용했던 덕분이다. 규제 등으로 인해 다 쓰지 못한 다른 지역이나 건물의 용적률을 사 와서 층수를 올리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에도 용적률을 사고파는 '용적률 거래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정부와 서울시가 용적률 거래 활성화를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기 때문이다.

◇정부·서울시, 용적률 거래제 도입 추진

올해부터 문화재 보호 등 각종 규제 때문에 다 쓰지 못한 용적률을 다른 건물이나 지역에 팔 수 있을 것 같다. 정부와 서울시가 건축물 높이와 규모를 결정하는 용적률을 사고 팔 수 있는 이른바 '용적률 거래제'(TDR·Transfer of Development Rights)를 도입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이를 위해 2016년 도입된 '결합건축' 제도를 손보기로 했다. 기획재정부 요청에 따른 조치다. '2025년 경제정책방향'에 부동산 활성화 정책으로 담았다. 용적률 사고팔기로 1000% 이상의 초고밀 개발사업을 늘려보자는 취지다.

국토부는 현재 거리 제한 등 결합건축 적용 요건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결합건축 제도는 용적률 거래제의 초기 모델이다.

서울시는 여기서 나아가 용적률 거래제도 시행 검토에 나섰다. 올해 상반기를 목표로 시범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개발지역과 규제지역 간 용적률을 넘겨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개발 가능 사업지를 더 많이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서울시는 서울형 용적률 이양제도를 개발하고자 지난해 3월부터 용역을 실시했고 현재 마무리 단계에 있다.

◇ 뉴욕·도쿄처럼… "못 쓴 남은 용적률 다른 지역·건물에 판다"

용적률 거래제는 두 땅 간 용적률을 서로 사고팔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경관·고도지구나 문화재 보호구역 등과 같은 규제로 다 쓰지 못하는 용적율을 역세권 등 고밀 개발은 원하지만 용적률이 부족해 사업에 어려움을 겪는 건물이나 지역에 팔 수 있도록 허용하는 도시계획 수단이다. 예컨대 용적률이 1000%인 상업지역이 문화재 탓에 용적률을 300%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면 다른 지역에 나머지 700%를 판매하는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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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적률 거래(이양)제 개념 및 시행 방식.
또 용적률 300%가 적용되는 2개 대지(땅)가 있을 때 한 토지주가 용적률 100%를 팔면 매수자는 용적률 400%의 건물을 지을 수 있다. 용적률을 파는 쪽은 판매비로 개발비에 보탤 수 있고, 사는 쪽은 건물을 더 올려 사업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다.

용적률 거래제 이미 미국과 일본 등 해외에서 성공한 제도다. 뉴욕 맨해튼의 그랜드센트럴역 개발와 도쿄 역사 인근 고층 개발이 대표적인 사례다.

◇활용도 낮은 '결합건축·개발제도'

우리나라에도 용적률 거래제와 비슷한 제도가 도입된 사례는 있다. 2016년 2개 필지를 통합해 소규모 재건축 또는 리모델링하는 경우 용적률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결합건축제도'와 동대문구 이문3-1구역과 이문3-2구역, 성북구 성북2구역과 신월곡1구역 재개발사업에 적용한 '결합개발'이 그것이다.

결합건축은 서로 떨어진 두 개 이상의 토지를 하나의 정비구역으로 결합해 개발하는 제도다. 결합개발도 이와 유사한 제도로, 구릉지의 노후 주거지를 저밀로 개발하는 대신 역세권에 용적률을 더해 높게 지을 수 있도록 두 지역을 묶어서 개발하는 방식이다. 오는 11월 입주하는 최고 41층 높이의 '이문 아이파크 자이'(이문3-1구역 재개발 아파트)가 결합개발의 대표 사례다. 서울시가 천장산·의릉 인근 구릉지 지역인 이문3-2구역을 저밀도로 개발하는 대신 다 쓰지 못한 용적률은 1호선 외대앞역에 인접한 역세권 고밀 지역인 이문3-1구역에 이전해 아파트를 높게 지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결합건축과 결합개발은 인근에 있는 두 지역을 묶어 함께 개발하는 게 특징이다. 반면 용적률 거래제는 대상 지역이 대체로 넓다. 가령, 용적률이 1000%인 종묘 근처 상업지역이 문화재 때문에 용적률을 400%밖에 사용할 수 없다면 강남역 등 다른 지역에 나머지 600%를 판매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내에도 가까운 토지끼리 용적률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결합건축·개발제도가 있지만, 제약 조건이 많아 거의 활용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우선 용적률을 거래할 수 있는 대지가 2개 필지로 한정됐고, 대지 간 거리도 100m 이내여야 했다. 여기에 2개 대지의 건축주가 동시에 재건축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도 제도 활용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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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 고도지구는 높이 규제를 받아 고층으로 건물을 지을 수 없다. 이런 곳은 앞으로 개발시 다 못쓴 용적률을 다른 지역이나 단지에 팔 수 있게 된다.
이에 국토부 결합건축 대상 용지가 세 곳 이상인 경우 대지 사이 거리 기준을 500m로 늘리고, 동시 재건축 요건도 없앴다. 하지만 땅이 두 개인 경우에는 기준이 완화되지 않고 있다. 용적률 거래 가능 지역을 상업지역과 역세권 개발구역 등으로 제한한 것도 결합건축제도가 활성화하지 못한 이유다. 국토부 관계자는 "용적률 거래 활성화를 위해 동시 건축 의무와 거래 대지 간 거리 제한은 물론 결합건축 가능 지역 등까지 제도 전반을 손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산가치 회복·고밀도 개발 '두 마리 토끼

