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삼성 실적 회복 최우선 과제
당분간 주력사업 경쟁력 강화 집중
등기이사 복귀·미전실 재건도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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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사법 족쇄' 마침내 풀렸다
이날 서울고법에서 열린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시세조정 혐의 관련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법원은 무죄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2월 5일 1심에서 이 회장에게 적용된 19개 혐의와 삼성 임원진 등 전원 무죄 판결을 받은 지 1년 만의 선고다. 이로써 사실상 이 회장과 삼성 전직 경영진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는 사실상 해소됐다. 지난 2016년 국정농단 사건을 고려하면 10년 가까이 이어진 사법리스크가 풀린 셈이다.
이 회장은 지난 10여 년간 사법리스크로 사실상 경영에 전념할 수 없는 처지였다. 부당합병 혐의와 관련해선 2020년 9월 1일 검찰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뒤 2심까지 법정에 출석한 횟수만 100차례에 달한다. 이 회장이 3주에 한 번꼴로 재판에 참석하면서 서초동에 발이 묶인 사이 삼성전자의 위기는 가속화됐다.
지난해엔 주력 사업인 반도체 부문에서는 33년간 지켜온 메모리 1위 자리를 SK하이닉스에 내줬고, 영업이익도 크게 줄었다.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반도체 분야에서의 기술경쟁력도 약해질 대로 약해졌다. 다른 주력 사업인 스마트폰도 애플에 2년 연속 왕좌를 내줬다. 그 여파로 지난해 한때 삼성전자 주가가 '4만 전자'까지 추락하는 등 자존심을 구겼다. 삼성 안팎에선 지난해 하반기부터 "역대 최악의 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 같은 삼성의 위기의 배경에 이 회장의 사법리스크로 인한 경영차질이 있다는 게 그간 경영계의 지적이었다. 재계 관계자는 "상고 여부가 변수로 남아있지만, 삼성과 이 회장을 옥죄던 불확실성이 해소되었다고 봐야 한다"며 "삼성과 우리 경제를 위한 긍정적 변화를 기대해본다"고 말했다.
◇ JY의 최우선 행보는 "실적 회복"
관심사는 사법족쇄가 풀린 이 회장과 삼성의 다음 행보다. 재계에선 이 회장이 이번 2심 무죄 판결로 경영 전면복귀에 나설 가능성도 나온다. 지난 2019년 등기이사를 그만뒀던 그가 이르면 오는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로 다시 등재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이에 대해 삼성 고위 관계자는 "검찰의 상고 여부도 봐야 하기에 아직 등기이사 선임을 논하기엔 이르다"며 "등기이사 선임은 이사회에서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을 아꼈다. 2017년 3월 국정농단 사건 당시 해체했던 그룹 컨트롤타워(미래전략실) 재건에 대해서도 "아직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했다.
삼성 내부에선 이 회장이 당장의 실적 회복에 주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등기이사 복귀, 미전실 재건 등 논란의 소지가 있는 이슈보다 삼성전자 주력 사업의 경쟁력을 회복하는 걸 최우선 과제로 설정할 것이란 얘기다. 이와 관련, 이 회장이 HBM 대응전략, 파운드리 사업 부진 등 반도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직접 뛸 가능성이 나온다. 탄탄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를 챙기고, 나아가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 정립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다.
대형 M&A도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7년 하만 인수 이후 지금까지 눈에 띄는 M&A 행보를 보여주지 못했다. 매년 한종희 부회장 등 전문경영인들이 "M&A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막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결정을 내리지는 못했다. 따라서 사법족쇄가 풀린 이 회장 주도로 향후 인공지능(AI)·로봇·디지털 헬스·전장 등 분야에 '빅딜'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게 재계 관측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삼성이 반도체뿐만 아니라 여러 부문에서 예전보다 뒤처지고, 추격당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이번 2심 이후 사업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이끌고, 투자해나갈 것인가 등 이 회장의 리더십을 대외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경 유착을 제외한 오롯이 경영에만 집중할 수 있는 전략, 기획 역할을 하는 컨트롤타워 재건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