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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속깊은 여강 성벽 위에서, 삶의 답을 찾다

[여행] 속깊은 여강 성벽 위에서, 삶의 답을 찾다

기사승인 2021. 10. 19.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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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여주 파사성
여행/ 파사성
파사성에선 성벽 위를 걸으며 남한강을 내려다볼 수 있다./ 김성환 기자
여주 글·사진 김성환 기자 = 파사성(파사산성)을 보러 경기도 여주에 갔다. 여주하면 여강변(남한강의 여주 구간)에 자리 잡은 신라시대의 고찰 신륵사를 먼저 떠올린다. 거긴 고즈넉한 강변의 정취와 정갈한 사찰의 운치가 좋다. 조금 덜 알려졌지만 파사성은 장쾌한 풍광이 일품이다. 성곽을 따라 걸으면 남한강과 여주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하늘이 높고 공기가 청명한 요즘에는 이게 더 볼만하다. 한갓진 것도 반갑다. 한국관광공사가 지난달 ‘2021년 가을시즌 비대면 안심관광지’를 선정했는데 파사성 일대도 이름을 올렸다. 사색하며 산책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여행/ 파사성
파사성은 사진 좋아하는 이들이 가을에 알음알음으로 찾는 곳이다. 보름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성벽이나 남한강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 해넘이 풍경을 촬영한다.
파사성은 대신면 천서리 파사산(230.4m) 정상부에 있다. 이포보 북단 인근의 파사성주차장에서 숲길을 따라 30분쯤 오르면 남문터가 나온다. 주차장에선 앙증맞은 보도현수교가 눈길을 끈다. 강변과 연결되는 다리인데 왕복 2차선 도로 위를 지나는 육교이자 이포보를 바라보는 전망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포보는 백로의 알을 형상화한 둥근 조형물이 예쁘다. 주차장에서 파사성으로 향하는 숲길은 가파르지만 힘이 부칠 정도는 아니다. 남문터에서 정상까지 구간이 하이라이트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종종 올라오는 사진 가운데 대부분은 이 구간을 배경으로 촬영된 것들이다. 문화재 발굴 조사로 들머리가 조금 부산하지만 여기만 지나면 눈이 호강한다.

여행/ 연인소나무
파사성 연인소나무. 나무 사이를 지나가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안내판이 붙어있다./ 김성환 기자
파사성에선 성벽 위를 걸을 수 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유려한 남한강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처음에는 충주 방향의 남녘 물줄기만 보이다가 차츰 북쪽 양평 방향 물줄기까지 눈에 들어온다. 수시로 변하는 풍광이 궁금해서 자꾸만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게 된다. ‘연인 소나무’는 반가운 쉼터다. 그늘이 드문 탄탄대로 같은 성벽 위에서 볕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남문터와 정상 중간쯤에 소나무 두 그루가 마주보고 서있다. 이 나무 사이를 지나가면 사랑이 이뤄진단다. 산수(山水)는 여기서도 잘 보인다. 정상부에선 눈이 번쩍 뜨인다. 산이 높지 않지만 주변에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어 장쾌한 풍광이 펼쳐진다. 매끄럽게 능선을 휘감은 성벽이 남한강과 이어질 듯 아래로 뻗었다. 산봉우리 아래 자리 잡은 소박한 들판도 마음을 평온하게 만든다. 고려후기 이색과 조선중기 유성룡은 이 풍경을 시(詩)로 남기기도 했단다.

여주의 빼어난 여덟 경치를 일컫는 ‘여주팔경’ 가운데 하나가 ‘파사과우(婆娑過雨)’다. 파사성에 소나기가 뿌리는 모습이다. 가을 풍경도 이에 못지 않다. ‘파사성 지킴이’를 자처하는 수호사의 주지 스님은 “보름달이 뜨면 달빛이 성곽을 비추는 모습을 찍으려고 알음알음으로 찾아오는 사진작가들이 제법 있다”고 했다. 요즘에는 남한강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해넘이도 촬영해 간단다.