서울시는 올해 상반기 중 용적률 거래 시범사업을 통해 제도 실효성을 검증하고, 관련 법령 및 조례 제·개정 등 법적 기반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서울형 용적률 거래제의 핵심은 활용하지 못하는 용적률을 다른 지역으로 이양할 수 있는 지역, 즉 '양도 지역' 선정 기준이다. 서울시는 "아직 대상 지역이나 용적률 가치 산정 방안 등 구체적인 사항은 정해진 게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제도 도입 초기인 만큼 용적률 양도지역은 문화유산 주변 등 제도 도입이 시급한 지역에 우선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업계에서는 용적률 양도 시범사업지로 4대문 안(문화재 보호지구)와 성북구 삼선·성북동(서울 성곽 주변 문화재 보호지역), 송파구 풍납동(역사문화보존지구), 김포공항 주변(고도 제한지구) 등을 꼽는다. 양수 지역은 고층 개발 수요가 많은 정비사업지 가운데 강남권 등 이미 어느 정도 기반시설이 갖춰져 있어 일정 수준 이상의 기부채납이 불필요한 곳이 대상지로 거론된다.

용적률 거래는 개발 제한 지역의 재산권 손실을 줄이면서 고밀 개발을 원하는 지역과 단지의 개발 밀도를 높일 수 있는 윈윈 정책이다.

서울시도 용적률 거래제를 도입할 경우 역사 자원이나 자연경관 등을 보전하면서 동시에 개발 수요가 있는 지역의 민간 개발을 활성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민간 개발사업이 활기를 띠면 도심 공급 확대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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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문화재 보호 등 각종 규제 때문에 다 쓰지 못한 용적률을 다른 건물이나 지역에 팔 수 있을 것 같다. 사진은 서울 아파트 밀집지역 모습./연합뉴스
정비업계도 정부와 서울시의 용적률 거래제 도입 움직임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양도성 및 풍납토성 등 문화재에 따른 높이 규제로 용적률 활용에 제약을 받았던 종로·성북·송파구 일대에서는 사업성 향상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용적률 적정 가격 논란… "가치 산정 원칙 마련해야"

넘어야 할 산도 많고 풀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용적률 거래제가 도입되기 위해선 용적률 이전을 모두가 알 수 있게 하는 공시 수단이 필요하다. 용적률을 사고파는 것은 사실상 건축물의 개발 권리와 이익을 매매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래 당사자가 이를 확인할 수 있도록 부동산등기법 등 관련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

용적률을 사고 팔기 위한 산정 기준도 명확해야 한다. 시장에서 거래된 적이 없는 용적률을 개별 협상을 통해 가치(가격)를 매기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용적률 가치 산정 원칙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현재로서는 민간 자율에 맡겨져 있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적정 가격'에 대한 의견이 갈리는 상황이다. 용적률의 가치를 정확하고 세밀하게 산정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미국처럼 용적률의 적정 가격을 평가하고 거래를 중개하는 '용적률 거래 중개은행'을 도입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일각에선 용적률을 사들여 개발할 수 있는 곳이 강남이나 여의도, 용산 등 일부 지역에 한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용적률 거래제가 지역간 개발 불균형을 심화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특정 지역에 용적률 혜택이 쏠릴 경우 일조나 교통 체증, 기반시설 부족 등으로 도심 기능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서울시가 용적률 거래제를 도입하더라도 쏠림 현상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 서울시는 "사업지역과 인접하거나 적어도 인과관계가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용적률 거래제도를 시범 운영하겠다"는 입장이다.

조철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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