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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 칼럼] 한·러 관계의 회복 기회

[이효성 칼럼] 한·러 관계의 회복 기회

기사승인 2023. 12. 17.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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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
아시아투데이 논설고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4일 21개국 대사 신임장 제정식에서 한국에 대해 매우 유화적인 발언을 했다. "러시아와 한국의 관계가 지금은 안타깝게도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면서 "양국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파트너 관계로 복귀할지는 한국에 달려 있다"며 한국 대사를 콕 집어 "존경하는 대사님, 러시아는 이를 위한 준비가 되어 있음을 강조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푸틴의 이 같은 발언은 한러 관계를 파탄내고 싶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북방외교라는 이름으로 1990년 구소련과 국교를 맺고 30억불 차관을 제공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직후 소련이 붕괴했으나 러시아가 이 차관을 승계하였다. 러시아는 이 차관의 상환을 위해 한국과의 군사 교류와 협력을 위한 불곰사업 등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그 결과 한국은 러시아에서 전차, 미사일, 우주 로켓 기술 등에서 많은 도움을 받아 우리의 군수산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 지원을 끊어낼 수 있었고, 일본이 독도 문제 등으로 한국을 도발하면 러시아는 한국 편을 들어주었다.

이와 함께 러시아에 진출한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우리 기업들은 그 품질과 가성비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게다가 1998년 러시아가 금융 위기를 맞아 모라토리엄을 선언했음에도 우리 기업들은 사업 손실을 견디며 러시아를 떠나지 않고 마지막까지 의리를 지켰다. 그래서 러시아인들은 우리 기업들에 대해 매우 호의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 결과 한국의 모바일 폰을 비롯한 가전제품, 자동차, 식품 등이 각각의 분야에서 러시아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들이 되었다.

이처럼 그동안 양국은 상호협력에서 커다란 진전을 이루었다. 이 밖에도 러시아 정부는 극동 개발을 위해 한국과 경제 협력을 간절히 원하고 있음을 여러 차례 드러내왔고, 한국도 이에 참여하려는 마음이 매우 크다. 그러나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차지하면서 G8에서 추방당하는 등 미국을 위시한 서방과의 관계가 소원해지자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소강상태에 머무르게 되었다.

더구나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미국의 대러 제재에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다. 작년 3월 한국은 주요 러시아 은행과의 거래를 중지하고 57개 수출 통제 품목을 고시한 데 이어 금년 2월에는 741개 품목을 추가했다. 이로써 양국의 관계는 기존의 거의 모든 협력 관계마저 끊기게 되었다. 게다가 폴란드가 자국의 구식 무기들을 우크라이나에 거의 전부 지원하고 대신 한국산 최신 무기를 대량으로 구매했고, 금년 3월에는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기 위해 155㎜ 포탄 50만발을 미국에 대여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고, 금년 7월에는 한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하여 우크라이나와 유대를 과시하기까지 했다.

그러자 러시아도 한국에 적대적인 태도를 드러냈다. 한국이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자 러시아는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했고, 작년 10월 푸틴은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제공하면 양국 관계가 파탄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금년 9월에는 러시아 극동의 위성 발사장에서 북러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북러 간 밀착 행보를 과시했다. 이는 한국에 대한 일종의 경고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관계 악화 속에서 지난 4일 푸틴의 유화적 발언이 나온 것이다. 이런 유화적인 태도는 그동안 서방 세계의 대러 제재에 기인한 경제난과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러시아의 속사정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에게도 큰 시장과 잠재력을 가진 러시아와의 관계를 개선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더 나빠지지는 않도록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이런 기회를 잘 활용하여 관계 당국자들은 불필요한 강경 발언을 삼가고, 이념적 편향이나 미국 위주의 외교에서 벗어나, 우리의 실리를 추구하는 실용적이고 주체적인 외교를 실천하는 기회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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