여행
한때 군사적 요충지였던 파사성은 이제 사람들이 가슴 먹먹함을 풀고 가는 산책 코스가 됐다./ 김성환 기자
여행/ 파사성
한때 군사적 요충지였던 파사성은 이제 사람들이 가슴 먹먹함을 풀고 가는 산책코스가 됐다./ 김성환 기자
파사성은 둘레가 약 1800m에 달한다. 성벽의 높이는 평균 4~5m다. 가장 낮은 곳은 약 1.5m, 가장 높은 곳은 6m가 넘는다. 누가 쌓았을까.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수차례 발굴 조사 결과 6세기 중엽 신라가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면서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의 5대 왕인 파사이사금(재위 80~112) 때에 쌓았다고 전하지만 당시 이 일대는 백제의 땅이어서 그럴 공산은 없단다. 삼한시대 소국 가운데 하나인 파사국이 있었던 곳이라고 전하지만 이 역시 근거 없는 얘기다. 어쨌든 원형으로 축조된 덕에 걷기는 편한다. 마음먹고 걸으면 한 바퀴 도는 데 1시간이 채 안 걸린다. 원래는 성벽을 따라 걸을 수 있지만 보수 중인 동문터 주변 일부 구간은 ‘샛길’을 이용해야 한다.

파사성은 한강 상류와 하류를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성 안에서 백제, 신라, 고려, 조선 등 여러 시기의 건물터가 확인되는데 이는 파사성이 오랜 기간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유성룡은 임진왜란 때 파사성의 정비를 선조에게 건의했고 이후 1592년부터 약 3년에 걸쳐 대대적인 정비가 이뤄졌다. 남아 있는 성벽 대부분은 조선시대에 다시 쌓은 것이다. 사위를 감시하기 위한 산성이었으니 주변이 한 눈에 들어올 수밖에. 사람들은 군사적 의미를 다한 파사성에 올라 큰숨을 들이켜고 먹먹함을 풀고 간다.

여행/ 양평 상자포리 마애여래입상
양평 상자포리 마애여래입상(마애대불)/ 김성환 기자
파사성에 온 사람들은 양평 상자포리 마애여래입상(마애대불)도 구경한다. 파사성이 있는 파사산은 여주와 양평의 경계에 있다. 파사성은 여주 땅이고 마애대불은 양평 땅이다. 파사성 정상부 옆으로 난 조붓한 숲길을 따라 10여분을 걸어가면 마애대불이 나온다. 큰 바위의 앞면을 깎은 후 선으로 새긴 불상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전체적인 균형이 잘 맞다. 사각형의 얼굴, 길쭉한 돌기둥 형태의 신체, 각이 진 팔꿈치 표현 등으로 미뤄보아 고려전기의 불상으로 추정된다. 여기서도 남한강이 보인다. 조선시대 여주는 교통의 요지로 번성했다. 당시의 흥성거림은 사라졌지만 뱃길을 오가던 이들의 여정을 두루 살피던 마애대불의 온화한 미소는 여전히 남았다.

파사성은 파사성주차장 말고 수호사에서 출발해도 된다. 여기선 동문터가 가깝다. 경내에 주차가 가능하다. 여기서도 약 30분이면 정상에 닿는다. 남문터 가는 길보다 길 폭이 좁고 옛 분위기가 난다. 남문터로 올랐다가 수호사로 내려오기도 한다. 수호사에서 파사성주차장까지 걸어서 약 10분 거리다.

여행/ 파사성
사위가 탁 트인 파사산 정상에선 목가적인 풍경도 만난다./ 김성환 기자
여행/ 파사성
파사성은 ‘여강길’ 8코스 ‘파사성길’에 포함된다. 한국관광공사는 파사성과 파사성길을 가을 시즌 비대면 안심관광지로 선정했다./ 김성환 기자
파사성은 여주 ‘여강길’ 8코스 ‘파사성길’에 속한다. 이 코스는 당남리섬을 출발해 파사성, 수호사, 느네마을을 에두르는 5.4㎞의 순환 코스다. 길지 않지만 강과 산, 마을과 역사 문화를 오롯히 체험할 수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파사성길’을 가을시즌 비대면 안심관광지 가운데 하나로 선정했다. 거리 두기가 가능한 자연경관 명소라는 의미다. 파사성만 들러도 좋고 파사성길을 걸어도 좋다. 어느 쪽이든 청명한 가을을 느끼기에 손색 없는 한나절 코스다. 산성(山城)에 오르는 수고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서울에서도 멀지 않다. 파사성이 있는 천서리는 막국수도 유명하다. 파사성 주차장에서 ‘막국수촌’이 지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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