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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비 모른다고 입국 거부, 콘서트 못봤다” 또다시 분노하는 태국인들

“버스비 모른다고 입국 거부, 콘서트 못봤다” 또다시 분노하는 태국인들

기사승인 2024. 02. 26.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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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좋아하는 케이팝 그룹의 콘서트를 보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가 입국을 거부당한 태국인 관광객 A씨가 준비한 여행 일정표. /X(옛 트위터) 캡쳐
최근 며칠 태국 케이팝(K-POP) 팬들 사이에선 콘서트를 보러 한국을 찾았다가 입국을 거부당한 A씨의 이야기가 알려지며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이미 지난해 자국 관광객의 출입국 거부 문제로 태국에서 "한국 여행을 가지 말자"란 분위기가 확산해 총리까지 나선지 채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 비슷한 문제가 또다시 벌어진 것이다.

태국인 A씨는 일행들과 함께 지난 23~25일 서울에서 열린 인기 아이돌그룹 엔하이픈(ENHYPEN)의 콘서트를 보기 위해 22일 한국을 찾았다.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보기 위해 콘서트 티켓과 겨울옷 구매 등에 A씨가 지출한 금액만 최소 4만1600바트(약 154만원)였지만 A씨는 입국을 거부 당했다. "호텔까지 가는 버스 비용이 얼마냐, 어디서 무엇을 먹을 것이냐"는 질문에 답하지 못했고, A씨가 환전한 55만원이 '충분하지 않은 금액'이었다는 것이 A씨가 통보받은 입국거부 사유였다.

그는 자신의 X(엑스·옛 트위터)를 통해 호텔 예약 내역·콘서트 티켓·콘서트 관람 계획 등의 자료를 구비했음에도 입국을 거부당했다고 밝혔다. A씨는 "신용카드도 가지고 있었지만 (입국심사관이) 자세히 묻지도 않고 금액이 충분하지 않다고만 말했다. 신용카드가 있다고 설명할 틈도 없었고, 설명하려 노력해도 듣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A씨는 24~25일 이틀간의 콘서트 티켓을 가지고 있었지만 "설명하려 노력해도 듣지도 않고 우리가 무슨 밥을 먹을지 말하지 못한 것, 콘서트 티켓보다도 교통비가 얼마냐가 더 중요한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결국 A씨는 손꼽아 기다리던 콘서트를 보지 못하고 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한국과 태국은 비자면제협정이 체결돼 있어 관광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태국인은 90일까지 무비자로 체류할 수 있다. 태국을 방문하는 한국 관광객 역시 90일 무비자 체류가 가능하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한국 출입국관리사무소의 과도한 입국심사가 도마에 올랐다. 입국심사 과정에서 지나치게 엄격한 인터뷰를 통과하지 못해 '입국거부'를 당하는 태국인들의 사례가 급증한 탓이다.

관광 목적임을 인증하기 위해 △호텔 및 항공권 예약 내역 △여행 계획서 △통장 △급여 전표 등의 서류를 완벽히 갖춰가도 입국거부를 당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이런 경험담이 확산하며 분노 여론이 일기도 했다. 실제로 공무원·대학 교수 등 신분이 비교적 확실한 사람들도 입국을 거부당하거나 "범죄자가 된 것 마냥 취조당하는" 불쾌한 경험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로서는 태국인 불법체류자가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입국 심사의 강도를 높인 것으로, 태국인 차별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태국인 불법체류자는 15만여 명으로 약 10년 전보다 3배 늘었고, 국내에 머무는 태국인의 78%가 불법 체류자로 다른 나라보다 월등히 많다. 태국에서도 '피너이(꼬마 유령)'로 불리는 불법체류자들 때문에 애꿎은 태국인 관광객들까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과 인식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조처란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A씨는 "우리가 (한국 입국 후) 꼬마 유령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친구들은 내가 좋아하는 가수를 보기 위해 (해외 콘서트를 보고자) 날아다니기 시작하는 팬이란 것을 안다. 좋아하는 가수가 태국에 오기까지 1년을 기다려야 하거나 때론 전혀 보지 못할 때도 있기 때문"이라며 "좋아하는 가수를 보려 열심히 일한다"고 전했다. 한달에 5만~6만바트(약 185만~222만원)의 월급을 받는다고 밝힌 A씨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불법체류 같은) 불안정한 일에 우리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것이고 모욕을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고 덧붙였다.

A씨의 사연이 알려지며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한 다른 태국인들도 공분하고 있다. 일부 네티즌은 "태국에 오는 한국인 관광객들에게도 방콕의 진짜 이름, 전철 요금과 택시 요금을 물어보고 답하지 못하면 입국을 거부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A씨처럼 입국을 거부당해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보지 못한 B씨는 "나는 80만원 정도를 환전해 갔는데 너무 많은 돈을 들고 왔다고 입국을 거부당했다. 입국가능한 금액이 60만~70원인 것 아니냐, 체계적인 판단 기준이 있기나 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태국 현지매체 타이 인콰이어러는 "한국인은 태국인에 대해 인종차별적인가? 비인간적인 입국심사는 '그렇다'고 말한다"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태국 관광객들의 최근 이야기는 한국을 방문하는 동남아시아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뿌리 깊은 편견과 비인간화 문제를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태국에선 지난해 말 '입국거부' 문제가 양국 간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커지자 세타 타위신 태국 총리 나서서 "한국 출입국관리소에 의해 태국 국민이 지속적으로 추방되는 문제를 정부가 조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태국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는 한국 이민당국으로부터 불합리하거나 부당하고 불쾌한 대우를 받았다는 경험담이 지속적으로 공유되고 있다. 한국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아예 "읽으면 기분이 나빠질 수 있겠지만 취조실에 들어갈지도 모를 경우를 대비해 미리 준비하라"며 입국심사관이 하는 질문이나 요구를 담은 리스트가 올라와 있다. 해당 리스트에는 핸드폰으로 라인(메신저)·페이스북 등을 들어가 보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는데 사생활 침해 여부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요구하는 것 중 하나"라는 경험담까지 더해지며 공분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타이 인콰이어러는 이번 사건이 "동남아 여행자들이 새로운 문화를 탐험·경험하려는 정당한 열망을 가진 개인으로 인식되기 보단 경제적 지위나 의도에 따라 축소돼 종종 견뎌야 하는 비인간적인 조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며 집단적 행동·보이콧을 촉구했다. 매체는 "보이콧 촉구는 징벌적 조치가 아니라 공감·존중·변화에 대한 간청으로 받아 들여져야 한다. 한국 당국이 이러한 문제를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동남아 관광객에 대한 처우에 실질적인 변화를 약속해야 한다는 요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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